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탐사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좀딱취!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12. 12>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Ainsliaea apiculata Sch.Bip.

2015년 12월 21일 동백꽃을 소개하면서 시작한 ‘업다운뉴스(http://www.updownnews.co.kr/)의 야생화 기행’이 어느덧 1년이 되어갑니다. 현재 한반도에는 300여 종의 특산식물을 비롯해 모두 4,800여 종의 풀과 나무가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년 열두 달 가운데 12월과 1~2월 겨울에는 대부분의 식물이 겨울나기에 들어가니 나머지 9개월 동안 1주일에 평균 120종의 풀과 나무가 꽃을 피운다는 계산이 나오지만, 애써 야생화를 찾아다닌다는 이도 한 해 동안 보는 꽃은 전체의 10% 정도인 500종을 넘기 어렵다고 합니다.

 

 

 

늘 푸른 식물 이외 모든 것이 스러지는 계절, 키도 크기도 작은 좀딱취가 온 숲의 주인인 양 당당하게 흰색의 꽃을 활짝 피우고 당당하게 서 있다.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하는 사이에 90% 이상의 풀과 나무들이 저 홀로 꽃을 피웠다가 저 홀로 진다는 뜻이니 우리의 인지 능력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새삼 절감합니다. 어쨌거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동백꽃으로 시작한 야생화 탐사8의 첫해를 무슨 꽃으로 마감할까 잠시 멈칫했으나 주저 없이 꼽은 건 바로 좀딱취입니다. 울긋불긋 물들었던 단풍이 깡마른 가랑잎이 되어 찬바람에 이리저리 뒹구는 시절, 갈수록 스산함만 더하는 텅 빈 숲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영롱하게 반짝이는 작은 꽃이 바로 좀딱취입니다.

 

 

 

 3개의 작은 꽃이 모여 하나의 꽃처럼 보이는 좀딱취 꽃. 여러 개의 꽃이 모여 하나의 머리를 이루는 전형적인 두상화(頭狀花)의 모습을 보여준다.

 

꽃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이들이 열에 아홉 하는 말이 있습니다. “좀딱취를 보았으니 이제 한해 꽃 농사도 끝이구나.” 그렇습니다. 한겨울 동백꽃으로부터 시작된 꽃 탐사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게 바로 좀딱취입니다. 물론 개쑥부쟁이와 산국·감국 등 9·10월부터 핀, 이른바 들국화가 늦게는 눈 내리는 초겨울까지 뒷동산을 지키겠지만, 제주도를 제외한 내륙에서 10월 이후 새로 피는 가을꽃으론 아마 바위솔속(屬) 식물과 좀딱취가 유이(有二)할 것입니다.

 

 

 

원 줄기 밑에 달걀이나 심장, 콩팥 모양으로 빙 둘러 난 이파리와 길게는 30cm까지 곧게 뻗은 꽃대, 그리고 최대 10여 개까지 달리는 흰색의 꽃으로 이뤄진 좀딱취가 늘씬하고 단정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키 작고 못난 사람을 좀팽이라고 비하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좀’ 자가 인간 세상에선 낮은 대우를 받지만, 자연계에선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전초(全草)가 8~30cm로 키도 크기도 작지만, 작은 거인이란 말이 있듯 모든 것이 스러진 계절 저 홀로 핀 좀딱취는 온 숲의 주인인 양 의연하고 당찬 모습입니다. 곰취 등 ‘취’자가 든 다른 식물과 마찬가지로 국화과인데, 흰색으로 피는 꽃의 생김새는 단풍취와 비슷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일리 있는 추정으로, 좀딱취는 단풍취·가야단풍취와 함께 국내에 자생하는 국화과(科) 단풍취속(屬) 3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름에 피는 단풍취와 꽃 모양이 많이 닮았지만, 전초나 꽃의 크기는 키다리와 난쟁이만큼 차이가 납니다. 게다가 ‘딱취’란 식물의 존재를 알 수 없으니, 오히려 ‘좀단풍취’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2014년 가을 중국의 황산에서 만난 좀딱취. 해발 1,800m의 고산인 황산의 ‘가을 야생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개체 수가 많았다.

 

국내의 경우 제주도 및 남부 지방에 자생한다고 하는데, 안면도 어름이 북방한계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주도를 비롯해 서남해안의 섬과 내륙의 그늘진 곳에서 주로 자생합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10월 중순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중국인들이 ‘천하제일 명산’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안후이성(安徽省)의 황산(黃山)을 오르내리면서 좀딱취를 줄기차게 만난 것입니다. 우리나라 충남 안면도 숲의 그늘진 곳에서 보았던 좀딱취가 해발 1,864m의 황산 등산로 주변에서 줄줄이 꽃을 피웠는데, 가을 황산의 대표 야생화라 일컬어도 될 만큼 개체 수도 풍부했습니다. 황산의 경우 북위 30도로 제주도보다 3도나 위도가 낮지만, 해발 1,800m가 넘는 고산이어서 식생이 대략 제주도와 흡사하기 때문으로 추정했습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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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의 가을 정점(頂點)을 찍는 작은 거인, 좀바위솔!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11. 28>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Orostachys minutus (Komar.) A. Berger.

11월도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흔히 달력의 절기로 12월부터 3개월 동안을 겨울로 구분하니 아직은 가을인 셈입니다. 지난주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6도까지 떨어지는 등 전국이 한겨울을 방불케 할 만큼 영하권으로 얼어붙었지만, 절기상의 계절은 엄연히 가을이었습니다. 실제 따듯한 가을이 길었던 때문인지 수십만 촛불 인파가 운집했던 광화문을 비롯해 서울 시내 주요 간선도로에는 늦게까지 다닥다닥 달렸던 노란 은행잎이 흩날려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울긋불긋 물든 만추, 미완의 풍경화에 완성의 마침표를 찍듯 활짝 피어난 좀바위솔 군락. 집채만 한 바위 겉에 풍성하게 핀 좀바위솔에서 황혼의 비장미마저 느껴진다.

