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리향, 솔나리, 한라송이풀, 네귀쓴풀… 가야산은 여름 야생화의 보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08.08>
입추(7일)가 지났건만, 무더위는 지칠 줄 모릅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니 바다로, 강으로 발길을 돌릴 만하건만 ‘꽃쟁이들’은 아랑곳 않고 산을 오릅니다. 뒷산으로 가볍게 산책을 떠나는 게 아니라, 해발 1400m가 넘는 가야산을 향해 새벽길을 나섭니다. ‘폭염경보, 야외활동 자제’를 당부하는 행정안전부의 안전 안내 문자에도 불구하고 고행하듯 높은 산을 오르는 이유는 단 하나, 흘린 땀방울만큼 보상해주는 곱고 귀한 야생화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리향과 솔나리, 한라송이풀, 네귀쓴풀, 원추리, 가야잔대, 산오이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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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해(雲海) 위로 해가 솟는 가운데 칠불봉 바위 겉에 핀 백리향이 아침 햇살에 붉게 반짝이고 있다. 꿀풀과의 낙엽 활엽 반관목, 학명은 Thymus quinquecostatus Celak. ©김인철 |
역시 폭염 경보가 내려졌던 지난 8월 2일 경북 성주군의 백운동 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해 서성재를 거쳐 3시간 만에 가야산 최고봉인 해발 1433m 칠불봉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산 굽이굽이 가득 찬 구름바다 사이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칠불봉 둘레에 만개한 백리향(百里香)이 연분홍 꽃물결을 이루는 장관을 보았습니다. “아,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이 바로 여기로구나.” 꽃은 물론 줄기 잎 등 전초에서 진한 향기가 나며, 그 향이 사방 백 리를 간다 하여 그 이름을 얻었습니다. 일종의 토종 허브(herb)인데 한여름 가야산은 물론 설악산이나 지리산, 한라산 등 내로라하는 높은 산 정상 부근까지 올라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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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봉인 상왕봉 바로 아래 풀밭에 핀 솔나리가 아침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고 있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Lilium cernuum Kom. ©김인철 |
삼복더위에도 생기를 잃지 않고 가야산 정상을 야생화 천국으로 만드는 건 백리향뿐이 아닙니다. 단아한 자태와 투명한 연분홍 꽃색 등으로 참나리와 하늘나리, 중나리, 말나리, 땅나리 등 여타 나리꽃 중 단연 최고라 일컫는 솔나리가 그 뒤를 잇습니다. 역시 설악산과 남덕유산과 운무산 이만봉 등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야 만날 수 있는 솔나리는 가야산의 여러 봉우리 중에서도 주봉인 해발 1430m 상왕봉 주변에서 우아한 꽃송이를 뽐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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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인 한라송이풀이 홍자색 꽃을 막 터뜨리고 있다.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Pedicularis hallaisanensis Hurus. ©김인철 |
한라산과 설악산 정상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한라송이풀도 한여름 가야산을 대표하는 고산식물입니다.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을 만큼 희귀종인데, 백두산 고산평원에서 피는 구름송이풀과 유사하면서도 줄기에 털이 많아서 별도의 종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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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꽃잎에 점점이 박힌 파란색 무늬로 인해 ‘청화백자’라는 별칭을 얻은 네귀쓴풀. 용담과의 한해살이풀. 학명은 Swertia tetrapetala (Pall.) Grossh. ©김인철 |
구슬땀을 흘리고 오른 가야산 정상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여름 야생화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인의 말처럼 가만 들여다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네귀쓴풀입니다. 네 장의 꽃잎을 모두 합해야 1cm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크기가 매우 작지만, 흰색 바탕에 청색 점이 알알이 박힌 모습은 마치 청화백자를 연상케 할 만큼 우아하고 기품이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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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향과 산봉우리,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다. ©김인철 |
해발 1000m가 넘는 가야산 정상에는 야산에선 만날 수 없는 희귀종이거나, 같은 종이라도 꽃 색이 더욱 곱고 진하며 잡티가 없는 야생화가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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