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우리꽃’-15-홍월귤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4-5-23>
‘설악의 혹한쯤 돼야 살만하다’는 홍월귤!
진달래과의 낙엽 관목, 학명은 Arctous rubra (Rehder & E.H.Wilson) Nakai.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
5월 중순 설악산에 최대 40cm까지 쌓인 눈더미 사이에서 얼굴을 내민 홍월귤의 노란 꽃송이. 싱그러운 녹색 잎을 포함해 전초의 크기가 높이 10cm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사진 김인철
“15과 16일 사이 큰 눈이 내린다니, 17일 올라갑시다.”
Y 선생에게 온 반가운 문자다. 산불방지 기간이 끝나는 대로 설악산 산등성이로 함께 꽃 탐사를 가자고 한 달 전쯤 부탁했고, 그 답을 기다리던 터였다. 해발 1,708m의 대청봉 정상 일대까지 왕복 산행에만 7시간이 넘게 걸리는 고산 탐사. 어설프게 올랐다 자칫 찾는 꽃을 못 보고 내려올 수도 있기에 내로라하는 ‘야생화 고수’의 한 명으로 꼽히는 Y 선생에게 동행을 청했고, D-Day가 잡힌 것.
소청대피소 부근에 전날 최대 40cm의 눈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낮 기온이 15도 안팎까지 오르고 밤 기온도 영상에 머무는 것을 여러 일기예보 사이트에서 확인한 만큼 17일 새벽 4시 큰 경계심 없이 오색약수터 인근 남설악 탐방센터를 통과합니다. 동트기 전인만큼 랜턴 불빛에 의지해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오릅니다. 그러면서 간절히 기원합니다. ‘제발 싱싱하게 꽃 펴 있어라.’ 통상 일반인은 매년 입산통제기간이 끝나는 5월 16일 이후에나 처음 대면하게 되는 오늘의 주요 탐사 대상식물의 꽃이 어떤 해는 볼만했고, 어떤 해는 이미 시들었었다고 하기에.
2시간여 오르자 서서히 어둠이 걷힙니다. 랜턴을 끄고 오른편에서 설악폭포의 시원한 물소리를 듣습니다. ‘폭설에 수량이 많이 늘었나 보네.’ 정도 생각하며 대수로이 여기지 않고 발길을 재촉합니다. 한데, 산기슭에 잔설이 보이는가 싶더니 조금 더 오르자, 아니 웬걸 등산로를 덮은 눈에 발목까지 빠지기 시작합니다. 이후 6시간 눈길을 왕복합니다. 아이젠 없는 눈길 산행도 악전고투였지만, 꽃이 눈에 덮여 찾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낭패일 수 있었습니다.
대청봉, 중청봉을 지나 산행 5시간여 만인 9시 무렵 목표 지점에 도착합니다. 산등성이에 걸터앉은 바위 더미에는 우려했던 대로 많은 눈이 쌓여 있습니다. 특히 꽃이 보이기는커녕 풀과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을 바위 틈새마다 어김없이 손목 높이까지 눈이 차 있습니다. 난관을 일시에 타개한 것은 역시 Y 선생. 여러 차례의 탐사 경험을 토대로 꽃자리를 정확하게 찾아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듯 맨손으로 조심조심 눈을 떠냅니다.
사진 김인철
순간 콩알만 한 크기에 단지 모양을 한 연한 황색 꽃 10여 송이가 깜찍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8년 전인 2016년 6월 백두평원의 바위 더미에서 처음 본 꽃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5cm쯤 되는 다소 큰 잎까지 포함해서 전초의 높이가 10cm도 안 되는, 그렇다고 풀이 아니라 엄연히 나무인 홍월귤입니다. 꽃은 9~10월 달고 신 맛이 나는 동근 모양의 붉은 열매로 익는데, 툰드라지대의 곰들이 이 열매를 즐겨 먹는다고 해서 베어베리(Bearberry)라는 영어 이름을 얻었습니다.
콩알만 한 크기에 초미니 단지 모양의 홍월귤꽃. 줄기 끝에서 땅을 보고 1~3개씩 달린다. 4, 5갈래로 갈라진 끝이 뾰로통해서 입술을 오므린 듯 앙증맞다.@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전형적인 북방계 극지·고산식물로서 세계적으로 단 3종이 있는데, 그중 한 종이 오직 설악산에서만 자라고 있습니다.
빙하기 때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왔다가 이후 기온이 오르면서 대부분 절멸했고 일부가 설악산 정상 부근에서 겨우 연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고산, 강추위가 홍월귤엔 오히려 사활적 생존조건이 되고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수년 전 200여 개에 달했다는 개체수가 현재는 10개도 관찰되지 않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홍월귤입니다.
.2016년 수목한계선 위 드넓은 백두평원에서 처음 만난 홍월귤꽃. 북한지역에서는 백두산과 개마고원 등지에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사진 김인철
사진 김인철
출처 :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