그런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만산홍엽으로 물들었던 만추의 서정은 까맣게 잊히겠지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 카메라가 있어 화려했던 순간을 되새김할 수 있으니 그 기쁨이 절대 하찮지 않습니다. 스쳐 지나간 숱한 가을의 단상 중에서 유독 시선을 붙잡는 작은 거인이 있습니다. 속살까지 울긋불긋 물든 가을의 숲에서 커다란 바위 위에 작은 키를 오뚝 세우고 홍자색으로 피어나던 좀바위솔입니다.

 

꽃잎 5장과 수술 10개의 꽃이 이삭 형태로 다닥다닥 붙은, 좀바위솔의 앙증맞은 이삭꽃차례.

산이나 계곡의 바위 겉에 붙어서 자라며, 잎이 가늘고 끝이 뾰족한 게 막 싹이 튼 어린 소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통칭 바위솔이라 불리는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의 한 종(種)입니다. 오래된 기와지붕 위에서도 자란다고 하여 와송(瓦松)이란 그럴싸한 이름으로도 불리는 바위솔은 대표 종인 바위솔을 비롯해 정선바위솔·연화바위솔·포천바위솔·둥근바위솔·가지바위솔·울릉연화바위솔·난쟁이바위솔 등 모두 10여종이 국내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옥색의 강물과 짙푸른 가을 하늘, 형형색색의 단풍과 어우러져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그려냈던 한탄강 변의 좀바위솔 군락. 몇 해 전부터 암에 효과가 있다는 말이 번지면서 무분별한 채취로 많이 사라졌다.

그중 잎과 줄기, 꽃까지 다 합해도 전초가 15cm 이하로, 보통 30cm까지 자라는 바위솔의 절반 정도에 불과해 좀바위솔이라 불리는 게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경기·강원·충북·경북 등의 높은 산지에 주로 자생하는 좀바위솔은 9~10월 끝이 뾰족한 비늘 모양의 녹색 잎 수십 개가 빙 둘러 난 정중앙에 어른 손가락만 한 이삭꽃차례를 곧추세웁니다. 특히 온 산이 타오를 듯 붉게 물드는 만추의 계절 화사하게 빛나는 단풍을 배경으로 높은 산이나 깊은 계곡 바위 겉에 붙어 수십 개의 꽃이 이삭 형태로 다닥다닥 붙은 연분홍 꽃차례를 오뚝 세우는데, 그 전경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환상적입니다. 꽃 색이 온통 흰색인 것은 흰좀바위솔로 따로 부르기도 합니다.

 

단 한 송이만으로도 세상을 호령하듯 당당한 모습의 좀바위솔. 작은 거인의 힘이 느껴진다.

집채만 한 바위 겉에 수십, 수백 송이의 좀바위솔이 한데 모인 대군락은 보는 이에게 연신 감탄사를 내뱉게 하지만, 텅 빈 큰 바위 위에 단 한 송이 홀로 핀 좀바위솔 또한 세상을 호령하는 작은 거인을 보는 듯 장하기 그지없습니다. 여러해살이풀이어서 뿌리를 해치지 않으면 해마다 홍자색 꽃을, 벼나 보리 등 곡식의 이삭처럼 다닥다닥 피울 수 있는데, 수년 전부터 각종 바위솔 식물들이 암 치료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뿌리째 남벌 되는 수난을 겪고 있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실제 깎아지른 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옥색의 강물, 붉게 물든 단풍 등 3박자와 어우러져 최고의 좀바위솔 촬영지로 꼽히던 한탄강 변의 좀바위솔 자생지가 몇 해 전 괴멸되었습니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자연은 스스로 대단한 치유 능력이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듯 작년부터 하나둘씩 좀바위솔이 다시 피어나고 있어, 다시 또 못된 손만 타지 않는다면 수년 내에 집채만 한 바위를 가득 덮었던 장관이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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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유혹하는 립스틱의 여인, 물매화!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10. 03>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Parnassia palustris L.

‘강원도의 힘’을 또다시 절감하는 가을입니다. 앞산 뒷산은 물론 전국 곳곳의 산과 계곡이 울긋불긋 물들건만 모든 이들이 강원도로만 설악산으로만 향하는 양, 굽이굽이 돌아가는 차도는 막히고 산길과 계곡에는 인파가 가득합니다. 여름 내내 그늘을 만들어 무더위를 피하게 해주었던 숲이 노랗고 붉게 물드니 별천지가 따로 없습니다. 설악산을 비롯한 크고 작은 산마다, 계곡마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은 꽃보다 더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니, 강원도 길마다 행락 차량이 넘쳐나는 게 당연한 일일는지 모릅니다.

 
강원도 정선의 한 계곡 물가에 핀 물매화. 맑은 물에 물매화도 내려앉고, 파란 가을 하늘도 내려앉고, 흰 구름이 둥실 떠가는 멋진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전국의 야생화 애호가들까지 강원도로 불러 모으는 ‘가을꽃’ 하나가 별도로 있으니, ‘강원도의 위세’를 단단히 떨치는 가을날입니다. 멀리 제주도 한라산에서부터 전라·경상도에 걸쳐 있는 지리산, 부산의 금정산, 그리고 가야산·황매산·용문산 등 전국의 웬만한 고산에 두루 피건만, 유독 강원도에 피는 물매화를 보지 않고서야 어찌 한 해를 마감하겠느냐는 듯 줄지어 찾아옵니다.

