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이 ‘대한매일신보’란 이름으로 창간된 지 100년.그간 우리는 일제에 나라를 송두리채 빼앗기는 치욕을 겪으며 온 겨레와 함께 분노했고,나라가 둘로 갈리는 뼈아픈 현실 앞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이제 새로운 100년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통일의 염원을 달성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한다.다행히 최근 남북의 화해·협력 노력들이 하나하나 결실을 거두면서 통일은 더 이상 신기루가 아닌,엄연한 현실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고 있다. “관광은 공단을 낳고,공단은 다시 관광을 낳고…” 정세현(丁世鉉) 전 통일부 장관이 퇴임하기 얼마 전 남북경협의 활성화를 전망하면서 던진 화두다.실제로 본격적인 첫 남북 경협사업인 금강산 관광이 우여곡절 끝에 5년 만에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고,개성공단도 올해 안에 첫 제품을 생산한다는 목표아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이는 다시 개성관광과 금강산특구 개발로 이어질 것이다.그것이 역사의 순리다.금강산과 개성공단,그리고 그곳으로 이어지는 길은 분단의 벽을 허물고,남북간 화해와 공존공영의 미래를 여는 ‘평화의 회랑’(Peace Corridor)이다.반세기 넘게 ‘적’으로 살아온 남과 북의 사람과 문화는 양대 동서 축선을 통해 만나서 부대끼고,충돌하고 융화한다.덧붙여 중국 단동에서 신의주를 거쳐 평북 용천으로 이어지는 북방 길은 한민족의 선의가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준 인도(人道)다.그길을 통해 전달된 구호물품과 장비 등은 통일의 날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반대편 동포들이 결코 잊고 있지 않았음을 증명할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4돌인 6월15일부터 오늘(16일)까지 한달여 동안 금강산과 개성에선 뜻깊은 행사들이 잇따라 열렸다.‘금강산 당일관광’ 시범 실시,개성공업지구(개성공단) 시범단지 준공식,금강산호텔 개관식,통일기원 합수제,제1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등등.숨가쁘게 진행된 이들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금강산을 3차례,개성을 한차례 다녀오면서 내린 결론은 “분단의 장벽은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다.”이다.

지난 6월30일 오전 10시15분 국회의원 및 정부 관계자,업체 대표 등 220여명을 태운 관광버스 7대가 개성공단 시범단지에 닿았다.서울 경복궁 주차장을 출발한 지 2시간여 만이다.군사분계선(휴전선) 북방한계선에서 시범단지까지는 불과 2㎞.철책선을 막 벗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행사장이다.“아니,이렇게 가깝다니….”
그뿐이 아니다.‘k41-615-014,015,016’ 등 일련의 번호판을 단 15t짜리 덤프트럭이 연신 관광버스를 스쳐 지나가고,불도저와 포클레인,크레인 등 중장비가 바삐 움직이며 희망의 땅을 조성하는 모습에 여기저기서 “대단하다.”는 감탄사를 터뜨린다.비산비야(非山非野)의 드넓은 벌판을 바라보며 누군가 혼잣말을 한다.“통일수도의 입지로도 손색이 없는데….”
오는 11월 말 2만 8000여평의 시범단지에 공장건물이 완공되면 15개 업체가 입주하게 된다.15개 업체에서 당장 고용할 북한 주민은 5000여명.인구 35만명에 불과한 개성시에서 5000여명의 주민이 아침 저녁 개성공단으로 출퇴근하는 광경은 얼마나 장관일까.“2012년까지 모두 800만평을 개발하게 되면 수십만명 이상의 북한 주민이 개성공단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게 됩니다.개성공단은 남의 자본과 기술,북의 인력과 토지를 결합해 만들어가는 경제적 통일사업입니다.” 육안으로는 경계선 구분조차 안될 만큼 광활한 벌판은 현대아산측의 설명이 과장이 아님을 웅변한다.

“이번 준공식은 …반세기 넘게 지속되어온 단절의 아픔이 치유되고 깊어져온 이질성이 다시 동질성으로 회복되며,남과 북이 굳게 손잡고 나아갈 수 있음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의 목메인 축사에 북측 박창련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장은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한 민족”이라며 개성공단을 세계적인 공업지구로 건설하자고 화답했다.

이날 남측 방문객들을 대하는 북측의 환대는 기대 이상이었다.행사 진행을 돕기 위해 나온 10여명의 여성 의례원들은 따뜻하면서도 스스럼없는 태도로 남측 손님들을 맞았다.특히 시범단지 준공식 후 30여분 거리의 개성시내 관광 도중 차장으로 마주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들일을 하는 농민이나 하굣길의 중학생,바닥이 보일듯 맑은 실개천에서 물놀이를 하던 어린이 등 수십,수백명의 주민들은 남측 방문객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을 외면하지 않았으며,일부는 손을 흔드는 등 친밀감을 보여줬다.

