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우리꽃’-14-갯봄맞이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4-4-25>

 

떠나는 ‘절정의 봄’을 안타까워하는 듯 피는 갯봄맞이!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Lysimachia maritima (L.) Galasso, Banfi & Soldano var. obtusifolia (Fernald) Yonek.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

봄의 끝자락인 5월 하순 때 이른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동해의 한 작은 호숫가에 싱싱하게 피어난 갯봄맞이꽃 무더기. 일견 이름 없는 잡초처럼 보이지만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의 희귀종이다. @사진 김인철


“그래, 그 귀하다는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보자.”

“이게 뭐야. 이것 보자고 이 무더위에 여기까지 달려왔단 말이야?”

몇 해 전 5월 하순 꽃 보러 가는 길에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루 시간 내서 함께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오랫동안 별러온 친구들에게 “아주 귀한 것 보여 주겠다.”라고 설득해 동행했습니다.

사진 김인철


짙푸른 동해도 보고, 가슴으로 밀려오는 바닷바람도 맞고, 시원한 파도 소리도 듣자며 모처럼 산보하듯 즐겁게 떠났습니다. 멀리 동해까지 가는 동안 내심 실제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 텐데, 공연히 친구들의 귀한 시간을 빼앗는 건 아닐지 걱정했는데, 역시 첫 반응은 신통치 않습니다.

“전에는 비무장지대 넘어 북녘에 가야 볼 수 있던 꽃이야. 최근에야 남쪽에도 고성과 포항, 울산 등 동해 서너 군데에서 자생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어. 그래도 워낙 희귀종이어서 국가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서 관리, 보호하고 있어.”

 밤하늘의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는 갯봄맞이꽃 무더기. 전형적인 북방계 식물인 갯봄맞이가 연홍색 꽃잎을 활짝 열고 떠나는 ‘절정의 봄’을 아쉬워하는 듯하다..@사진 김인철


갯봄맞이의 희귀성, 중요성 등을 애써 강조하지만, 여전히 심드렁합니다.

“그리고 갯봄맞이 꽃이 피어 있는 지금 5월 중순은 봄이라기보다 여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식물명에 ‘봄맞이’란 단어가 들어갔으니 어째 어색하지 않니? 그게 바로 이 꽃의 유별성(類別性), 다시 말해 함경도 등 주로 북녘땅에 자생하는 북방계 식물의 색다른 특성을 보여주는 거야. 예로부터 워낙 추운 지방이어서 봄이 늦게 시작되는 함경도 바닷가에서 5~6월에야 피는 이 꽃을 보고 ‘갯봄맞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라고·…”

나름대로 설명을 이어가자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열심히 사진 많이 찍어라.’라고 말없이 응원합니다.

사진 김인철


먼 길 오느라, 자생지 찾느라 바빴던 마음을 진정하고 찬찬히 꽃을 들여다봅니다.

바다와 분리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비바람이 강하게 불면 바닷물과 모래가 수시로 넘어올 것으로 보이는 해안 호수, 이른바 석호(潟湖) 가장자리 모래밭에 핀 갯봄맞이. 키가 작은 건 5cm 안팎에서, 제법 큰 것은 20cm 정도에 이르지만 무리 지어 자라는 모습은 그저 영락없는 ‘잡초’처럼 보입니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 형성된 호수인 석호(潟湖)의 모래밭에 떼 지어 자라며 활짝 꽃을 피운 갯봄맞이. 자생지는 극소수이지만, 자생지 내 개체 수는 풍성해 그나마 다행이다.@사진 김인철


통통한 줄기에 잎이 좌우로 다닥다닥 달리고, 줄기와 잎 사이 겨드랑이마다 옅은 붉은색이 도는 흰 꽃이 다닥다닥 돋아나 있습니다. 꽃 색이 아예 흰 것도 있습니다. 새끼손톱만 한 꽃은 끝이 5갈래로 갈라지고, 그 가운데 수술 5개와 암술 1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잎과 꽃 모두 자루가 없이 줄기에 딱 달라붙어 있어 낱낱의 꽃을 사진에 예쁘게 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자생지의 수가 극히 제한적이고 전초의 크기가 작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자생지마다 자라는 갯봄맞이의 개체 수는 수백, 수천을 넘을 만큼 풍성해 다행스러웠습니다.

사진 김인철

출처 :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Posted by atom77
,

‘멸종위기 우리꽃’-12-독미나리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4-2-22>

 

소 풀 뜯고 실개천 흐르던 고향 떠올리는 독미나리!

산형과의 여러해살이 유독식물. 학명은 Cicuta virosa L.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백두산 인근 누런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들판과, 물이 흐르는 천변에 핀 독미나리꽃.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자연환경 때문인지 흔하고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사진 김인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렇습니다. 누렁이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들과, 그 한편에 유유히 흐르는 실개천에서 ‘차마 꿈엔들 잊힐 리’ 없는 고향이 순식간에 떠올랐습니다. 몇 해 전 백두산 인근의 특별할 것도 없는 한 농촌 마을의 정경에서 켜켜이 먼지가 쌓인 채 잊혀 가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난 것이지요. 도시화와 산업화의 물결이 온 나라를 휩쓸기 전, 우리 농촌 그 어디에서든 흔히 만났을 법한 목가적 풍경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추억됐다고 할까요?

사진 김인철


더불어 눈여겨보는 이 어디에도 없건만, 저 스스로 이곳의 주인장이라고 외치는 듯 활달하게 핀 하얀 꽃 무더기가 평화로운 너른 들판에 화룡점정하듯 박혀 있어 먼 길 마다치 않고 찾아온 이방인의 눈길을 일순 사로잡습니다. 골프공 모양의 흰 꽃송이 수십 개가 우산처럼 활짝 펼쳐진 독미나리입니다. 흔히 향긋한 나물로 식용하는 미나리와 달리, 뿌리 등에 시큐톡신(cicutoxin)이라는 유독 성분이 있다고 해서 이름의 앞머리에 ‘독(毒)’ 자가 붙었습니다. 북방계 습지식물로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중국, 시베리아, 유럽, 북아메리카에도 분포합니다.