 
이른바 ‘립스틱 물매화’란 별칭으로 불리는 물매화. 흰색의 꽃잎 5장이 둥글게 원을 그리는 가운데 정중앙에 암술머리가 자리 잡고, 그다음 5개의 선홍색 꽃밥이 빙 둘러 나고, 또 그다음에 왕관 장식 같은 헛수술이 뾰족뾰족 솟아있다.

옛날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월나라의 서시(西施)는 처녀 시절 빨래하러 물가에 가자 물고기들이 그 미모에 반해 헤엄치는 걸 잊고 물밑으로 가라앉았다고 해서 ‘침어(沈魚) 부인’이란 칭호를 얻었고, 한나라의 왕소군(王昭君)은 하늘을 나는 기러기들이 날갯짓을 잊고 모두 땅으로 떨어져 ‘낙안(落雁) 미인’이라 불렸다고 하지요. 강원도 계곡에 핀 물매화가 바로 파란 가을 하늘을 계곡 물로 내려 앉히고 흰 구름이 물 위에 둥둥 떠다니게 하는 ‘가을 야생화의 여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국 산지의 산록에서 자라며, 7~8월 백색 꽃이 핀다.’는 여러 도감의 설명처럼 2달 전인 8월 초 백리향이 만개했던 가야산 등지에서 이미 꽃 핀 것을 보았건만, 가을이 무르익는 9~10월 평창·정선 계곡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물가에 핀’ 물매화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영문과에 갔다’는 광고 카피가 있듯, 강원도 정선 계곡에 핀 물매화를 보기 전에는 물매화의 접두어 ‘물’이 왜 붙었는지 몰랐다고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흰색의 꽃잎과 우윳빛 수술, 그리고 헛수술이 보석처럼 빛나는 물매화.

“메밀꽃이 피어날 무렵/ 타박타박 나귀를 타고/ 장을 따라 사랑을 따라서/ 오늘도 떠나가네~” 물매화를 보러 강원도로, 그 가운데서도 메밀꽃 흐드러지게 피는 봉평~대화 칠십 리 길을 멀다 않고 찾아가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립스틱 물매화’라 불리는 평창 계곡의 매혹적인 물매화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천안 성거산 등 다른 자생지에도 수술의 꽃밥이 선홍색인 물매화가 자라지만 개체 수가 풍성하기로는 평창 계곡이 손꼽힙니다.

 
지난 8월 초 경남 가야산에서 본 물매화. 2달 전 이미 피기 시작했다.

‘물가에 피는 매화를 닮은 풀꽃’ 정도로 풀이하면 딱 맞을 물매화는 이름대로 흰색의 꽃이 고매한 정절을 상징하는 매화꽃을 똑 닮았습니다. 다섯 장의 단아한 꽃잎과 중앙에 큼지막하게 자리 잡은 동그란 암술 하나, 연한 미색의 꽃밥이 달린 다섯 개의 수술, 그리고 왕관의 장식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수십 가닥의 헛수술 등이 물매화 꽃의 일반적인 형태이지만, 많은 이들을 매혹하는 물매화는 수술의 꽃밥이 선홍색으로 빛나는, 이른바 ‘립스틱 물매화’입니다. 청명한 가을 파란 하늘을 향해 우윳빛 꽃잎을 활짝 받쳐 든 것만으로도 예쁘기 그지없는데, 수술 끝에 붉은색 루주로 화장까지 했으니 가히 환상적이라 말할 만합니다.

 
물가에 핀 물매화도, 산기슭 가장자리에 핀 물매화도 더없이 멋진 강원도의 가을이다.


겨울의 끝자락을 밟고 선 봄 매화가 그윽한 향으로 온 천지를 뒤덮는다면, 가을로 접어드는 여름의 끝자락에선 물매화가 빨간 립스틱을 앞세운 채 온 세상을 유혹합니다. 강원도의 계곡은 깊고, 물은 맑고, 그 물에 비친 하늘은 짙푸르고, 그 물가에는 희고 단아한 물매화가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10.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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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절벽서 천사의 미소 같은 꽃 피우는, 지네발란

<업다운뉴스 : 2016.. 08 .14>

학명은 Sarcanthus scolopendrifolius Makino. 난초과의 상록성 여러해살이풀.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

또다시 굴러떨어질 걸 알면서도 온 힘을 다해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 감히 신에 맞서고 신을 기망했다가 신들의 눈 밖에 나 평생 바위를 밀어 올리라는 영겁의 형벌을 받았던 그리스 신화 속 인물. 바로 그 시시포스란 사내의 바위를 떠올리게 하는 야생난초가 있습니다. 바로 지네발란입니다. 머리 위로 손을 뻗어 둥근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와 집채만 한 바위를 안고 살아가는 지네발란. 시시포스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지만, 지네발란은 천사를 닮은 듯, 갓난아이를 닮은 듯 밝고 화사한 연분홍 꽃을 가슴에 가득 안고 환하게 미소 짓습니다.

 

밤하늘에 별이 빛나듯 거무튀튀한 바위 절벽을 환히 밝히는 지네발란 꽃송이들. 삼복 더위도 아랑곳 않고 싱싱하고 풍성하게 피어나 착생난초의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삼복 더위 속 내리쬐는 햇살을 막아줄 그늘 한 점 없는 산 중턱에 우뚝 솟은 바위 더미, 손을 대면 델 듯 달아오른 그 바위 절벽에 착 달라붙은 모습을 처음 보는 순간 지네발란에는 생존 자체가 바로 ‘시시포스의 형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모든 생명의 원천인 물이 거의 저장되어 있지 않을 양지바른 바위에 기댄 채 말라 비틀어져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적이라 여겨졌습니다. 금자란, 비자란, 석곡 등 다른 착생난초들과 마찬가지로 바다나 강, 호수 등 자생지 인근 수원지의 새벽안개가 만들어주는 이슬방울이 유일한 생명줄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위에 붙어사는 식물들이 거개 그렇듯, 지네발난 또한 줄기나 잎이 모두 통통해서 한번 들어온 물기를 오래 보관할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천사의 미소처럼 해맑고, 갓난아이의 몸짓처럼 천진난만한 얼굴을 가진 지네발란의 작은 꽃들.