“북측 고위층이 변화하기로 작심을 한 것 같다.그러지 않고서야 군사분계선에서 이렇게 가까운 지역을 대거 남측에 내주고,일반 주민과 민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겠느냐.” 동행했던 모 대학 교수는 지난해 평양 방문때에도 이처럼 많은 주민들을 가깝게 만나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밤 금강산호텔 개관 만찬장.한나라당 국회의원 20여명이 함께 자리했다.“개척자의 길은 외롭지만 우리는 하나다.” “이제 김윤규 사장의 눈물을 내가 닦아드리겠다.” 의원들의 ‘금강산사업 찬가’가 쏟아지자 여기저기서 “한나라당 의원들 맞냐.”는 웅성거림이 들린다.이틀 뒤인 4일 오전 만물상 등산로 초입.7·4공동성명 32돌 기념 ‘통일염원합수제’를 치른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3일간의 방북 소감을 물었다.“지금껏 한나라당이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 “북한 실상을 알고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더 많이 교류해야 한다.” 만찬장 분위기 그대로였다.단 한차례의 방문이 ‘대북 퍼주기’라며 비난해온 한나라당 의원들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에 충분했던 것이다.가히 “금강산을 보지 않고는 통일정책을 말하지 말라.”고 일컬을 만하다.

지난 6월15일 금강산 구룡연 등산로의 한 쉼터.남측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고 김일성 주석의 어록이 새겨진 표식비를 손으로 짚거나,받침대에 앉으려 하자 북측 안내원들이 다급하게 제지한다.하지만 목소리나 표정이 의외로 부드럽다.“모르고 한 일인데 어떻게 하겠습니까.살아온 환경과 이념,생각이 달라서 그런 것인데….” “많이 변했다.”는 기자의 말에 북측 안내원들은 “이제는 우리도 알 만큼 안다.”며 고의성이 없는 행동들은 굳이 문제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이해하고 관용하는 마음이 생겨났다는 것이다.금강산관광 6년의 성과이다.

이제 올 연말이 되면 하루 평균 2000여명의 남한 관광객이 금강산을 오가고,5000여명의 북한 주민이 개성공단을 드나든다.사람이 오고 가면 덩달아 생각과 문화,문물이 따라가고 자연스럽게 이질적인 것들은 부딪치고 마찰하면서 순화되고 동화될 것이다.그러면서 이웃이 되고,하나가 된다.통일은 그렇게 이뤄질 것이다.
<200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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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도 페인트칠을 한 적이 없는 듯 회색 일색의,낡은 1자형 단층주택과 3∼4층짜리 공공건물들은 얼마전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평북 용천의 모습,그대로였다.”지난달 15일(2004/6/15) 금강산 당일관광을 다녀온 뒤 18일 본란에 썼던 ‘금강산에 미래가 있다’의 한 구절이다.북한을 묘사하는 최적의 색깔은 무엇일까? 한번이라도 북한을 다녀온 이라면 ‘우중충한 분위기의 잿빛’에 대체로 동감한다.그런 북한이 변했다.

지난 2일(2004/7/2) 다시 본 금강산 양지마을과 온정리마을 등의 가옥들에선 궁기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보름여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이유가 뭘까.한참을 따져보다 발견한 사실은 1자형 단층주택의 외벽이 흰색으로 말끔하게 단장돼 있다는 것이다.물론 지붕은 여전히 잿빛이었지만.

충격이었다.이틀전인 6월30일(2004) 개성공단 시범단지(2만 8000평) 준공식 후 둘러본 개성 시내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흰색이다.남측 관계자들에게 자세한 내용을 물었지만 아는 이가 없다.“잘못 보았나.”하며 구룡연 등산길에 북측 안내원들에게 물었다.“별 걸 다 물어봅네다.” 몇차례 핀잔을 들은 끝에 보름전 만난,구면의 여성 안내원에게서 답변을 들었다.“열흘전쯤 ‘회칠’을 했습네다.” 하산길에 만난 남성 안내원도 온정리 제 집에 얼마전 회칠을 했다고 확인해줬다.

작지만 많은 것을 내포한 변화다.우선 북한 당국이 먹고 입는 것을 넘어서,주거환경에까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북한경제에 다소나마 숨통이 트였음을 보여주는 실례일 수 있다.북측이 남측 언론의 지적에 즉각 반응했다는 아전인수격 해석도 가능하다.설령 남측 관광객을 의식한 선전용 치장일지라도 그 변화는 의미있다.특히 금강산관광사업이 지역 주민들에게 어쨌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유의할 만하다.경협이 북한 주민들에게 실익을 가져온다는 믿음과 희망은 교류·협력의 확대,나아가 평화통일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촉진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개성공단 시범단지 준공식이 열린 지난달 30일.행사 후 점심식사를 위해 개성시내 자남산여관까지 오고가면서,시내 한복판에 있는 고려박물관(고려성균관)과 선죽교를 둘러보면서 숱한 ‘개성사람’들을 차창으로 만났다.관광버스 전용도로를 설치한 금강산과 달리 남측 방문객과 개성주민이 같은 도로를 오고갔다.한데 차창에 비친 개성사람 얼굴에는 활기가 돌았다.의외였다.