골프공 모양의 꽃송이 수십 개가 우산 형태로 활짝 펼쳐진 독미나리꽃. 7월 초순부터 8월 중순까지 흰색으로 핀다.@사진 김인철


글머리에서 밝혔듯 백두산 주변 습지는 물론, 연변 전 지역의 하천과 습지, 논둑 등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데, 국내에서는 20년 가까이 전인 2005년 이미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자생지가 크게 줄었기 때문인데, 개체수가 풍부한 연변지역의 전형적인 농촌 풍경에서 그 원인에 대한 해답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누렁이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도랑과 개천이 흐르고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있고, 논둑과 밭이랑이 연이어 너른 들녘에 펼쳐지는 자연환경이 보존돼야 하는 데 산업화와 도시화, 개발의 물결 속에 그 모든 것이 사라졌고 덩달아 독미나리도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지요. 게다가 심화하는 지구온난화의 여파로 한반도에서 북방계 희귀식물의 생존은 갈수록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사진 김인철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은 양구와 태백, 평창, 횡성 등 강원도 지역에 독미나리 자생지가 주로 분포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2005년 멸종위기종 지정 이후 관련 부처와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차항리,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 등 강원도에서 잇따라 새로운 자생지가 발견된 바 있습니다. 특히 2012년에는 강원도가 아닌, 전북 군산 백석제에서 독미나리 2만여 개체가 생육하는 것으로 알려져 큰 화제가 됐는데, 국내 최대 군락지이자 최남단 서식지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강원도 인제 농경지 한편 작은 도랑 가에 겨우 자리 잡은 독미나리. 10여 개체가 아슬아슬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사진 김인철


독미나리는 높이 1m 정도까지 자라고, 7월 초순부터 8월 중순까지 공 모양의 흰색 꽃 10여 개가 여러 개의 우산 형태로 달립니다. 식용식물인 미나리(높이 30㎝ 내외)와는 우선 독미나리의 키가 크다는 점에서 구별되며, 잎 모양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독미나리의 잎은 2회 깃꼴로 갈라지고 소엽은 선상 피침형 또는 넓은 피침형인 데 반해, 미나리의 잎은 1∼2회 깃꼴로 갈라지고 소엽은 달걀 모양입니다.

사진 김인철

출처 :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Posted by atom77
,

 ‘멸종위기 우리꽃’-11-금자란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4-1-22>

 

‘절멸 위기의 금자씨’ 금산자주난초!


난초과의 상록성 여러해살이 착생난초. 학명은 Gastrochilus matsuran (Makino) Schltr.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작지만, 화려하고 현란한 난초과 꽃의 매력을 한껏 뽐내는 금자란. 2017년 4월 제주도에서 만났다.@사진 김인철


통상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뚜렷한 온대 기후 지역으로 분류하지만,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따듯한 남쪽 나라’ 제주도는 분명 예외 지역입니다.

미국인 지리학자 글렌 트레와다(Glenn T. Trewartha)의 구분법에 따르면 월 평균 기온이 섭씨 10도가 넘는 달이 1년 중 최소 8개월 이상이면 아열대 기후로 정의하는데, 제주도는 4월부터 11월까지 평균 기온이 10도를 상회하기 때문이죠. 심지어 서귀포의 경우 12월도 평균 기온이 9.4도, 1년 전체 평균 기온이 16.9도에 이르는, 전형적인 아열대 기후 지역의 특성을 보인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식물생태계 또한 육지와는 확연히 달라 사시사철 푸르고 잎이 넓은 상록활엽수를 비롯한 열대성 식물이 대거 자생하고 있습니다.

사진 김인철


앞서 ‘멸종위기 우리꽃-10-노랑만병초’ (2023/12/26) 편에서 백두산과 그 일대가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보고라고 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제주도가 한반도에서 자라는 남방계 식물의 최대 자생지라고 일컬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향기가 좋은 꽃을 피우며, 가장 진화해 높은 가치를 지닌 식물군인 난초과 식물의 보고라 꼽을 만합니다.

두툼한 타원형 잎은 물론 꽃잎에도 자주색 반점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게 한눈에 들어온다. 금산자주난초란 원래 이름이 왜 붙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사진 김인철

 

난초과 식물은 전 세계적으로 2만 5,000종 이상이 분포하는, 가장 다양성이 높은 식물이지만 우리나라 전역에는 불과 100여 종만이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자라는 야생 난초 100여 종 가운데 무려 81종이 제주 섬 한 곳에서 자생한다니, 국내 난 애호가들의 관심이 ‘난초 천국’ 제주에 쏠릴 만합니다. 특히 연중 기온이 온화하고 공기 중 습도가 높아 나무의 줄기나 가지, 바위 등에 붙어서 사는, 이른바 착생란(着生蘭) 또는 암생란(岩生蘭)이라 부르는 희귀 난초가 섬 일부 지역에 자생합니다. 석곡과 금자란, 비자란, 차걸이란, 혹난초, 콩짜개란, 풍란, 나도풍란, 탐라란, 지네발란 등이 그들입니다. 이 중 풍란과 나도풍란, 탐라란, 금자란, 바자란 등 5종이 멸종위기 야생식물 1급 13종에 포함된 절체절명 위기의 식물입니다. 차걸이란과 지네발란, 혹난초, 콩짜개란 등 4종은 2급 79종에 들었습니다.