바위에 달라붙은 둥글고 가느다란 줄기를 따라 양편으로 뾰족하게 어긋난 잎 모양이 지네의 발을 닮았다고 해서 지네발란이란 우리말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학명의 종소명(種小名) 스콜로펜드리폴리우스(scolopendrifolius)는 바로 그리스어의 지네(scolopendra)와 잎(folios)의 합성어로서 ‘지네를 닮은 잎’이라는 뜻이니, 서양인들도 지네발란의 외모에 같은 생각을 했다는 증좌라 하겠습니다.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나주에 최북단 자생지가 있기는 하지만, 주로 전남 해안과 제주도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치 지네가 기어오르듯 바위에 착 달라붙어 좌우로 잎을 뻗어내며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가고 있는 지네발란.

잎 겨드랑이에서 2~3mm의 꽃자루가 올라와 흰색과 연홍색 자주색이 뒤섞인 꽃이 하나씩 달리는데, 그 모습이 천사의 미소처럼 맑고 환하고 귀엽고 깜찍합니다. 타원형의 긴 꽃받침잎 3장과 곁꽃잎 2장, 그리고 3갈래로 갈라지는 순판 등을 갖춘 연분홍 꽃은 전체 크기가 1cm 정도에 불과하지만, 거무튀튀한 바위 위에 점점이 박혀 있는 모습은 마치 밤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영롱합니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등에는 6~7월 꽃이 핀다고 돼 있는데, 나주 자생지의 경우 7월 중순부터 8월 초순까지가 절정기입니다.

 

통통한 녹색의 이파리와 줄기, 그리고 겨드랑이 사이사이로 한 송이씩 꽃을 피워낸 지네발란.

최근 일부 야생화들이 자생지에서 아예 사라지거나, 크게 훼손됐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립니다. 누군가 몰래 파갔다거나, 다른 이들이 사진을 담지 못하도록 꽃을 훼손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정말 쉽지 않은 생육 환경 속에서 귀하디귀한 꽃을 선사하고 있는 지네발란에는 그런 못된 손길이 미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혹독한 자연환경은 이겨냈지만, 인간의 이기심만은 당해낼 수 없었다는 소리가 2012년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된 지네발란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업다운뉴스 : 2016..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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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주의보 뚫고 피어나는, 갯봄맞이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Glaux maritima var. obtusifolia Fernald. 멸종위기식물 2급

“그래, 그 귀하다는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도 좀 자세히 보자.”
“이게 뭐야. 이것 보자고 이 무더위에 여기까지 달려왔단 말이야?”

꽃 보러 가는 길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루 나절 시간 내서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오랫동안 별러온 친구들에게 “아주 귀한 것 보여 주겠다.”라고 설득해 동행했습니다.

 

<한낮 기온이 32도까지 치솟아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지난 5월 19일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싱싱하게 피어난 갯봄맞이의 연분홍색 감도는 흰 꽃 무더기. 일견 이름 없는 잡초처럼 보이지만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희귀종이다.>


짙푸른 동해도 보고, 가슴으로 밀려오는 바닷바람도 맞고, 시원한 파도소리도 듣자며 모처럼 산보하듯 즐겁게 떠나 왔습니다. 멀리 동해까지 가는 동안 내심 실제 눈으로 보면 그리 대단할 것 없어 보일 텐데, 공연히 친구들의 귀한 시간 빼앗는 건 아닌가 싶은 걱정이 들었는데, 역시나 첫 반응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 형성된 호수인 석호(潟湖), 해수와 담수가 섞여 있어 염담호(鹽淡湖)라고도 불리는 동해의 한 작은 호숫가에 북방계 식물인 갯봄맞이가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활짝 피어나 때늦게 ‘봄’을 환호하는 광경이 이색적이다.>

“정말 귀한 꽃이야. 이거, 원래는 북한 땅에 가야만 볼 수 있었던 꽃이야. 최근에야 남한에도 고성·포항·울산 등 동해 세 군데서 자생하고 있는 게 확인됐지만, 그래도 워낙 희귀종이어서 국가에서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해서 관리, 보호하고 있단 말이야.”

갯봄맞이의 희귀성, 중요성 등을 애써 강조해보지만, 여전히 심드렁해합니다. “그런데 오뉴월 감기 개도 안 걸린다고 했듯, 5월 중순이면 봄이라기보다 여름이라고 할 수 있잖아. 실제 폭염주의보까지 발령된 날씨인데, 식물명에 ‘봄맞이’란 단어가 들어갔으니 어째 어색하지 않니? 그게 바로 이 꽃의 유별성(類別性), 다시 말해 함경도 등 주로 북한 지역에 자생하는 북방계 식물의 특성을 보여주는 거라고. 워낙 추워서 봄이 늦게 시작되는 함경도 바닷가에서 5~6월에 피는 이 꽃을 보고 갯봄맞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라고·…” 나름대로 설명을 이어가자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열심히 보고 사진 많이 찍어라.’라고 말없이 응원합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는 갯봄맞이 꽃 무더기. 남한 내 자생지는 극소수이지만, 자생지 내 개체 수는 무수히 많아 그나마 다행이다.>