북한경제 사정이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1992년 2월 고위급회담 취재 당시 만났던 개성에 비할 바 아니었다.우중충한 건물,남루한 옷차림 등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환하고 생기가 느껴졌다.남측 방문객을 대하는 태도도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모른 척 외면하고,혹시라도 눈이 마주칠세라 고개 숙이고 제 갈 길만 가던 개성사람들이 고개 들고 미소 짓고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그들에게선 더이상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북측에 오는 11월쯤(2004) 시범단지 가동시 5000여명을 고용할 테니 미리 대비하라고 요청했습니다.개성공단에 취업하면 북한 일반노동자 월급의 3배 정도가 되는 57.5달러를 직접 지급받는다는 소문이 개성 시내에 파다하게 퍼졌을 것입니다.” 프랑스 속담에 ‘젊은이는 희망에 살고 노인은 추억에 산다.’고 하던가.내일에 대한 희망은 아무리 극심한 고통과 가난이라도 이겨내게 한다.남북간 교류·협력사업이 날로 늘어나고 확대되어야 하는 까닭이다.<200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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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6개월을 넘기면서 새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촛불도 기세가 꺾였고,10%대로 떨어졌던 지지율도 30%를 넘어서고 있다. 지지율 회복에 올림픽 거품이 끼어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그로서는 액면 그대로 믿고 싶을 것이다. 덩달아 자신감을 되찾은 양상이다. 엔도르핀이 돈다거나 좌고우면 않겠다는 등의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대통령의 강한 의욕이 잘못일 수는 없다. 문제는 지난 6개월을 어떻게 정리했느냐이다.‘잃어버린 6개월’을 반성하고, 실패원인을 찾고, 오답노트를 만들어 남은 4년 6개월 펼칠 국정운영의 ‘수정본’을 마련했는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게 아닌 듯하다. 우선 진정성 있는 반성의 기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대통령과 당이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깝고 걱정이 컸을 것”이란 대통령의 편지나,‘대내외의 어려움 속 삶의 선진화를 준비한 6개월’이라는 청와대의 자평은 지난 6개월의 소용돌이를 무색하게 한다. 반성이 없으니 오답노트도, 제대로 된 국정운영의 수정본도 없다. 지난 6개월을 그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원안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태세다. 그런데 그 원안이 기실은 시대착오적 과거회귀다. 정치는 유신독재와 군사정권 시절의 권위주의를, 경제도 1960,70년대 성장주의를 답습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규제 완화는 전국적인 투기 광풍을 촉발했던 수년전의 정책 실패와 닮아 있다.

이 대통령이 부쩍 ‘법치’를 강조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시위피해 집단소송제나 사이버모욕죄 등의 신설 움직임과 맥이 닿아 보인다. 행여 법으로 제2, 제3의 촛불의 싹을 아예 잘라 버리겠다는 계산이라면 오산이다. 국민이 바라는 건 박정희 유신독재나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의 권위주의적 법치가 아니라, 통합과 소통의 정치다. 민주적 정당성이 전무했던 독재정권의 부끄러운 유산을 왜 이 대통령이 물려받으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버락 오바마는 지난달 28일 미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우리는 경제의 힘을 억만장자들의 숫자나 포천 500대 대기업의 이익으로서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경제를 이루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자본의 가치가 아니라 중소기업·서민·근로자를 존중하는 경제를 주창했다. 이에 질세라 존 매케인도 이제 44살의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미 대선 사상 두번째인 여성 부통령 후보로 내세우며 ‘공화당식’ 변화와 개혁의 맞불을 놓았다. 변화와 개혁이 작금의 시대정신임을 보여준다. 정몽준 최고위원이 얼마 전 “변화하지 않는 보수는 수구다. 진보보다 더 진보적 가치를 수용해 나가야 한다.”고 한나라당에 한 주문은 액면 그대로 이 대통령에게도 전해져야 한다.

내가 눈을 감는다고 앞에 있는 사물이 없어지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남은 4년 6개월 촛불을 곁에 끼고 살 작정이 아니라면, 지난 6개월의 국정운영에 대해 국민이 내려준 ‘첨삭지도’를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첨삭지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찢어버리고 옛 방식대로 문제를 푼다면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운이 좋으면 20점에서 30점대로 조금 오르겠지만, 낙제점이긴 마찬가지다.4년 6개월 뒤면 이 대통령도 역사 속으로 돌아간다. 그 역사가 이 대통령이 상위 1%를 위한 정책을 밀어붙이려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기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200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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