사진 김인철 


오늘 소개할 주인공은 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착생난초의 하나로, 앙증맞고 귀엽기 짝이 없는 꽃을 피우는 금자란(錦紫蘭)입니다. 생김새는 생소하지만, 들어본 듯한 식물명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여주인공을 떠올리게 하고, 작은 이파리는 물론 자잘한 꽃잎 곳곳에 촘촘히 박힌 붉은색 작은 반점은 주근깨투성이의 ‘말괄량이 삐삐’를 생각나게 합니다. 경남 남해의 금산(錦山)에서 처음 발견되었고 잎과 꽃에 자주색 반점이 있어 ‘금산자주난초’란 긴 이름이 붙었는데, 점차 줄임말인 ‘금자란’이라 불리다 아예 국명이 되었습니다.

상록 양치식물인 콩짜개덩굴과 함께 나무겉에 뿌리를 내린 금자란. 전형적인 착생난초임을 보여준다.@사진 김인철 


비자나무나 단풍나무, 소나무 등의 줄기나 가지 껍질에 붙어사는데, 뿌리부터 줄기나 잎, 꽃에 이르기까지 전초가 채 10cm도 되지 않습니다. 몸통에 해당하는 줄기 자체가 길이 5cm 안팎으로 짧고 마디가 많은데, 마디마디 옆에서 백색의 뿌리가 나와 나무껍질에 달라붙습니다. 길이 1cm 안팎의 타원형 잎이 줄기를 따라 두 줄로 어긋나는데, 자주색 반점이 있습니다. 4~5월 잎겨드랑이에서 1cm쯤 되는 꽃대가 나와 1~4개씩 입술꽃잎 등을 갖춘 특유의 난초꽃이 달리는데, 연한 황록색 꽃잎에도 자주색 반점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사진 김인철


세계적으로 중국과 대만, 일본 등지의 덥고 습한 아열대 지역에 분포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 서귀포와 경남 남해군 섬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여타 난초들이 그러하듯 높은 관상 가치로 인해 무분별하게 남획되면서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2012년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했다가 2017년 1급으로 올렸습니다. 하지만 기존 자생지는 아예 사라지거나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고, 새로운 서식지는 발견되지 않고 있어 자칫 절멸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출처 :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Posted by atom77
,

 ‘멸종위기 우리꽃’-10-노랑만병초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3-12-20>

 

백두 평원을 노랗게 뒤덮는 ‘멸종위기’ 노랑만병초!

진달래과의 상록 활엽 관목. 학명은 Rhododendron aureum Georgi.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6월 중순 만개한 백두산의 노랑만병초. 수목한계선 위쪽 고원 지대에서 무리 지어 자란다. 멀리 봉우리 기슭마다 남아 있는 만년설과 사스래나무 숲이 노랑만병초의 대규모 자생지인 높이 2,750m 백두산의 위용을 말해준다.@사진 김인철


털복주머니란, 암매, 나도범의귀, 갯봄맞이꽃, 독미나리, 장백제비꽃, 홍월귤, 피뿌리풀, 분홍장구채, 큰바늘꽃, 산작약, 기생꽃, 대성쓴물, 조름나물·…. 들어본 듯도 하고, 생소하기도 한 이들의 공통점은?

개체 수가 크게 줄고 있어 작금의 위협 요인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머지않은 장래에 아예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 멸종위기식물 가운데 북위 40도 이상 아한대 지역에 그 뿌리를 둔 북방계 식물이란 점입니다. 그 옛날 빙하기 때 백두대간을 타고 저 멀리 제주도까지 밀고 내려갔던 북방계 식물들이 기온이 오르면서 긴 세월에 걸쳐 대부분 멸종했고, 현재는 겨우 수십 종이 설악산과 한라산 등 높은 산 정상 부근이나 기온이 낮은 골짜기 등에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사진 김인철


2007년 설악산에서 발견돼 현재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관리 중인 노랑만병초도 그중 하나입니다.

당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1967년 이후 문헌상으로 전해지던 그 실체를 40년 만에 확인’ 제하의 보도 자료를 통해 “백두산의 대표적인 고산식물로서 남한 내 자생 여부가 불분명하고 문헌상의 기록만 남아있어 학자에 따라 남한에 자생하지 않는 생물로 여겨 왔으나,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모니터링을 통해 남한에도 자생하고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발 1,6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약 50㎡ 면적에 수십 개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군락’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불과 수십 개체가 털진달래 등 다른 관목의 위세에 눌려 겨우 연명하는 위태로운 실정입니다.

생김새는 철쭉을 닮았고, 색은 옅은 노란색, 또는 흰색인 노랑만병초꽃. 긴 타원형에 두툼한 가죽질의 잎을 예로부터 약재로 사용했다고 해서 ‘만병초’란 이름이 붙었다.@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이렇듯 한반도 북방계 식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하면서 해발 2,750m 백두산이 식물학적 차원에서 그 가치를 새롭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국토와 민족과 국가의 시원(始原)이라는 상징성 차원에서뿐 아니라,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고향이자 보고, 마지막 안식처라는 면에서 그 중요성을 새삼 인식한 것이지요. 높이 2,500m가 넘는 봉우리만 16개에 이르는 백두산과 그 일대에 2,300종 이상의 식물이 서식하는데, 특히 6월부터 8월 사이 해발 2,000m 안팎의 고원은 두메양귀비를 비롯해 들쭉나무, 홍월귤, 두메자운, 바위구절초, 노랑만병초, 가솔송, 좀참꽃, 구름범의귀, 돌꽃 등 300여 종의 북방계 야생화가 무더기로 피는 천상의 화원(花園)으로 변모합니다.