먼 길 오느라, 찾느라 바빴던 마음을 진정하고 찬찬히 꽃을 들여다봅니다. 바다와 분리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비바람이 강하게 불면 바닷물과 모래가 수시로 넘어올 것으로 보이는 해안 호수, 이른바 석호(潟湖) 가장자리 모래밭에 핀 갯봄맞이. 키가 작은 건 5cm 안팎에서, 제법 큰 것은 20cm를 넘어설 정도이지만 무리지어 자라는 모습은 일견 영락없이 ‘잡초’처럼 보입니다. 통통한 줄기에 잎이 좌우로 다닥다닥 달리고, 줄기와 잎 사이 겨드랑이마다 아주 옅은 붉은색이 도는 흰 꽃이 역시 다닥다닥 돋아나 있습니다. 꽃 색이 아예 흰 것도 있다고 합니다. 새끼손톱만 한 꽃은 끝이 5갈래로 갈라지고 그 가운데 수술 5개와 암술 1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잎과 꽃 모두 자루가 없이 줄기에 딱 달라붙어 있어 개개의 꽃을 예쁘게 담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신 자생지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지만, 자생지에서 만나본 갯봄맞이의 개체는 수백, 수천을 넘을 만큼 풍성해 멋진 군락 사진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모래밭에 줄지어 자라나 풍성하게 꽃 피운 군락, 호숫가 언덕에 자리 잡은 또 다른 무더기, 마주나는 잎겨드랑이마다 돋아난 꽃이 바닷가에서 자생하는 갯봄맞이의 생태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멸종위기식물 1,2급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는 77종의 식물 중 광릉요강꽃과 털복주머니란 등 대부분이 자생지와 개체 수가 극히 적은데다 빼어난 관상 가치에 따른 남획 등 인위적인 위협 요인이 더해지면서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면, 갯봄맞이와 같은 일부 북방계 식물은 지구온난화 등 자연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남한 땅에서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는데, 종 다양성 유지 차원에서 너나없이 각별한 보전 대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5.23>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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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 '건강성의 상징', 매화마름!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5.16>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 수생식물, 학명은 Ranunculus kazusensis Makino.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

야트막한 산과 계곡에 녹음이 짙어지고, 한라산과 가야산 등 높은 곳에 설앵초가 피어나니 잠잠하던 물속 식물들도 긴 침묵에서 깨어나 ‘여기도 생명이 있다, 꽃이 있다’고 소리칩니다. 그 선두에 흰 눈이 내린 듯, 섬진강변 날리던 매화 꽃잎이 어지러이 내려않은 듯 질척한 논에 가득 찬 흰 꽃이 있습니다. 바로 매화마름입니다. 계절의 여왕인 5월 강화도를 비롯해 서해안 일대 일부 논이나 수렁 등에서 풍성하게 피어납니다.

 

매화마름이 신록의 계절 5월 모내기 직전의 논에서 싱그럽고 단아한, 매화를 꼭 닮은 꽃잎을 활짝 열고 있다.

꽃은 물매화를, 잎은 붕어마름을 닮아 ‘매화마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수생식물은 예전엔 모내기 전 물이 고인 논이나 습지, 연못 등에서 흔히 보던 꽃이었으나 산업화 시기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들어, 한동안 한란·나도풍란·광릉요강꽃·섬개야광나무·암매와 함께 환경부 지정 6대 멸종위기야생식물(1급)로 보호받다가 몇 해 전에야 2급으로 내려앉았습니다.

 

건강한 논에서 자라는 매화마름이 수생식물답게 물속에서 방사상으로 줄기를 뻗고 눈처럼 흰 꽃을 가득 피우고 있다. 솔잎을 닮은 잎과 줄기가 미나리아재빗과의 식물답게 싱그럽고 청초하다.

논이 밭이나 과수원 등으로 개발되고, 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농약과 제초제 사용이 늘고 저수지와 수리시설이 발달해 천수답(물을 계속 가둬둬야 하는 논)이 줄면서 한 때 절멸 위기에까지 몰렸던 것이지요. 현재는 1990년대 초 발견돼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시민유산 1호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이자, ‘세계 최초의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강화도 초지리의 논(3,014㎡)을 비롯해 김포 화성 태안 고창 영광 등 서해안 일대 25곳에서 군락지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식인 쌀, 즉 벼가 모내기가 시작되는 5월부터 추수가 끝나는 10월까지 논의 주인이라면, 매화마름은 11월부터 이듬해 모내기 전까지 습지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한 논의 또 다른 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화마름이 피는 논은 마름과 부들, 버들붕어와 물장군 등 수생 동식물 150여 종이 함께 살아가는 터전이기도 합니다.

 
 

단 한 송이가 피든, 두 송이가 피든, 그보다 더 많은 5송이가 피든 기품 있는 모양새는 ‘매화’란 앞 이름을 결코 무색하지 않게 한다.

역으로 매화마름이 살지 못하는 논은 다른 동식물도 살 수 없는, 그저 쌀만을 생산하는 창백한 경작지라는 뜻이 되겠지요. 매화마름은 벼 베기가 끝난 건강한 무논(물을 댄 논)에서 11월 발아합니다. 그리고 겨우내 얼음 아래서 성장해 이듬해 4~5월에 흰 꽃을 피워 씨앗을 뿌린 뒤 물의 온도가 20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여름이 되면 녹아 사라집니다. 매화마름은 물 속 뿌리에서 수십 가닥의 줄기가 거의 수면에 붙어 방사상으로 퍼지는데, 물 속 잎은 가는 실처럼 갈라지고 물 위로 올라오는 잎은 통통합니다. 4월말쯤 꽃자루가 물 위로 올라와 매화처럼 5장의 꽃잎을 가진 흰색의 작은 꽃을 가득 피웁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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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하고 화려한 야생 난의 극치를 보여주는 새우난초!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5.02>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Calanthe discolor Lindl.

“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정말 야생에서 이렇게 많은 난초가 절로 자라 꽃을 피운단 말인가?”

