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다운 야생화-10-변산바람꽃
봄바람 분다, 봄꽃이 터졌다, 변산바람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2.22>
학명은 Eranthis byunsanensis B.Y.Sun.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드디어 터졌습니다. 꽃 폭탄이 터졌습니다. 일주일 전쯤부턴가 여수에서, 울산에서 간간이 화신(花信)이 전해지더니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雨水)를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봄꽃이 피었다고 아우성입니다. 봄바람이 분다고, 바람꽃이 피었다고 아우성입니다. 북풍한설이 몰아친다고, 폭설이 내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며 엄살을 떤 지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너나없이 봄꽃 맞으러 길 떠나자고 부산을 떱니다.
![]() |
![]() |
여수의 밤바다를 환히 밝히려는 듯 떼를 지어 활짝 핀 금오산의 변산바람꽃. 2월 중순쯤부터 개화하기 시작한다. |
씨 뿌리지 않아도 물 주지 않아도 산에 들에 피는, 이른바 야생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가장 먼저 불러 모으는 ‘봄바람 꽃’의 선두주자는 바로 변산바람꽃입니다. ‘눈이 녹아 빗물처럼 흐른다’는 우수는 지났으되,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오기 전 개구리보다도 먼저 얼음장 같은 땅속에서 불쑥불쑥 돋아나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이 이미 코앞에 다가왔다고 전해줍니다.
변산바람꽃이 핀 뒤 봄눈이 내려 운 좋게 만난 ‘설중화(雪中花)’. 3월 초 경기도 수리산에서 담았다. |
“급하기도 하셔라/누가 그리 재촉했나요,//
반겨줄 임도 없고/차가운 눈, 비, 바람 저리 거세거늘/행여/그 고운 자태 상하시면 어쩌시려고요//
살가운 봄바람은, 아직/저만큼 비켜서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어쩌자고 이리 불쑥 오셨는지요.//
언 땅 녹여오느라/손 시리지 않으셨나요.//
잔설 밟고 오시느라/발 시리지 않으셨나요…”(이승철의 ‘변산바람꽃’ 중에서) 복수초와 함께 봄의 전령사로 꼽히는 변산바람꽃의 발 빠른 개화에 이승철 시인은 “남들은 아직 봄 꿈 꾸고 있는 시절 첫 계절을 열어 고운 모습으로” 서둘러 온다며 “누가 이름이나 기억하고 불러줄까”하고 반색하면서도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 |
![]() |
흰색의 꽃받침 잎과 깔때기 모양의 녹황색 꽃잎, 청보라색 수술이 반짝반짝 빛나는 변산바람꽃. 충남 보령 배재산에서 만났다. |
변산바람꽃이 학술적으로 알려진 것은 1993년. 전북대 선병윤 교수가 변산반도 내변산에서 채집된 표본을 근거로 한국 특산종으로 발표하면서부터입니다. 이에 따라 학명에 첫 발견지인 변산(byunsanensis)이 속명으로 들어갔고, 선 교수(B.Y.Sun)도 발견자로 그 이름이 표기됐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자생지가 변산반도 등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은 아니어서 누구나 조금만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면 손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멀리 바다 건너 제주는 물론 전남 고흥과 여수, 경남 고성, 울산에서부터 북으로 경기 연천과 강원 설악산까지 자생지가 전국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라는 당초의 발표와 달리 일본에도 같은 종이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
![]() |
낙엽더미 속에서, 바위 틈새에서 핀 변산바람꽃. 경기 연천 지장산에서는 3월 중순 가까이 되어야 꽃이 핀다. |
키는 물론 굵기 또한 콩나물 줄기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가냘픈 줄기에 달덩이처럼 희고 둥그런 꽃을 한 송이씩 달고 있는 변산바람꽃은 지역에 따라 2월부터 4월 사이 북풍한설이 주춤하는 때에 잠깐 피었다가 이름 그대로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꽃잎처럼 보이는 5~7장의 둥근 흰색 잎은 사실은 꽃받침 잎으로, 깔때기 모양의 자잘한 녹황색 꽃잎(4~11개)을 대신해 벌, 나비를 불러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몇 해 전 전남 여수로 변산바람꽃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해돋이 명소로 꼽히는 향일암 조금 못미처 금오산 기슭으로 들어가자 수십, 수백 송이의 변산바람꽃이 여수의 밤바다를 환히 밝히겠다는 듯 무더기로 피어있었습니다. 활짝 핀 꽃송이가 달덩이처럼 환해 ‘변산 아씨’라 불리는 변산바람꽃이 아스팔트 위에 아지랑이가 일듯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에 “아하, 이런 게 ‘꽃멀미’라는 거구나” 하는 색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여수의 변산바람꽃, 일찍 피는 것은 물론 풍성하기가 손에 꼽을 만했습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