특히 6월 중순 해발 1,000m 안팎의 수목한계선 위쪽 툰드라 지대에 올라서면 여기저기 높은 봉우리 사이사이 그늘진 곳에 잔설(殘雪)로 남은 만년설과는 차원이 다른, 연노랑 군락이 눈에 들어옵니다. 키 작은 관목과 초본·이끼류·지의류가 잔디밭처럼 펼쳐진 백두평원에서 방대한 규모의 연노랑 물결로 일렁이는 꽃, 바로 노랑만병초입니다. 풀 ‘초(草)’를 이름 뒤에 달았지만, 엄연히 나무인 노랑만병초는 들쭉나무 등 다른 키 낮은 나무들과 마찬가지로 고산 툰드라 지대를 살아가는 전형적인 북방계 관목입니다.

백두산 높은 골 기슭의 노랑만병초 군락. 멀리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천지를 에워싸고 있는 16개 고봉 중 하나인 높이 2,670m의 천문봉이다.@사진 김인철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높이 1m까지 자란다고 돼 있는데, 실제 백두산에서 만난 노랑만병초는 30~50cm 정도로 어른 무릎에도 못 미칠 만큼 키가 작았습니다. 꽃 색은 흰색에 가까운 노란색 또는 흰색으로, 한낮 쏟아지는 햇살을 받은 꽃 더미는 한겨울의 설원 같습니다.

비슷한 식물로 같은 진달래과의 만병초가 있습니다. 키가 3~7m로 크고, 꽃 색이 흰색 또는 연분홍색이며, 잎 뒷면에 잔털이 있어 구분됩니다. 설악산과 지리산, 태백산, 함백산, 성인봉 등 제법 여러 곳에서 자생합니다.

노란만병초와 꽃과 잎 모양이 똑 닮은 만병초. 키가 4m 안팎으로 크고, 잎 뒷면에 잔털이 있어 구별된다. 6월 하순 강원도 함백산에서 만났다.@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출처 :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Posted by atom77
,

‘멸종위기 우리 꽃’-2-애기송이풀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3-04-13>

 

신록의 숲을 붉게 물들이는 애기송이풀!

학명은 Pedicularis ishidoyana Koidz. & Ohwi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수류화개(水流花開). 물가에 가득 핀 애기송이풀이 농익어 가는 신록의 봄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사진 김인철


긴 겨울잠에서 깬 숲이 4월에 접어들면서 갈색에서 신록으로, 다시 짙은 초록으로 농익어갑니다. 사람들의 발길도 자연스레 물가를 향합니다. 지구온난화의 여파인지 갈수록 봄은 실종되고 여름이 일찍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기온이 솟구친다 해도 벌써부터 물속으로 뛰어들 수는 없는 일.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연한 홍자색 꽃이 천변에 한 무더기 피어나 옷깃을 잡습니다.

사진 김인철


송이풀, 흰송이풀, 한라송이풀, 구름송이풀, 만주송이풀, 대송이풀 등 10여 종의 송이풀 속 식물 가운데 유독 ‘애기’란 접두어가 붙은 애기송이풀. 그 연유를 쫓다 보면 애기송이풀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애기가래에서 애기황새풀에 이르기까지 각종 식물도감에 나오는, 40여 종의 ‘애기’ 식물들이 대개 그러하듯 전초나 꽃의 크기가 작거나 여릴 것이란 선입견과 달리 애기송이풀은 결코 잎이나 꽃이 다른 송이풀에 비해 작지 않습니다.

순백에 가까운 연분홍으로 핀 애기송이풀.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쑥갓처럼 생긴 잎은 길이가 20~30cm에 이를 정도로 길쭉합니다. 4~5월 대개는 홍자색이지만, 드물게 순백에 가까운 연분홍으로 피는 꽃은 지름이 4~5cm로 제법 큼직합니다.

게다가 꽃이 많게는 십여 송이가 뭉쳐서 피기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들어올 만큼 화려하고 화사합니다. 다만 또렷한 줄기가 없어 전초가 곧추서지 못하고, 잎이 땅바닥을 기듯 옆으로 퍼지기 때문에 다른 송이풀에 비해 왜소해 보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클로즈업한 꽃 사진에서 드러나듯 갓 태어난 병아리나 어린 새가 부리가 달린 고개를 내밀며 세상을 살피는 듯한 윗입술, 어린 새 생명이 날갯짓을 하는 듯한 아랫입술의 모습은 애기송이풀꽃 특유의 깜찍한 이미지를 잘 보여줍니다.

갓 부화한 어린 새가 세상을 살피는 듯 깜찍한 표정의 애기송이풀꽃들. @사진 김인철


애기송이풀은 특히 전 세계적으로 경기 연천과 가평, 강원 횡성, 충북 제천, 경북 경주, 경남 거제 등 일부 지역에서만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입니다. 연천에서 거제도까지 비교적 넓은 지역에 분포하지만, 전체 자생지가 10개에도 못 미치는 데다 자생지 개발과 남획 등으로 훼손 가능성이 높아 2012년부터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보호되고 있습니다. 연천과 가평, 제천의 경우 홍수 등으로 계곡물이 넘치면 바로 휩쓸려 갈 수 있는 저지대인 데다 반경 100~200m 내에 인가와 도로가 있고 인근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행락지도 있어 각별한 보호 조치가 요구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개성의 천마산에서 처음 발견돼 당시엔 ‘천마송이풀’로 불렸던 데서 알 수 있듯 북한에도 자생합니다.

 

 

쑥갓처럼 생긴 이파리를 방석처럼 펼치고 홍자색 꽃을 피운 애기송이풀.@사진 김인철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3-04-13>

Posted by atom77
,

‘멸종위기 우리 꽃’-7-참닻꽃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3-09-21>

 

‘정주(定住)의 닻’ 높이 들고 안식처를 찾는 참닻꽃!

