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춘몽(一場春夢)의 꽃, 깽깽이풀!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20-04-16>
![]() ![]() |
화창한 봄 날씨만큼 화사하게 피는 깽깽이풀. 하늘을 향해 활짝 펼친 꽃잎 가운데 수술의 꽃밥 색이 노란색(사진 위)과 자주색(아래)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김인철 |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Jeffersonia dubia (Maxim.) Benth. & Hook.f. ex Baker & S.Moore
벚꽃이 집니다. 유례없이 빨리 피었다더니 어느새 천지에 낙화가 분분합니다. 4월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날리는 벚꽃 잎에 실려 봄조차 떠나갈 성싶습니다. 과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대명사답습니다. 한데 벚꽃보다 더 덧없는 봄꽃이 있습니다. ‘한바탕의 봄 꿈’인 양 찰나의 순간 스러지는 봄 야생화가 있습니다. 물오른 꽃봉오리는 햇볕 좋은 날 순식간에 벌어지는데, 얼마나 가냘픈지 바람만 조금 강해도, 휘~ 봄비라도 스치면 보고 있는 순간에도 우수수 꽃잎을 땅에 떨굽니다. 이를 두고 한 동호인은 ‘깽무사흘’이란 우스갯말을 합니다. “깽깽이풀 꽃은 사흘을 가지 못한다.”
![]() ![]() |
@김인철 |
그러나 야리야리한 그 꽃이 얼마나 예쁜지 한 번 본 이는 해마다 봄이면 자생지를 찾아 이 산 저 산을 헤맵니다. 꽃은 4~5월 잎이 나기 전, 높이 20~30㎝의 꽃줄기 끝에 지름 2cm 정도의 원을 그리며 하나씩 핍니다. 그런데 활짝 핀 꽃을 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날이 조금만 흐리거나 기온이 차면 한낮까지 기다려도 꽃잎을 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향해 활짝 벌어지는 6~8개의 꽃잎은 연보랏빛을 띠는데, 봄날의 아련한 정취와 더없이 잘 어울립니다. 꽃 중앙에 자주색 또는 노란색의 꽃밥을 가진 수술 8개와 암술 1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 ![]() |
강렬한 봄 햇살을 스포트라이트처럼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깽깽이풀. 어둠 속에 빛나는 보석 같다. @김인철 |
누구를 만나려고
보랏빛 맑게 단장하고
봄바람에 살랑살랑
춤추며 기다리나.
내려보고 올려보고 비껴보며
내 가슴은 울렁울렁
보랏빛 물드는데
너는 무심하게 피어올라
하늘만 쳐다보네. ( 오종훈의 시 ‘깽깽이풀’에서)
![]() ![]() |
@김인철 |
깽깽이풀은 주로 산 중턱 아래 낮은 숲에서 자랍니다. 즉 민가와 가까운 곳에 자생합니다. 그러다 보니 뿌리를 캐 약재로 팔겠다거나 관상 가치가 높은 꽃을 자기만 보겠다며 남획하고 자생지를 훼손하는 나쁜 손이 많아 한때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었습니다. 다행히 다량 번식 등 인위적인 증식이 가능해지면서 전국 각지의 웬만한 식물원·수목원 등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고,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쁘고 귀한 깽깽이풀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정겹기 그지없지만 연원(淵源)이 모호한 우리말 이름이 원인입니다. 깽깽이풀은 한두 송이가 외따로 자라기도 하지만, 대개는 수십 송이가 뭉쳐서 여기에 한 무더기 저기에 한 무더기 핍니다. 먼저 이런 생육 특성에 한글 이름의 유래와 번식의 비밀이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듬성듬성 자라는 모습에서 한 발로 껑충껑충 뛰는 깽깽이걸음을 떠올리고 깽깽이풀이란 이름을 붙이게 됐다는 설이지요.
![]() ![]() |
꽃만큼 예쁜 잎. 가장자리가 물결이 치고 반질반질한 게 연잎을 똑 닮았다 해서 황련(黃蓮)이니 선황련(鮮黃蓮)이니 하는 한자어 생약명을 얻었다. @김인철 |
![]() ![]() |
@김인철 |
또한 깽깽이풀이 띄엄띄엄 자라는 것은 당분이 함유된 씨앗을 개미들이 좋아해 개미집으로 운반해 가는 도중에 여기에 하나 저기에 하나 떨어뜨리면서 자연스럽게 분산 발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창 농사일이 바쁜 4월 농부들이 만개한 이 꽃을 보면 ‘깽깽이’(해금이나 바이올린을 낮춰 부르는 말) 켜며 땡땡이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긴 잎자루 끝에 하나씩 달리는 잎 또한 꽃 못지않게 눈길을 끕니다. 잎은 꽃보다 다소 늦게 나는데, 그 수가 많아 꽃보다 풍성합니다. 길이와 폭이 각 9cm 정도로 제법 널찍한 심장형 잎은 물결 모양의 가장자리와 반질반질한 표피 등이 연잎과 많이 닮았습니다. 바로 이 잎 모양에서 <동의보감> 등 옛 문헌에 나오는 황련(黃蓮), 모황련(毛黃蓮), 선황련(鮮黃蓮) 등의 한자 이름이 연유합니다. 뿌리는 노랗고, 연잎을 닮은 풀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저술된 <조선산야생약용식물>(1936)에는 ‘ᄭᅢᆼᄭᅢᆼ이닙(깽깽이입)’, <조선식물향명집>(정태현 외 3인)에선 ‘깽깽이풀’이란 한글 이름이 처음 등장해 지금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살펴본즉, 약재 이름을 한글화하면서 입에서 ‘깽깽’대는 신음이 나올 정도로 맛이 쓴 뿌리를 약재로 쓰는 풀이라는 의미에서 깽깽이풀이란 이름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지요.
![]() ![]() |
개미가 먹잇감으로 운반하다 듬성듬성 떨어뜨려 군데군데 핀다는 깽깽이풀. 아름답기로 봄꽃 중 으뜸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김인철 |
![]() ![]() |
@김인철 |
아직 결론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이름의 연원을 놓고서는 설이 구구하지만, 아래 견해에는 선뜻 동의합니다.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깽깽이풀을 한 번 본 이는 누구나 그 매력에 푹 빠져든다. 토종 야생화 중 아름답기로 으뜸이다.”
제주도와 남해 섬을 빼고 전국에 분포합니다. 야생화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유명 자생지는 경북 의성의 고운사와 대구 달성군 본리리, 강원 홍천군 방내리 주변 야산 등입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20-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