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A와 A가 아닌 것으로 나뉜다'는 2분법의 논리가 유행한 때가 있습니다.
같은 논법을 적용하자면 세상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288Km.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을 덜커덕덜커덕하는 기차를 타고 최소 6박 7일 이상 달려본다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경험은 아닙니다. 누구나 탈 수는 있지만, 누구나 올라타지는 않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는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세상이 있습니다.
그 특별한 세상을 3가지의 색깔로 그린 책이 나왔습니다.
'대륙횡단열차 14,400Km의 여정'이라는 설명을 덧댄 '설렘'(아마존의 나비 15,000원)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 작가이자 '국제시장'을 쓴 소설가 김호경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미술대학을 나온 화가 이승연,
그리고 야생화 사진을 찍는 김인철,
이들 3인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베를린까지 19박 20일간의 여정을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자작나무와 분홍바늘꽃 사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이들은 겨울의 설국열차가 아니라,
2015년 7월 14일부터 8월 2일까지 한여름 유라시아 횡단열차를 타고 9,288km의 대륙을 횡단한 데 이어,
다시 모스크바에서 베를린까지 2,612km를 더 달리며
"스쳐 나가는 낯선 풍경, 사람들, 마을, 나무, 전봇대, 첨탑을 바라 보"며 지난 추억과 아련한 옛사람. 희미한 기억 속의 사람들을 떠올렸노라 말합니다.
김호경은 이렇게 단언합니다.
"지루했을까요?
천만의 말씀!
그대가 말씀 상상하는 이상의 기쁨과 열정, 재미와 슬픔, 배신과 서운함, 놀람과 감동, 갈등과 사랑, 미움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죽기 전에 꽃 한번 이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길!"
이승연은 '창가의 여인'과 '노을이 지는 강가'를 비롯해 모두 14점의 멋진 작품을 책에 담았습니다. 특히 우리에겐 흑룡강, 헤이룽 강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아무르 강의 풍경을 무동을 태운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무르강의 소녀'란 작품이 인상적입니다. 이 작가는 이들 작품을 중심으로 1월 17일부터 2월 1일까지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 본전시장에서 '유라시아 기억 전'이란 전시회를 갖습니다.
"그토록 많은 자작나무가 한 땅도 쉬지 않고 9,000km에 걸쳐 자란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그러기에 러시아 여행에서 돌아오면 눈을 감을 때마다 자작나무가 떠오른다"
"분홍바늘꽃!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모스크바에 닿을 때까지 철로 변에 가장 많이 피어있던 꽃, 흰 자작나무와 더불어 영원히 잊지 못할 분홍색으로 기억되는 꽃"
김호경이 글로 쓴 자작나무와 분홍바늘꽃을 김인철은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덜컹덜컹 질주하는 횡단열차에 올라탄 상태에서 카메라를 차창 밖 시베리아 벌판으로 내밀며 열차와 자작나무 숲과, 분홍바늘꽃이 지천으로 핀 천상의 화원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설렘, 그 안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만나볼 수 없는 시베리아 평원의 감동, 추억과 그리움이 담겨있습니다.
'선물하기 딱 좋은 책'입니다.
나이 든 세대들에겐 죽기 전에 꼭 타보아야 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기억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에겐 '분단을 넘어 대륙으로, 그리고 대륙을 넘어 통일로 가는' 호연지기를 길러주는 지침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