용담과의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풀. 학명은 Halenia coreana S.M.Han, H.Won & C.E.Lim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바람이 붑니다. 찬 바람이 붑니다. 계절이 바뀌려나 봅니다. 참으로 극성이던 2023년 붉은 여름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파란 가을에 그 자리를 내어줍니다. 가을은 눈보라와 북풍한설의 겨울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알려줍니다. 이제 더 이상 객지를 떠돌지 말고 안온한 쉼터를 찾아 정착하라고 채근합니다. 길고 긴 인생의 항해를 그치고, 정주(定住)의 닻을 내릴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화악산 정상 인근 풀밭에 핀 참닻꽃.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즈음 ‘정주의 닻’을 드리울 안식처를 찾는 듯하다.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이렇듯 절기가 바뀌고 가을과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그리하여 또다시 한 해가 저물고 있음을 일러주는 꽃이 있습니다. 가던 길 멈추고 이른 봄부터 무더운 여름까지 힘차게 달려온 긴 여정을 뒤돌아보며, 저마다의 보금자리에 들 때라고 말해주는 꽃이 있습니다. 바로 참닻꽃입니다. 8~9월 햇볕이 잘 드는 높은 산 풀밭에서 파란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한 갈고리를 치켜든 참닻꽃의 황록색 꽃 무더기를 보면 끈질기게 머물 듯싶던 폭염의 여름이 저만치 물러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4개의 길쭉한 꿀주머니가 배를 정박할 때 쓰는 갈고리 모양의 닻을 똑 닮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는 참닻꽃. 실제 보면 너무나도 흡사한 모습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원래 갈고리처럼 생긴 4개의 거(距, 꿀주머니)가 특징인 꽃 모양이 배를 멈춰 세울 때 사용하는 닻을 똑 닮았다고 해서 닻꽃으로 불렸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몽골, 일본 등지에 분포하는 닻꽃과 같은 종으로 분류했던 것이지요.

그러다 2019년 신종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국명은 참닻꽃, 학명은 ‘할레니아 코레아나(Halenia coreana)’입니다. 기존에 분류했던 ‘할레니아 코르니쿨라타(Halenia corniculata)’란 학명의 닻꽃에 비해 <꿀주머니가 길고 좁으며 안으로 굽었으며, 잎끝이 뾰족한 꼬리 모양>으로 형태상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는 주장이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것이지요. 또한 유전체 분석 결과에서도 디엔에이(DNA) 염기서열이 차이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참닻꽃은 중국 등지에 분포하는 기존의 닻꽃과 달리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특산식물, 즉 한반도 고유 자생식물로 분류되었습니다.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한 본향으로 불리는 시베리아. 그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 호수 인근 자임카 자연휴양림에서 2015년 7월 만난 닻꽃. @사진 김인철


닻꽃으로 불리던 2012년부터 이미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의 보호· 관리 대상으로 지정된 데서 알 수 있듯 흔히 만날 수 있는 야생화는 아닙니다. 북쪽에 고향을 둔 전형적인 북방계 식물로서 화악산과 대암산, 방태산 등 불과 3~4곳의 높은 산 풀밭이나 숲 가장자리에 자생합니다.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풀인 만큼, 한두 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뿌리까지 고사하기에 자칫 서식 환경이 악화해 이듬해 싹을 틔우지 못하면 아예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 예전에 지리산과 설악산, 한라산에서도 자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최근 수년간 발견된 기록이 없어 아예 절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8년  8월 백두산 인근 황송포 습지에서 만난 닻꽃. 참닻꽃과 달리 꿀주머니가 짧고, 잎끝이 길어 구별된다. @사진 김인철

출처 :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Posted by atom77
,

‘멸종위기 우리 꽃’-9-솔잎란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3-11-23>

늘 푸른 소나무의 기상을 쏙 빼닮은 솔잎란!

솔잎란과의 상록성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Psilotum nudum (L.) P.Beauv.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늘 푸른 가는 줄기가 한겨울에도 청정한 솔잎을 닮은 솔잎란. 겨울이 깊어져 갈수록 녹색이 돋보인다.@사진 김인철


일전 요란하게 첫눈이 내리더니 하루아침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등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이러다 언제 추웠느냐는 듯 기온이 치솟는 날도 있겠지만, 불가역적인 겨울이 시작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갈수록 초록빛은 사라지고 사위가 잿빛으로 물들어 갈 즈음 남산 위의 소나무처럼 홀로 청정한 풀이 있습니다. 겨울이 깊어져 갈수록 푸름이 빛을 더하는 풀이 있습니다. 늘 푸른 소나무의 기상을 쏙 빼닮은 풀이 있습니다. ‘소나무 이파리’의 줄임말을 이름의 앞머리에 사용한 솔잎란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사진 김인철


그저 이름만 흉내 낸 것이 아닙니다. 처음 보는 순간 누구라도 ‘아하!’ 하며 감탄사를 토할 만큼 전초가 솔잎을 닮았습니다. 다만 녹색의 가닥은 솔잎과 달리 잎이 아니라 줄기인데, 밑동에서 위로 올라오면서 Y자로 반복해서 갈라지며 풍성해진 모습이 전체적으로 가늘고 긴 솔잎을 얼기설기 다발로 묶은 것처럼 보입니다.

포자로 무성 번식을 하는 양치식물인 솔잎란. 녹색의 가는 줄기에 깨알만한 포자낭이 다닥다닥 달려 있다.@사진 김인철


그런데 이름과 전혀 다른 특성도 가졌습니다. 난초 ‘란(蘭)’이 명칭에 쓰였지만, 솔잎란은 보춘화나 병아리난초 등 우리가 잘 아는 난초과 식물처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 종자로 번식하는 종자식물이 아닙니다. 꽃도 종자도 없이, 포자(胞子)로 번식하는 양치식물이지요.

