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면 가을 오고, 지면 가을 간다는 구절초

 저 너머 한탄강 북녘에도 포천구절초 폈을 텐데…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10.13>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Dendranthema zawadskii var. latilobum (Maxim.) Kitam.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었습니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김용택의 ‘구절초꽃’에서)

역시 시인은 천재입니다. 보통사람에겐 없는 통찰력과 직관,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진 위대한 천재입니다. 나아가 범인들의 정신과 의식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자이기도 합니다. 구절초 꽃 피면 가을 오고 구절초 꽃 지면 가을 간다고 시인이 말하는 순간, 보통 사람들의 머리에선 구절초와 가을은 어느새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운명체가 되고 맙니다.

구절초와 가을, 그저 낱낱의 낱말이었던 2개의 단어가 숙명처럼 만나 인과관계를 형성합니다. 10월 중순, 통상 9월부터 일컫는 가을이 끝나지 않았으니 구절초가 아직 피어있으리란 시인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전부터 피기 시작했을 구절초가 미처 가을을 떠나보내기 싫은 듯 채 지지 않고 하얀 꽃 무더기를 달고 선 걸 보았습니다.

북에서 60km, 다시 남에서 80km를 흐르는 한탄강. 강원도 철원 한탄강 직탕폭포 주변에 지난 10월 2일 한반도 특산식물인 포천구절초가 만개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구절초에 비해 가는 잎이 특징인 포천구절초가 물길 따라 북녘에도 피었겠지만, 인적은 끊겨 안타깝기만 하다. ©김인철

지금은 거의 상식이 되었지만, 흔히 말하는 들국화란 이름의 식물은 없습니다. 들국화란 특정 식물을 일컫는 게 아니라 구절초를 비롯해 쑥부쟁이, 개미취, 산국, 감국 등 가을철 산과 들에 피는 국화과 식물을 두루 망라해서 부르는 추상명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중 전국의 산과 들, 강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구절초가 대표적인 들국화의 하나로 꼽힙니다. 그 이름의 유래와 관련해 예로부터 음력 9월 9일 꽃과 줄기를 잘라 귀한 부인병 약재로 썼다고 해서 구절초(九折草)라 불렸다고도 하고, 5월 단오 즈음 다섯 마디이던 줄기가 9월 9일이면 아홉 마디로 자라면서 약효가 가장 좋다고 해서 구절초(九節草)라 불렸다고도 합니다.

경남 합천군 오도산에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0월 9일 순백의 구절초가 한 무더기 피어 산 정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김인철

그런데 이 구절초가 피는 시기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꽃을 피우는 쑥부쟁이가 있어 또 다른 시인의 천재성 일갈이 터져 나옵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안도현의 ‘무식한 놈’ 전문)

북한산 정상에 만개한 구절초. 1천만 서울시민의 허파 같은 산인 북한산에도 가을이면 곳곳에 구절초가 피어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한껏 만끽할 수 있다. ©김인철

얼마나 닮았기에 시인의 입에까지 올랐을까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그런데 실제 ‘외형적인 유사성’을 화제로 삼자면 끝도 한도 없습니다. 구절초만 해도 꽃이나 이파리 등의 모양, 색 등 작은 차이로 인해 산구절초, 바위구절초, 포천구절초, 서흥구절초, 울릉구절초, 낙동구절초, 제주구절초로 나뉘고, 쑥부쟁이는 가는쑥부쟁이, 가새쑥부쟁이, 개쑥부쟁이, 갯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민쑥부쟁이로 갈라집니다. 쑥부쟁이는 다시 벌개미취, 좀개미취 같은 개미취류와 비슷해 이 모두를 구별하기란 전문가도 쉽지 않습니다.

경남 산청 황매산 정상에 쏟아질 듯 가득 핀 구절초. 가을이면 흰 눈이 내린 듯 펼쳐졌던 구절초 꽃밭이 최근 크게 줄어, 야생화가 애써 지키지 않으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김인철

해서 이 대목에서 시인의 일갈에 슬며시 어깃장을 놓아봅니다. “그깟 꽃이 무엇이관대 절교 운운하느냐”고요. 그런데 가만 시를 들여다보면 멋진 반전이 숨어있습니다. 마지막 연의 ‘나여,’에서 힐난의 대상인 ‘너’가 오늘 이전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구별하지 못했던 바로 ‘나’였음이 읽히니까요. 역시 시인은 위대한 천재입니다.

강원도 양구 도솔산 정상을 가득 메운 구절초와 쑥부쟁이. 분홍색 꽃이 구절초이고, 보라색 꽃(오른쪽 중앙)이 쑥부쟁이이다. ©김인철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우선 꽃 색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구절초는 대부분 순백의 꽃을 피웁니다. 간간이 옅은 붉은색이 감도는 흰색이나 분홍색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쑥부쟁이는 연한 보라색 꽃을 피웁니다. 얼핏 흰색으로 보이지만 순백은 아니고 옅더라도 보랏빛이 확연합니다. 구절초는 하나의 줄기에 많아야 서너 개의 꽃대, 그리고 꽃대마다 역시 서너 개의 꽃이 달리는 데 반해 쑥부쟁이는 하나의 줄기에 10여 개의 꽃대가 나오고 꽃대마다 역시 10여 송이의 꽃이 풍성하게 달립니다. 이파리도 구절초는 가늘고 잘게 갈라진 고사리손처럼 생긴 데 반해, 쑥부쟁이는 가늘고 긴 타원형 모양입니다. 얼핏 도회적 멋쟁이를 느낀다면 구절초, 반면 친근한 동네 친구 같다면 쑥부쟁이라고 생각하면 열에 아홉은 맞을 겁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10.13>

Posted by atom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