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우리꽃’-13-털복주머니란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4-3-26>
소 풀 뜯고 실개천 흐 백두대간에 피는 북방계 난초, 털복주머니란!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Cypripedium guttatum Sw.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철책을 두르고 보호 중인 강원도 함백산 자생지에 핀 털복주머니란. 6월 초순 활짝 핀 꽃을 만났다. @사진 김인철
국내에서 자라는 100여 종의 야생 난초 가운데 큼직하고 생김새가 독특하며 색상이 화려한 난초꽃을 꼽는다면 아마 복주머니란 속의 자생 난초 셋이 앞자리 5개 안에 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 그리고 털복주머니란 중 어느 것을 앞에 세울지는 선정하는 이의 관점과 취향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만큼 이들 셋의 자생지가 이미 탐욕스러운 나쁜 손들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고, 앞으로도 남획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결과 광릉요강꽃과 털복주머니란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복주머니란은 2급으로 지정, 보호받고 있습니다.
절멸의 위기 속에서도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은 새로운 자생지가 하나둘 확인되고 있지만, 털복주머니란은 최근 20여 년간 기존의 자생지 외 그 어느 곳에서도 새로운 개체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에 따르면 “털복주머니란은 오랫동안 남한에는 자생하지 않는 북방계 난초로 여겨져 오다 1990년대 초에 강원도 정선 함백산에서 도로공사 중 처음 발견돼 잡지에서 소개되었는데, 채취꾼들의 표적이 되면서 수백 포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사진 김인철
환경부와 산림청은 이후 함백산에 남은 두 개 자생지에 각각 철조망을 두르고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해 특별 보호하고 있는데, 총 개체 수는 두 곳을 합해 모두 100촉 미만이며, 그중 꽃을 피우는 개체 수는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함백산 이외 설악산에서도 발견되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현재 확인된 바 없으니, 그야말로 철책으로 둘러싼 두 곳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새로운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는 대신, 털복주머니란의 종자 꼬투리를 채취해 무균배양으로 300여 개체에 달하는 대량 인공 증식에 성공했고, 이 중 일부를 함백산 자생지에 이식하는 등 관련 부처의 멸종위기 야생생물 증식·복원 사업이 점차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어서 고무적입니다.
키가 30cm 정도까지 자라는데 줄기와 이파리는 물론 꽃받침 등 전초에 솜털 같은 하얀 털이 빼곡히 나 있어 국명에 ‘털’ 자가 들어갔습니다. 꽃은 입술꽃잎과 곁꽃잎 등 3장의 꽃잎과 3장의 꽃받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함백산 자생지에서는 대개 6월 초 활짝 핍니다. 순판(脣瓣)으로도 불리는 3~5cm 크기의 입술꽃잎이 주머니 모양이어서 ‘복주머니’가 이름에 들었는데, 알록달록 화려한 홍자색 무늬가 특징입니다.
수목한계선 위 드넓은 백두평원에서 들쭉나무와 월귤 등 키 작은 관목들 사이에 피어 있는 털복주머니란. 함백산보다 한 달 늦은 7월 초 만개했다. @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수년 전 7월 초순 천지(天池)를 보기 위해 지프를 타고 백두산 북쪽 능선을 오르는 길 무심코 내다본 차창 밖 백두평원 곳곳에서 알록달록한 꽃송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설마 그 귀한 털복주머니란일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다음 날 백두평원 한 귀퉁이에 올라 전날 스치듯 본 그 꽃들이 바로 털복주머니란이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꽃 피는 시기만 한 달가량 늦을 뿐 같은 꽃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동유럽, 러시아, 중국, 몽골, 일본, 알래스카, 캐나다 등 북위 40도 이상 아한대(亞寒帶)가 고향인 북방계 식물이기에 백두산 일대에서 손쉽게 만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면서 백두산에서 함백산 사이 백두대간에 자리한 북녘의 고산지대에도 털복주머니란이 흔하게 자생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니, 이래저래 통일을 간절하게 염원하게 됩니다.
알록달록 홍자색 무늬가 화려한 털복주머니란의 꽃. 주머니 모양의 입술꽃잎을 중앙에 두고 양편에 곁꽃잎이 귀처럼 달렸다. 줄기 등 전초에 흰 털이 가득하다.@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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