실제로 키 10~45cm로 자라는 솔잎란을 가만 살펴보면 한겨울에도 늘 푸른 녹색의 가는 줄기에 지름 1~2mm의 둥근 알갱이가 일정한 간격으로 다닥다닥 달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포자를 품고 있는 포자낭입니다.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점차 노랗게 변하는데, 무르익으면 세 갈래로 갈라지며 많은 포자를 세상으로 내보내 종족 번식을 꾀하게 됩니다.

@사진 김인철


솔잎란은 포자로 번식한다는 점에서 큰 범주에서 양치(羊齒)식물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양의 치아’처럼 가지런한 잎도, 진정한 뿌리도 없어 ‘솔잎란과, 솔잎란속’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독립적인 식물로 분류됩니다.

흔히 양치식물은 무성 생식을 하는 하등의 생태 때문에 원시적인 식물로, 생존의 역사가 오래된 화석식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솔잎란 역시 지금으로부터 대략 3억 5,000만 년 전부터 4억 5,000만 년 전인 고생대 데본기~실루리아기 사이에 번성했던 식물로 분류됩니다. 한마디로 천고의 역사를 지닌 식물이란 말인데, 전남 화순의 솔잎란 자생지의 경우 멀지 않은 곳에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이 있는 게 우연이 아닌 듯 흥미롭습니다.

바위 틈새에 자리를 잡은 솔잎란. 하늘이 처음 열린 까마득한 옛날부터 천고의 세월 동안, 이 땅을 굽어보았으리라.@사진 김인철


거의 모든 꽃이 고개를 떨구는 한겨울 더욱더 초록의 빛을 발하는 솔잎란.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에 따르면 세계적으로는 북반구와 남반구의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서 잡초처럼 널리 흔하게 자란다고 합니다. 열대지역에서는 나무에 붙어서 사는 착생식물이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같은 온대지역에서는 바위틈에 자라는 게 보통이라는 것. 제주도와 남해안 등 열 군데 안팎의 우리나라 자생지가 결국 솔잎란의 북방한계선이 되는 셈인데, 환경부는 1989년부터 법정보호종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습니다.

@사진 김인철

출처 :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Posted by atom77
,

‘멸종위기 우리 꽃’-8-단양쑥부쟁이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3-10-24>

 

가을 남한강 변에 소금을 뿌린 듯 흐드러진 단양쑥부쟁이!

국화과의 두해살이풀. 학명은 Aster danyangensis J.Y.Kim & G.Y.Chung.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찬바람 부는 가을 남한강 변에 소금을 뿌린 듯, 달빛에 젖은 듯 흐드러지게 피는 단양쑥부쟁이. @사진 김인철


깊어 가는 가을 선잠에서 일어나 강으로 갑니다. 새벽 강가에는 뽀얀 물안개가 피어납니다. 강물은 느릿느릿 계면조로 흐르고, 여기저기 자갈밭에는 소금을 뿌린 듯 희뿌연 꽃잎이 아침 햇살에 반짝입니다.

이효석은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백미라는 ‘메밀꽃 필 무렵’에서 봉평에서 대화까지 팔십리 길 산허리에 핀 메밀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 했지만, 필자에겐 단양에서 여주까지 100km 넘는 남한강 변 군데군데 흐드러진 연보랏빛 단양쑥부쟁이꽃 무더기가 그에 버금가는 절경으로 다가옵니다.

사진 김인철


한때 뉴스의 꽃이 되어 시쳇말로 ‘핫’한 야생화였던 단양쑥부쟁이. 이른바 ‘4대강 사업’ 추진으로 남한강 내 최대 자생지가 영원히 물에 잠길 수밖에 없어 절체절명의 멸종위기를 맞게 됐다고 야단법석의 주인공이 되었던 단양쑥부쟁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점차 뉴스는 물론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을지는 모르나, 생물학적 가치는 조금도 변한 게 없습니다.

여전히 자연적, 인위적 위협요인을 제거하거나 완화하지 않을 경우 머지않은 장래에 사라질 수 있는 79개 2급 멸종위기식물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특히 단양쑥부쟁이는 한반도 특산식물, 즉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는 식물입니다. 이는 우리 땅에서 사라지면 지구상에서 영영 찾아볼 수 없게 되므로, 더욱더 각별한 관심을 두고 지켜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갈투성이 강변 모래밭에 뿌리를 내리고 연보라색, 또는 흰색의 꽃을 피우는 단양쑥부쟁이. 끈질긴 생명력으로 척박한 자연환경에 맞서지만, 크고 작은 개발과 자연재해의 무자비한 손길에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사진 김인철


이파리가 솔잎처럼 가늘다고 해서 ‘솔잎국화’라고도 불립니다. 모래와 자갈이 적당히 섞인 강변에서 자라는 두해살이로 첫해에 줄기가 15cm까지 크고, 이듬해에 높이 40~100cm까지 자라면서 꽃을 피웁니다. 그리곤 열매를 맺고 말라서 죽습니다. 키나 꽃 생김새는 여타 쑥부쟁이와 크게 차이가 없지만, 잎이 한탄강 바위틈에서 피는 포천구절초나 조령산 등 높은 산 절벽에서 자라는 가는잎향유와 비슷하게 솔잎처럼 가늘어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9월에서 10월까지 지름 4cm 크기의 머리 모양 꽃이 자주색 또는 흰색으로 꽃대마다 여러 개씩 달립니다.

