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우리꽃’-20-자주땅귀개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4-10-28>

 

벌레 잡아먹는 습지식물, 자주땅귀개!

통발과의 한해 또는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Utricularia uliginosa Vahl.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

세상을 삼키려는 듯 입을 벌린 자주땅귀개. 작고 여린 습지식물이지만,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식물이다. 습지가 개발 등의 여파로 조금만 파괴돼도 쉽게 사라질 수 있어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됐다. @사진 김인철

 

오늘은 어디로 갈까?

꽃 찾아 길 위에 서면 문득 떠오르는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은 넓고 꽃은 많다.” 유명 기업인이 남긴,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살짝 비틀어 봅니다. 물론 풀과나무는 대부분 산과 들에 서식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식물이 산과 들에만 사는 게 아닙니다. 염분이 높아 일견 식물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바다에도 물고기뿐 아니라 풀과 나무가 자생합니다. 칠면초나 해홍나물, 나문재, 순비기나무 등 염생식물이 철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사진 김인철


바다 아닌 육상의 물에도 연꽃, 순채, 남개연꽃 등 수련과 식물을 비롯해 갈대, 벗풀, 부레옥잠 등 수십 종의 수생식물이 자랍니다. 그런데 연못이나 저수지 등 물과 육지의 경계, 흔히 습지라 부르는 곳에도 나름의 식물이 삽니다. 맨땅도 깊은 물속도 아닌, 질퍽질퍽한 그곳에도 다양한 이끼류와 사초과 식물, 희귀 야생난 등 특유의 식물이 삽니다. 통칭하여 습지식물이라 부르는 종이지요.

이번에 소개할 종은 습지식물 중에서도 건조할 땐 바닥이 드러나고, 물이 찬다고 해도 발목이 잠기는 정도의 얕은 곳에 사는 종입니다. 몸집이 아주 작아 한참을 들여다봐야 전체적인 윤곽이 눈에 들고, 또 한참을 씨름해야 차이를 식별할 수 있는 종입니다. 땅귀개, 이삭귀개, 자주땅귀개 3형제가 주인공입니다.

보라색 꽃잎에 뚜렷한 4개의 흰색 줄무늬, 앞으로 툭 튀어나온 꿀주머니 등으로 자주땅귀개와 구별되는 이삭귀개 @사진 김인철


대동소이한 것을 견줄 때 ‘도토리 키 재기’라 말하지만, 그래도 도토리는 몸집은 큽니다. 이 ‘귀개’ 3형제는 키가 10cm에도 못 미치는 데다, 모두 쇠젓가락 정도로 가냘픕니다. 보잘것 없는 듯한 이들이 눈길을 끄는 건 흔히 볼 수 없는 식충식물이기 때문입니다.

엽록체를 가진 초록의 식물로서, 광합성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유기물을 자체 생산하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않아 물속에 사는 미세한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부족분을 보충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어부들이 물고기를 잡는 데 쓰는 통발과 비슷한 모양의 포충낭(捕蟲囊)이란 벌레잡이주머니를 사용합니다. 포충낭은 땅속줄기와 잎, 뿌리에 모두 달리는데, 크기가 1mm 정도에 불과해 맨눈으로는 식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사진 김인철


3형제에 붙은 ‘귀개’는 귀지를 파낼 때 쓰는 귀이개의 준말로, 가늘고 길게 곧추선 꽃줄기에 달린 열매를 덮고 있는 꽃받침 조각이 아주 작은 숟가락을 똑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귀개가 이름에 들어가는 식물은 이들 외에 같은 식충식물이자 습지식물인 끈끈이귀개가 있습니다.

다 작지만 그래도 순위를 매기자면 땅귀개가 좀 더 크고 다음은 이삭귀개, 자주땅귀개 순이지만 역시 도토리 키 재기여서, 7~9월 피는 꽃의 색으로 노란색인 땅귀개를 구별하는 게 가장 쉽습니다. 이삭귀개는 자주와 보라, 자주땅귀개는 연한 자주와 연분홍으로 꽃 색 구분이 다소 애매한데, 이삭귀개는 꽃자루가 없고 자주땅귀개는 꽃자루가 길어서 확연히 구별됩니다. 꿀주머니인 거(距)도 이삭귀개는 앞으로 튀어나온 데 반해 자주땅귀개는 밑으로 향합니다.

10cm 안팎의 꽃줄기 좌우로 작은 숟가락 모양의 열매 꽃받침을 달고 선 땅귀개. ‘귀개’가 식물명에 들어간 이유를 말하는 듯하다.@사진 김인철


자생지도 다릅니다.

땅귀개와 이삭귀개는 남부에서 충청, 경기까지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자주땅귀개는 경남과 전남, 제주 등 남쪽에만 분포합니다. 남부 지역에서는 같은 곳에 땅귀개, 이삭귀개, 자주땅귀개 3형제가 모두 서식하기도 하는데, 개체 수는 자주땅귀개가 현저하게 적습니다. 이렇듯 분포 지역도 좁고 개체수도 적어 환경부가 2005년부터 자주땅귀개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 9월 초순 충남의 작은 산에서 만난 땅귀개 군락. 등산화가 잠길 정도의 습지에 핀 노란색 꽃과 짙은 붉은색의 열매 꽃받침 조각이 멋진 하모니를 선사한다.@사진 김인철

출처 :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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