봄이 온다고, 봄이 왔다고 동네방네 알리는 보춘화(報春花) 한 촉 나지 않는 서울·경기 지역에서 나고 자랐으니, 야생 난초가 풍성하게 핀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동차 길에서 불과 100여m 숲으로 들어갔을 뿐인데 마치 난대식물원에 들어온 듯 자생 난들이 여기저기에 피어 있어 첫 번째로 놀랐습니다. 게다가 한 송이, 두 송이 피는 게 아니라 수십, 수백 송이가 가득 펼쳐져 있어 두 번째로 놀랐습니다.



원시 자연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제주의 새우난초. ‘곶자왈’이라 불리는 제주의 숲에서 화산석과 이끼, 콩짜개덩굴, 다양한 늘푸른나무들 사이에 핀 모습이 어지러운 듯싶으면서도 자연스럽기가 그지없다.

뿌리의 생김새가 등 굽은 새우처럼 생겼다고 해서 새우난초라고 불리는 야생 난초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난초과의 식물이 대개 남방계 초본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제주도 및 남해, 중부 이남의 서해안 지역에 주로 자생하기에 서울·경기·강원 등 중부 및 내륙 지역 사람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언제인가부터 불법 남획이 횡행하면서 야생 난초의 자생지라 해도 온전한 꽃 한 송이 보기 힘들어졌으니, 우리 땅에서 절로 나서 꽃 피우는 야생 난초는 이제 그 누구에게나 친숙치 않은 ‘꿈속의 사랑’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야생 난초보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풍성한 군락을 이루고 화려한 꽃을 선사하는 새우난초가 더없이 반가운 이웃사촌처럼 여겨집니다.



수십, 수백 송이의 새우난초가 열병하듯 늘어서 풍성한 야생난초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정말 그렇습니다. 남방계 야생 난초의 북방한계선이랄 수 있는 충청도 안면도 숲에 들면 발 디딜 틈이 없다는 말이 실감 날 만큼 무성한 새우난초 군락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남획의 위험성 때문에 ‘다행히 아직은’이란 토를 달 수밖에 없지만. 그곳에선 이리저리 카메라를 들이대는 대로 멋진 그림이 그려집니다. 도자기 화분에 담아 가정이나 사무실 등에서 관상용으로 키우는 원예종 난초만 보아온 이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호쾌한 풍경이 그려집니다. 뿐만 아니라 개개 꽃의 크기는 물론, 화려한 색상과 생김새 또한 흔히 보는 관상용 난초를 능가합니다.

제주의 ‘곶자왈’ 숲을 환히 밝혀주는 금새우난초. 꽃 색의 노란색이어서 금새우난초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불린다.

특히 ‘곶자왈’이란 제주의 현무암 숲에서 만나는 새우난초에선 그야말로 원시 자연의 멋을 실감합니다. 용암이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요철(凹凸) 바위 지대에서 동백나무와 녹나무 등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 콩짜개덩굴 등 양치류 등과 공존하는 새우난초에선 그 무엇도 꺾을 수 없는 강한 생명력을 봅니다.

 

 

꽃 색은 물론 꽃받침 잎에서 다양한 색의 변이를 보여주는 새우난초.


생김새도 색도 다양합니다. 꽃이 흰색, 연한 자주색, 또는 적자색 등으로 피는 것은 물론 꽃받침 잎도 갈색, 붉은색이 도는 갈색, 연두색 등 여러 색을 나타내는 등 꽃과 꽃받침 잎 모두 색의 변이가 다양한 난초입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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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봄날의 환희를 노래하는, 남바람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4.18> 

학명은 Anemone flaccida F.Schmit.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

변산바람꽃으로부터 시작해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들바람꽃, 나도바람꽃, 회리바람꽃 등이 연이어 피었다가 지면서 찬란한 봄 ‘바람꽃들의 향연’이 끝나갈 즈음 대미를 장식하려는 듯 또 다른 바람꽃이 화사한 꽃잎을 열기 시작합니다. 바로 남바람꽃입니다.

 

연분홍 봄날을 찬미하듯 핑크빛 남바람꽃이 하늘을 향해 꽃잎을 활짝 열고 있다. 위가 지난 15일 제주도 중산간에서 만난 남바람꽃, 아래는 몇 해 전 전북 회문산에서 담은 남바람꽃이다.

찬바람이 남아 있던 3월 이미 피고 진 만주바람꽃에서 만주 벌판을 누비는 남정네들의 거친 숨소리를 들었다면, 한여름의 무더위마저 느끼곤 하는 4월 중순 만난 남바람꽃에선 열대 해변을 거니는 비키니 여인들의 요염함을 엿봅니다. ‘만주’와 ‘남’, 두 단어에서 비롯된 선입견이 뜬금없는 상상력을 불러온 탓이겠지만, 실제 꽃 생김새도 엉뚱한 주장을 그럴싸하게 뒷받침하기는 합니다. 특히 국내에 자생하는 다른 바람꽃들과 달리 남바람꽃은 연분홍색이 감도는 꽃잎(사실은 다른 바람꽃들과 마찬가지로 꽃받침 잎이 퇴화된 꽃잎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음)으로 인해 누구나 처음 보는 순간 환상적인 꽃 색의 매력에 한없이 빠져들게 됩니다. 그 뒤태가 예뻐, 젊은이건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건 가릴 것 없이 점잔 따윈 집어던지고 땅바닥에 털썩 엎드려 정신없이 바라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곤 합니다.

 

한라산 품에서 풍성하게 피고 있는 남바람꽃. 개발과 남채의 위험에서 벗어나 오래오래 살아남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남방바람꽃은 자생지가 제주도 중산간과 경남 함안 반구정, 전북 순창 회문산 등 전국에 딱 세 군데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몇 해 전 한 야생화 동호인이 전북 구례에서 상당한 규모의 자생지 한 곳을 더 발견했다고 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추가로 자생지가 발견됐다는 구례가 바로 1942년 박만규(1906~1977) 선생이 ‘조선의 남바람꽃’을 처음 발견했다고 한 곳이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1942년 보고한 자생지와 이번에 발견되었다는 곳이 구례군 내 같은 지역일 가능성은 낮지만, 암튼 아직까지 우리가 못 찾은 것일 뿐 더 많은 남바람꽃 자생지가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입니다.