사진 김인철


1902년 일본인 우치야마 도미지로(內山富次郞)가 수안보에서 처음 채집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37년 기타무라 시로(北村四郞)에 의해 한반도 특산의 변종으로 발표되었습니다. 1985년 충주댐 완공 이전만 해도 단양부터 충주까지 남한강 일대에 널리 분포했으나, 댐 건설로 자생지가 물에 잠기면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개발과 홍수 등으로 멸종위기에 처하게 됐고, 현재는 충북 단양과 제천, 경기 여주 등지에 제한적으로 서식하고 있습니다.

4대강 사업의 대안으로 마련된 여주 일대의 대체 서식지는 초기 몇 년간은 안정적인 활착률과 생육 상태를 보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망초와 쑥, 금계국 등 경쟁력이 강한 식물들이 밀고 들어오면서 개체수가 줄고 있어 역시 대책이 필요합니다.

짙푸른 강물과 높푸른 가을 하늘을 든든한 뒷배 삼아 활짝 꽃을 피운 단양쑥부쟁이.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출처 :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Posted by atom77
,

‘멸종위기 우리 꽃’-6-가시연꽃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3-08-24>

 

폭염 속에서 피는 ‘백 년의 꽃’, 가시연꽃!

수련과의 한해살이 수초. 학명은 Euryale ferox Salisb.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경남 양산의 황산생태공원에서 2018년 9월 만난 가시연꽃.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5년 만에 다시 꽃을 피울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사진 김인철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가시연꽃의 개화 뉴스입니다. 먼저 지난 7월 27일 강릉 경포습지에서 가시연꽃이 폈다는 첫 보도가 있었습니다. 10여 일 뒤인 8월 9일 창원의 주남저수지에서도 가시연꽃이 개화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는 속보가 전해졌습니다. 창원시는 3월부터 경쟁 종의 뿌리 제거 등 꾸준히 복원 작업을 벌여 가시연꽃을 증식하고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부여 궁남지에서도 가시연꽃 꽃봉오리가 하나둘 보인다고 합니다.

개화의 조건이 극히 까다로워, 100년 만에 한 번 필까 말까 한다는 가시연꽃이 2023년 여름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길게 이어지면서 속속 꽃잎을 여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 김인철


‘그대에게 행운을’이란 멋진 꽃말의 주인공인 가시연꽃.

하지만 첫인상은 멋지기보다 위압적입니다. 보통 가시연꽃은 자생지의 수면을 뒤덮을 만큼 풍성한 잎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수면에 떠 있는 둥근 잎이 크게는 지름이 무려 2m에 달해, 국내 자생식물 중 가장 크다는 말을 듣습니다. 단순히 크기만 한 게 아니라 잎마다 수십 개의 가시가 듬성듬성 박혀있어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길게는 1cm쯤 되는 가시가 잎은 물론 줄기와 꽃받침, 심지어 열매의 겉에까지 잔뜩 돋아있습니다. ‘가시연꽃’이란 이름을 얻은 연유입니다. 특히 찌를 듯 날카로운 가시가 촘촘히 박힌 창 모양의 꽃봉오리가 가시투성이의 진녹색 자기 잎을 뚫고 솟아난 모습은 한마디로 경이롭다고 할 정도입니다.

보랏빛 꽃잎을 빼고 전초에 가시가 촘촘히 박힌 가시연꽃.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의 여동생으로 머리가 뱀인 괴물 에우리알레(Euryale)가 학명의 속명으로 쓰인 연유가 십분 이해된다. 종소명 페록스(ferox)는 가시가 많다는 뜻이다.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전초가 이렇듯 크고 무시무시한 데 반해, 지름 4cm 안팎의 보랏빛 꽃은 보는 이를 한눈에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입니다. 완두콩 모양의 씨앗과 더불어 가시 없는 유이(有二)한 부위인 보라색 꽃잎이 반쯤 벌어진 모습을 물 밖 멀리서 뚫어져라 응시하노라면 ‘천국이 바로 여기인가?’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꽃은 오전에 잎을 열었다가 저녁이면 오므리기를 사나흘 되풀이하다 물속으로 내려가 씨앗을 생성합니다. 암술과 수술을 갖춘 꽃봉오리를 열고, 벌·나비를 불러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어 종족 보존을 하는 일련의 과정은 여느 한해살이풀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에 더해, 가시연꽃은 수심이나 수온, 일조량, 기후 등 개화의 조건이 맞지 않으면 꽃봉오리를 열지 않고, 자가수분에 의해 씨앗을 맺는 폐쇄화(閉鎖花)의 길로 나아가는 결단을 내립니다. 이 때문에 수면 위로 올라온 꽃봉오리를, 신발이 닳도록 찾아간다고 해도 그해에는 정작 꽃 핀 것을 보지 못합니다. 5년 만에 보았느니 10년 만에 겨우 한 번 보았느니 하는 말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큰 잎에 비해서는 왜소한 지름 4cm 안팎의 꽃. 한여름 파란 하늘 아래 보랏빛 가시연꽃이 피어있는 풍경이 한적하고 여유가 넘친다. 최대 자생지로는 창녕의 우포늪이 꼽힌다. 수도권에선 시흥의 관곡지가 유명하다, 양산의 황산생태공원, 부여의 궁남지, 강릉 경포가시연습지, 경산의 진못 등 전국적으로 20여 곳에서 서식한다.@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그런데 하천이나 계곡이 아니라 못이나, 습지, 늪 등 물이 있는 곳에 주로 서식하는 가시연꽃 생태의 더 큰 신비는 씨앗의 특성에 기인합니다.

