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우리꽃’-17-나도승마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4-7-22>
삼복더위에 피는 한반도 특산종, 나도승마!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Kirengeshoma koreana Nakai.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
전남 광양 백운산 중턱 계곡 부근에 핀 나도승마. 꽃이 드문 7월 하순 초록의 숲에 연노랑 작은 꽃들이 보석처럼 빛난다.@사진 김인철
초복이 지났고, 말복까지는 열흘 넘게 남았으니 그야말로 삼복더위의 한복판입니다. 장마까지 겹치면서 폭염과 열대야, 폭우가 중부, 남부, 동해안, 서해안 등을 돌아가며 강타하고 있습니다. 한여름 산에 들면 이글거리는 태양이 일순 진초록 숲에 가려 빛을 잃지만, 등줄기로 흘러내리는 땀마저 지워지는 건 아닙니다. 울울한 나뭇가지와 풍성한 초록이 그늘과 고요, 적막을 만들지만, 치솟는 한여름의 열기까지 식힐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숲엔 얼마 전만 해도 발에 차이던 풀꽃들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옥잠난초나 감자난초, 병아리난초 등 난초류는 물론 철쭉, 찔레꽃, 큰앵초, 민들레, 장구채, 풀솜대, 노루발, 그리고 여러 종의 제비꽃 등 크고 작은 풀꽃과 나무꽃들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정적만이 감돕니다.
사진 김인철
하지만 무미건조한 초록의 숲을 뚜벅뚜벅 오르는 발걸음마저 활기를 잃은 건 아닙니다. 아니, 하나둘 내딛는 등산화에선 복더위마저 내칠 듯 세찬 힘이 느껴집니다. 세계에서 하나뿐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사라지면 그것으로 곧 멸종이라니 그 얼마나 소중할까 싶은 희귀식물을 곧 만난다는 생각에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 설렘마저 엿보입니다. 그렇다고 가장 높은 곳에 숨어 사는 것은 아니기에, 폭염에 산 정상까지 오르는 수고를 감내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해발 800~1,000m의 산 중턱 계곡 주변에 드물게 산다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종)의 설명대로 산 초입에서 한 시간 정도 오르면 됩니다. 물론 산에 든다고 해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앞서도 밝혔듯 7월의 숲은 무미건조한 초록입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엇비슷한 녹색의 잎을 잔뜩 단 나무들만 눈에 들어옵니다. 게다가 500여 개체가 서식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50개체 안팎으로 격감했고, 꽃마저 엄지손가락 정도로 작기 때문에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처럼 땀 흘리며 숨바꼭질해야 비로소 대면할 수 있습니다.
손바닥 모양의 마주나는 큰 잎이 미나리아재비과의 승마류 식물과 닮았다고 해서 나도승마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짐작된다.@사진 김인철
“전라남도 광양시, 백운산, 경상남도 산청에만 분포하는 우리나라 고유종.” 나도승마에 대한 국생종의 간략한 설명입니다. 고유종(固有種)이란 ‘특정 지역에만 분포하는 생물의 종’이란 뜻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전남 광양 백운산과 경남 산청 지리산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식물학계에 따르면 ‘나도승마’속 식물은 일본과 중국에 1종, 그리고 우리나라에 1종 등 세계적으로 단 2종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나도승마는 줄기에 털이 빽빽하고 녹색이며, 단면이 6각형으로 일본과 중국의 종과는 구분됩니다. 일본과 중국의 종은 줄기가 자줏빛을 띠며 단면도 4각형이고, 털이 적습니다. 또 우리나라 종은 꽃줄기 끝에서 꽃대가 1개씩 나와 1~5개의 꽃이 달리지만, 일본 종은 잎 짬에서 가지가 갈라져 꽃대가 여러 개 만들어지면서 꽃의 수도 많아지는 등 두 종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증거들이 여럿 있다고 합니다.
사진 김인철
손바닥 모양의 큰 잎이, 전혀 다른 식물인 미나리아재비과의 승마(升麻)류 식물과 비슷하다고 해서 나도승마란 이름이 붙었는데, 1935년 일제강점기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에 의해 신종으로 발표됐습니다. 당시 표본을 채집한 곳이 전남 광양 백운산이어서 ‘백운승마’라고, 또한 꽃색이 노란색이어서 ‘노랑승마’라고도 불립니다.
나도승마와는 전혀 다른 종의 식물인 승마. 나도승마의 큰 잎이 승마의 잎과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사진 김인철
한여름 녹음이 무성한 숲에서 다른 식물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키나 잎 등 덩치를 키워야 하는데, 이에 따라 키는 1.5m 안팎까지, 잎은 폭 30cm까지 자랍니다. 꽃은 7~8월 옅은 노란색 종 모양으로 핍니다. 원줄기 끝과 가지 끝에 길이 4cm 안팎의 꽃이 1~5개씩 뭉쳐서 달리는데, 옆이나 아래를 향합니다. 길이 2~4cm의 꽃잎이 5장, 암술대 3~4개, 수술은 15개. 열매는 둥근 삭과이며, 지름이 1.5cm쯤 됩니다.
경남 산청 지리산국립공원 경남사무소는 몇 해 전 지리산 자락인 경남 산청 웅석봉에서 나도승마 20여 개체의 서식지가 발견됐다고 발표, 화제가 됐습니다. 그간 문헌자료에서 지리산에 자생한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확인했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자생지가 2~3곳으로 극히 적고 좁으며, 개체수도 적어 환경부가 멸종위기식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습니다.
훤칠한 키에 연노랑 꽃을 단 나도승마의 활달한 자태에 한여름 무더위도 저만치 물러나는 듯싶다.@사진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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