 

막 터지기 직전의 꽃봉오리와 싱싱하게 피어난 두 송이 꽃의 매력적인 모습.

그런데 60여 년 전 발견됐다고 이미 발표된 남바람꽃이 오랫동안 깜깜히 잊혔다가 2006년 제주도 한라산 해발 550m 숲에서 다시 발견돼 일부 언론에 미기록종 ‘한라바람꽃’으로 잇따라 보도되고, 이듬해 ‘제주미기록종 : 남방바람꽃’이란 논문으로 정식 보고되는 해프닝이 벌어지면서 한동안 ‘남방바람꽃’으로 불리는 혼선을 빚기도 했습니다. 이후 경남 함안과 전북 순창의 자생지 두 곳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남방바람꽃이란 통일된 이름으로 불리다 1942년 박만규 선생이 논문에서 지칭한 ‘남바람꽃’으로 원위치하게 된 것입니다.

갈라진 나뭇가지와 하늘하늘 피어난 남바람꽃이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같은 남바람꽃이되, 한라산과 함안· 순창의 꽃에 다소 차이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주산 꽃은 대부분 흰색이고 일부가 옅은 자주색을 띠는 정도인 데 반해, 함안과 순창의 꽃은 진한 자주색을 띠는 게 많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세 곳 모두 꽃을 정면에서 보았을 때는 흰색으로 같습니다. 다만 꽃 가장자리와 뒷면에 연분홍이나 자주색을 띠는 정도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는데, 제주의 남바람꽃이 다른 2군데의 꽃과 차이가 난다고 말할 정도로 흰색 일변도인지는 의문입니다. 보는 이를 유혹하는 연분홍 뒤태의 매력은 결코 뒤지지 않는 걸 이번에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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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스런 황소를 닮은 토종 꽃, 쇠뿔현호색<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 04. 17>현호색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corydalis cornupetala Y.H. Kim et J.H. Jeong화사했던 벚꽃이 꽃비를 내리곤 지고 말았습니다. 꽃이 지는 게 눈에 보이니 화무십이홍(花無十日紅)을 실감하게 하는 대표적인 봄꽃으로 벚꽃을 손에 꼽지만, 이른 봄 피는 대개의 풀꽃이 열흘을 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굽니다. 그중 하나가 잡초처럼 피는 현호색이란 꽃입니다. 이르면 2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는데, 녹음이 짙어지면 꽃도 줄기도 이파리도 눈 녹듯 사라져 보통 사람들은 그런 꽃이 피었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자잘하고 가냘픈 풀꽃이지만 그 생김새에서 강인한 힘을 느낄 수 있는 쇠뿔현호색.

전국 어디에서나 잡초처럼 돋아나는데, 한순간 산비탈과 계곡에 가득 찼는가 싶다가는 순식간에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이런 현호색(玄胡索)을 보노라면, 자리를 탐하지 않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물러서는 풀꽃들의 생태가, 좋고 높은 자리를 탐하는 세속의 인간보다 한결 낫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순백의 흰색에서부터 연홍색까지 다양한 색의 변이를 보여주는 쇠뿔현호색.

현호색은 꽃 색은 물론 잎과 꽃 모양 등의 차이를 내세워 다른 종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적으로는 300종, 국내서도 20종 이상이 각각 별도의 종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현호색이든 꽃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포도송이처럼 생긴 총상(總狀)꽃차례에 풍성하게 매달린 개개의 꽃을 가만 들여다보면 작은 새들이 모여 지지배배 지저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종달새를 닮았다’는 뜻의 라틴어인 코리달리스(Corydalis)를 학명에 사용한 것으로 볼 때 현호색을 채집해 처음으로 이름을 붙인 식물학자 또한 같은 생각을 한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위·아랫입술 꽃잎에 선명하게 새겨진 줄무늬와 아랫입술 꽃잎의 쇠뿔형 선단이 쇠뿔현호색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현호색은 땅속에 구슬 모양의 덩이줄기가 있어 ‘땅구슬’이라고도 불리는데, 지름 1cm 정도의 이 덩이줄기가 약재로 쓰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현호색이란 식물을 모르고, 그 꽃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많은 이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현호색을 약용으로 복용해왔으니 참으로 우리와 가까운 인연의 꽃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우리나라 최초의 등록상품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활명수’가 바로 창출·진피·후박 등의 한약재와 바로 현호색을 섞어서 만든 의약품입니다. 1897년에 탄생해 올해로 120년이나 된 의약품이니 많은 이들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복용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른 봄 전국 각지의 숲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현호색. 잡초처럼 돋아났다가 녹음이 짙어지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현호색·갈퀴현호색·난쟁이현호색·남도현호색·들현호색·섬현호색·완도현호색·왜현호색·점현호색· 조선현호색·좀현호색·줄현호색·진펄현호색·탐라현호색·털현호색 등이 국립수목원이 운영 중인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등록된 국내 현호색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소개할 현호색은 이 목록에 없는 쇠뿔현호색이란 종입니다. 2007년 신종으로 학계에 보고됐지만, 아직 정식 등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북 경산의 한두 군데 숲에서만 자생하는 쇠뿔현호색은 꽃의 ‘아랫입술 꽃잎(하순판)’과 ‘윗입술 꽃잎(상순판)에 짙은 자주색 두 줄무늬가 있으며, 특히 ‘아랫입술 꽃잎’ 양 끝이 뾰쪽하고 가운데가 반원형으로 움푹 들어간 게 전체적으로 쇠뿔 모양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쇠뿔현호색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2004년 신종으로 분류된 남도현호색. ‘안쪽 꽃잎’(내화판)이 V자로 파이는 게 특징이다.