가시연꽃은 때가 되면 뿌리도 줄기도 잎도 다 버리고 오로지 씨앗만을 남기는데, 그 씨앗이 쉽게 발아하지도 않고 또 쉽게 썩지도 않는 신비의 생명체이지요. 즉 한두 해 안에 발아가 안 되면 썩는 일반적인 씨앗과 달리 수년이든 수십 년이든 발아력을 유지한 채 땅속에서 쉬고 있는 매토종자(埋土種子)입니다. 휴면 상태에서 때를 기다리던 씨앗이 최적의 조건이 갖춰지면 발아해 뿌리를 내리고 잎을 펼치고 꽃을 피웁니다. 바로 가시연꽃 생태의 신비입니다. 가령 수년 전 강릉 경포호에 갑자기 가시연꽃이 나타나 소동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2010년 경포호 배후 습지에서 가시연꽃이 난데없이 나타나 개화한 연원을 추적해 보니 1960년대 농경지 개간 이후 휴면 상태에 있던 가시연꽃의 매토종자가 습지 복원사업으로 생육조건이 맞자 50년 만에 발아한 것이었습니다.

출처 :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Posted by atom77
,

‘멸종위기 우리 꽃’-5-큰바늘꽃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3-07-26>

 

붉게 타는 태양을 닮은 진분홍 ‘여름꽃’, 큰바늘꽃!

학명은 Epilobium hirsutum L. 바늘꽃과의 여러해살이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투명하리만큼 밝은 분홍색으로 다닥다닥 꽃을 피운 큰바늘꽃. 동전만 한 꽃의 맑고 고운 색감이 삼복더위마저 날려 보낼 듯 상큼하다.@사진 김인철


한여름 물가에서 환한 홍색으로 피는 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태울 듯 이글거리는 붉은 해는 고개 들어 마주하기 거북하지만, 진분홍 꽃은 바라만 보아도 금세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성인만 한 키에 사방으로 쭉쭉 나온 가지마다 500원짜리 동전만 한 둥근 꽃을 가득 달고 선 모습에 삼복더위마저 절로 잊을 듯합니다. 이름대로 키나 덩치가 큰 ‘큰바늘꽃’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사진 김인철


바늘꽃, 버들바늘꽃, 한라바늘꽃, 돌바늘꽃, 좀바늘꽃, 회령바늘꽃 등 국내에 자생하는 10여 종의 바늘꽃과 식물 중 하나인데, 꽃이 진 뒤 맺는 씨방이 가늘고 길다고 해서 여타 바늘꽃과 마찬가지로 <바늘>을, 그리고 최대 250cm까지 높이 자란다고 해서 <큰>이란 자기만의 단어를 이름에 담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꽃 가운데 큼지막하게 올라온 백색의 암술머리가 4갈래로 갈라진 것이 같은 과, 다른 종들의 곤봉 형태와 뚜렷하게 구별됩니다.

꽃은 6월 하순부터 8월 말까지 줄기나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줄기 끝에 한 송이씩, 한 개체마다 수십 또는 수백 송이가 한꺼번에 달리는데, 둥근 꽃 한 송이의 크기는 지름 1.5cm 안팎, 꽃 색은 진한 분홍색입니다. 번식력도 왕성해 수십, 수백 개체가 무더기로 피어 삼복더위에 자생지를 찾는 야생화 애호가들에게 ‘한여름 밤의 꿈’같은 황홀경을 선사하곤 합니다.

강원도 삼척의 저지대 하천가에 핀 큰바늘꽃. 자생지가 툭하면 물난리를 겪을 강가에, 수시로 자동차가 지나는 도로변이어서 위태로운 생태환경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얼핏 제법 많은 개체가 모여 풍성하게 꽃 핀 큰바늘꽃의 모습에 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을까 의아할 수 있습니다. 요는 남한 내 자생지가 강원도 삼척과 정선, 주왕산 등 3~4곳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물가나 습지를 선호하는 습성 탓일까? 자생지가 대개 저지대 하천가여서, 여름철 장마나 폭우 때 물에 잠겨 쓸려나가기 십상입니다.

특히 하천 정비나 도로 확장, 택지 조성 등 주변 지역 개발로 인해 언제든지 송두리째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실제 북방계 식물인 큰바늘꽃의 최남단 자생지인 청송 주왕산 개체군의 경우 하천 정비 사업으로 거의 파괴돼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 큰바늘꽃에 포함됐다가 암술머리의 갈라짐이 덜하다는 형태상의 차이로 2017년 신종으로 발표된 울릉바늘꽃의 자생지 한 곳은 대형 호텔 건설로 인해 완전히 사라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바 있습니다.

줄기와 가지 겨드랑이 사이에서 올라온 숱한 꽃줄기 끝에 한 송이씩 달린 큰바늘꽃. 꽃 중앙에 자리 잡은 흰색의 암술머리가 크게 4갈래로 갈라져 다른 바늘꽃들과 구별된다.@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최근 국내 자생 바늘꽃류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바늘꽃류 추출물이 피부 보습용 화장품 개발 재료로써 활용 가치가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피부 보습 효능이 우수하고, 거친 피부결의 개선, 매끈한 피부 유지, 당김 현상 개선 등의 효과를 가진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2022년 12월 펴낸 ‘큰바늘꽃 증식 · 재배관리 안내서’에 담겼습니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데서 나아가 추출물의 효능을 활용해 산업화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큰바늘꽃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능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썩은 살을 제거하고 새살을 돋게 한다. 그래서 골절, 타박상, 종기, 화상, 월경 과다 등에 이용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백두대간수목원의 이런 언급은 큰바늘꽃을 비롯한 모든 멸종위기 야생생물 관리가 종 다양성 보존이라는 생물학적 의미를 넘어, 무한의 활용 가능성을 가진 천연자원의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중대한 일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큰바늘꽃의 사촌 형제인 분홍바늘꽃. 큰바늘꽃과 마찬가지로 한여름인 7, 8월 풍성하고 화려한 꽃을 피운다. 사진은 2023년 7월 초 강원도 삼척의 자생지에서 담았다.@사진 김인철

출처 :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Posted by atom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