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붑니다. 바닷바람이 붑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붑니다. 한여름에는 무더위를 식혀주는 고마운 바람이었겠지만, 한겨울에는 활활 타는 장작불도 한순간에 얼릴 듯 야속하기 짝이 없는 ‘파란 바람’입니다.
짙푸른 바다를 닮은 차디찬 해풍에 초가을부터 피기 시작해 서 너 달 동안 바닷가를 굳건히 지켜왔던 산국과 감국, 그리고 해국이 속절없이 스러집니다. 그렇다고 해변이 텅 빈 것은 아닙니다.
‘따듯한 남쪽 나라’제주도의 바닷가가 제 아무리 한겨울이라고 한들 마냥 쓸쓸할 수는 없는 법. 산 국·감국·해국·갯쑥부쟁이·구절초 등이 진 자리에 또 다른 노란색 국화 무더기가 떡하니 자리를 잡았습니다. 바로 갯국입니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거의 모든 풀과 나무들이 기나긴 겨우살이에 들어가기 시작하는 10월 말 부터 피기 시작해 눈 내리는 12월, 1월까지도 싱싱하게 황금빛 꽃송이를 유지하는 이른바 ‘겨울 국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두 송이 피는 게 아니라 수십, 수백 송이가 뭉쳐서 피는 제주도의 갯국은 저 멀리 눈 덮인 한라산과 우뚝 솟은 산방산, 짙푸른 하늘과 바다, 거무튀튀한 현무암 등과 어우러져 장쾌한 풍경화를 연출합니다.
갯국은 제주도와 거제 등 남쪽 바닷가의 벼랑이나 풀숲에 자생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식물도감에도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고,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재배식물로 분류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애초 원예용이나 조경용으로 들여온, 일본 동해안이 원산지인 갯국은 특히 제주도의 바닷가에 잘 적응해, 갈수록 자생지가 크게 늘어나고 있어, 겨울 제주도에선 여러 곳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자생지의 특성을 따서 해변국화, 꽃색을 반영해 황금국화라고도 불리는 갯국은 꽃 못지않게 잎이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잎 뒷면에 하얀 솜털이 촘촘히 돋았는데, 그로 인해 잎 가장자리에 은빛 띠를 두른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촘촘히 난 솜털은 갯국이 눈 내리는 동지섣달에도 시들지 않고 싱싱할 수 있게 해주는 보온재(保溫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겨울 살을에는 추위와 바닷바람을 이기고 피는 갯국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듯 꽃말은 곧은 절개, 일편단심 입니다.
<이북5도신문 (http://ibukodo.com/) 2016/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