그런데 다른 많은 현호색에 비해 쇠뿔현호색에 유난히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현호색의 가냘픈 속성을 극복한 듯한 강인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쇠뿔’이란 단어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기운, 즉 황소의 우직함 속에 내재한 용맹스러움을 자잘한 풀꽃에서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9년 개봉돼 292만 명이란 파격적인 관객 수를 기록한 독립영화 ‘워낭소리’에 나오는 늙은 황소의 우직함과, 그리고 이중섭의 황소 그림에서 느껴지는 강인하고 활기찬 힘으로 나른한 봄날을 이겨내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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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릴 수 없는 봄 ‘숲의 여왕’, 얼레지!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4.03>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Erythronium japonicum (Balrer) Decne.

4월의 시작과 함께 ‘되돌릴 수 없는’ 봄이 우리 곁에 찾아왔습니다. 더는 겨울옷이 필요 없는 화창한 봄날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지요. 화사한 날씨만큼이나 숲은 찬란합니다. 귀는 예서제서 삐죽빼죽 올라오는 새싹들로 요란하고, 눈은 여기저기서 피어나는 꽃들로 현란합니다. 너도바람꽃과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들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노루귀, 복수초, 현호색, 제비꽃, 개불알풀, 광대나물 등등. 이른 봄 피는 풀꽃들이 한꺼번에 요란스럽게 피어나는 바람에 ‘꽃 멀미’를 할 지경입니다.

 
지난 3월 중순 경북 포항 구룡포 인근 산비탈에서 만난 얼레지. 중부·내륙 지방에 비해 보름 정도 빨리 개화했지만, 꽃잎을 활짝 열어 적힌 게 ‘바람난 여인’이란 꽃말을 실감케 한다

그렇게 피어나는 풀꽃 들꽃에겐 저마다의 매력이 있으므로 우열을 가린다는 건 어리석고 부질없는 짓이건만, 많은 이들이 하나같이 주목하는 꽃이 있습니다. 바로 4월 ‘숲의 여왕’이라 일컫는 얼레지입니다. 어떤 이는 S라인의 팔등신 미인 같다고 하고, 어떤 이는 셔틀콕의 멋진 모습이 연상된다고 하는데, 6장의 연보랏빛 꽃잎을 뒤로 활짝 젖힌 모습이 제 눈엔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가 전성기 시절 우리에게 선사했던 환상적인 스핀 플레이와 똑 닮아 보입니다.

 
‘여기가 바로 천상의 화원’이라고 말하는 듯 온 숲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얼레지 군락.

처음 얼레지란 이름을 들었을 때 ‘엘레지(비가·悲歌)의 여왕’으로 불리는 원로가수를  떠올렸는데, 그 뜻과는 상관없고 초록색 잎에 갈색 얼룩이 있다고 해서 붙은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합니다. 또 ‘가재무릇’이라고도 불리고, 삶아서 말린 잎으로 묵나물을 해 먹으면 미역 맛이 난다고 해서 미역취라고도 불립니다. 나물로 먹을 정도라는 건 그만큼 개체 수가 많았다는 뜻인데, 지금도 4월 중순 경기·강원도의 높고 깊은 산에 가면 산비탈 전체가 얼레지 꽃밭으로 물드는 장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천하를 호령할 듯 도도하게 피어있는 흰얼레지. 꽃 색만 다르지만, 별도의 학명을 가진 별개의 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얼레지가 그렇게 잘 번지도록 돕는 매개체는 바로 개미라고 합니다. 얼레지의 씨에서 개미의 유충과 비슷한 냄새가 나는데, 이 때문에 개미들이 얼레지 씨를 열심히 자신들의 개미집으로 옮겨다 놓고, 그 덕분에 얼레지 씨는 안전한 땅속에서 싹을 틔운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 씨가 바로 이듬해 결실을 거두는 건 아니고, 싹이 트고 꽃이 피기까지 무려 7~8년이 걸린다니 인간사든 자연계든 무엇이든 이루려면 긴 인고의 세월이 필요한 가 봅니다.

 
느닷없이 봄눈이라도 내리면 기온이 20도 이상은 올라야 꽃잎이 벌어지는 특성상, 꼭 입을 다문 채 추위에 떨고 있는 얼레지.

‘숲의 여왕’ 얼레지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만나려는 이 또한 제왕이 된 듯 게으름을 한껏 피우며 다가가야 합니다. 기온에 따라 꽃잎을 닫았다가 다시 여는, 이른바 수면(睡眠)운동을 하는 식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온도가 25도 이상 올라가야 6장의 꽃잎이 완전히 뒤로 젖혀지는데, 그러려면 4월 초의 기온을 고려하면 적어도 정오 무렵은 되어야 하지요. 이런 생태를 모르고 이른 아침부터 얼레지 꽃을 찾아갈 경우 “얼레지가 많기는 한데 하나같이 꽃잎을 오므렸네. 아직 개화 시기가 안 됐나. 다음에 다시 와야지.” 하고 돌아서기 십상입니다.

 
깊은 산 계곡 근처 명당에 자리 잡은 얼레지, 그리고 꿩의바람꽃과 밀어를 나누는 듯한 얼레지.

만개한 얼레지는 6장의 꽃잎이 서로 꽁지에서 맞닿을 정도로 활짝 젖혀지고, 중앙에는 1개의 암술과 6개의 수술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꽃잎에는 W자 형태의 무늬가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는데, 이는 수분을 도울 벌·나비를 유혹하기 위한 장치라고 합니다. 어쨌든 꽃은 식물의 생식기인 셈인데, 그것을 대낮에 드러내는 얼레지의 꽃말이 ‘질투’ 또는 ‘바람난 여인’인 것은 참으로 그럴싸합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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