업다운 야생화-23-갯봄맞이
폭염주의보 뚫고 피어나는, 갯봄맞이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Glaux maritima var. obtusifolia Fernald. 멸종위기식물 2급
“그래, 그 귀하다는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도 좀 자세히 보자.”
“이게 뭐야. 이것 보자고 이 무더위에 여기까지 달려왔단 말이야?”
꽃 보러 가는 길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루 나절 시간 내서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오랫동안 별러온 친구들에게 “아주 귀한 것 보여 주겠다.”라고 설득해 동행했습니다.
<한낮 기온이 32도까지 치솟아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지난 5월 19일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싱싱하게 피어난 갯봄맞이의 연분홍색 감도는 흰 꽃 무더기. 일견 이름 없는 잡초처럼 보이지만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희귀종이다.>
짙푸른 동해도 보고, 가슴으로 밀려오는 바닷바람도 맞고, 시원한 파도소리도 듣자며 모처럼 산보하듯 즐겁게 떠나 왔습니다. 멀리 동해까지 가는 동안 내심 실제 눈으로 보면 그리 대단할 것 없어 보일 텐데, 공연히 친구들의 귀한 시간 빼앗는 건 아닌가 싶은 걱정이 들었는데, 역시나 첫 반응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 형성된 호수인 석호(潟湖), 해수와 담수가 섞여 있어 염담호(鹽淡湖)라고도 불리는 동해의 한 작은 호숫가에 북방계 식물인 갯봄맞이가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활짝 피어나 때늦게 ‘봄’을 환호하는 광경이 이색적이다.>
“정말 귀한 꽃이야. 이거, 원래는 북한 땅에 가야만 볼 수 있었던 꽃이야. 최근에야 남한에도 고성·포항·울산 등 동해 세 군데서 자생하고 있는 게 확인됐지만, 그래도 워낙 희귀종이어서 국가에서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해서 관리, 보호하고 있단 말이야.”
갯봄맞이의 희귀성, 중요성 등을 애써 강조해보지만, 여전히 심드렁해합니다. “그런데 오뉴월 감기 개도 안 걸린다고 했듯, 5월 중순이면 봄이라기보다 여름이라고 할 수 있잖아. 실제 폭염주의보까지 발령된 날씨인데, 식물명에 ‘봄맞이’란 단어가 들어갔으니 어째 어색하지 않니? 그게 바로 이 꽃의 유별성(類別性), 다시 말해 함경도 등 주로 북한 지역에 자생하는 북방계 식물의 특성을 보여주는 거라고. 워낙 추워서 봄이 늦게 시작되는 함경도 바닷가에서 5~6월에 피는 이 꽃을 보고 갯봄맞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라고·…” 나름대로 설명을 이어가자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열심히 보고 사진 많이 찍어라.’라고 말없이 응원합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는 갯봄맞이 꽃 무더기. 남한 내 자생지는 극소수이지만, 자생지 내 개체 수는 무수히 많아 그나마 다행이다.>
먼 길 오느라, 찾느라 바빴던 마음을 진정하고 찬찬히 꽃을 들여다봅니다. 바다와 분리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비바람이 강하게 불면 바닷물과 모래가 수시로 넘어올 것으로 보이는 해안 호수, 이른바 석호(潟湖) 가장자리 모래밭에 핀 갯봄맞이. 키가 작은 건 5cm 안팎에서, 제법 큰 것은 20cm를 넘어설 정도이지만 무리지어 자라는 모습은 일견 영락없이 ‘잡초’처럼 보입니다. 통통한 줄기에 잎이 좌우로 다닥다닥 달리고, 줄기와 잎 사이 겨드랑이마다 아주 옅은 붉은색이 도는 흰 꽃이 역시 다닥다닥 돋아나 있습니다. 꽃 색이 아예 흰 것도 있다고 합니다. 새끼손톱만 한 꽃은 끝이 5갈래로 갈라지고 그 가운데 수술 5개와 암술 1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잎과 꽃 모두 자루가 없이 줄기에 딱 달라붙어 있어 개개의 꽃을 예쁘게 담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신 자생지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지만, 자생지에서 만나본 갯봄맞이의 개체는 수백, 수천을 넘을 만큼 풍성해 멋진 군락 사진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모래밭에 줄지어 자라나 풍성하게 꽃 피운 군락, 호숫가 언덕에 자리 잡은 또 다른 무더기, 마주나는 잎겨드랑이마다 돋아난 꽃이 바닷가에서 자생하는 갯봄맞이의 생태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멸종위기식물 1,2급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는 77종의 식물 중 광릉요강꽃과 털복주머니란 등 대부분이 자생지와 개체 수가 극히 적은데다 빼어난 관상 가치에 따른 남획 등 인위적인 위협 요인이 더해지면서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면, 갯봄맞이와 같은 일부 북방계 식물은 지구온난화 등 자연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남한 땅에서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는데, 종 다양성 유지 차원에서 너나없이 각별한 보전 대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