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곡사(鳳谷寺).
충남 아산 봉수산에 있는 천년 고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통일신라시대 승려 도선이 창건했다고 합니다.
오래된 절집답게 찾아가는 길도 세월의 흔적을 느낄 만해 '천년의 숲 길'이라 한답니다.
만공 선사가 도를 깨우친 유서깊은 절이라는데,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 했으니,
군소리하기보다 여러 사진을 덧붙입니다.
봉곡사(鳳谷寺).
충남 아산 봉수산에 있는 천년 고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통일신라시대 승려 도선이 창건했다고 합니다.
오래된 절집답게 찾아가는 길도 세월의 흔적을 느낄 만해 '천년의 숲 길'이라 한답니다.
만공 선사가 도를 깨우친 유서깊은 절이라는데,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 했으니,
군소리하기보다 여러 사진을 덧붙입니다.
공산성.
<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산성(山城). 백제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당시의 중심 산성이었다. 사적 제12호이다.> (다음 한국어 사전)
가을의 말미이자, 겨울의 초입쯤 공주의 들머리에 있는 공산성에 올랐습니다.
흐드러진 산국이 인사하며 맞이하는 야트막한 산성 둘레길에서 여기저기 둘러본 전망이 제법 그럴듯합니다.
마곡사.
충남 공주에 있는 신라시대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라는데, 어찌 된 인연인지 이제야 만났습니다.
생각하지 못한 강한 첫 인상에 두서없이 셔터를 눌렀습니다.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춘삼월.
그 강에 갔습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
조용히 묵직하게 흐르는 강 깊은 곳에서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참 많이도 들었던 노래,
아마 40년 가까이 울렸을 정태춘의 '북한강에서'가 강물과 함께 그 강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난 지 오래이니, 한강의 얼음이 녹고 유장한 흐름을 되찾은 건 당연지사겠지요.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 가치
풀 아래 우슴 짓는 샘물 가치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 길 우에
오날 하로 하날을 우러르고 십다
새악시 볼에 떠오른 붓그럼 가치
詩의 가슴을 살프시 젖는 물결 가치
보드레한 에메랄드 얕게 흐르는
실비단 하날을 바라보고 십다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 길 우에)
어느 해
강진의 영랑 생가를 들렀습니다.
마침 초가를 빙 두른 토석담 볏짚 지붕 위에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 가치' 따사로운 겨울 볕이 살포시 내려앉는,
겨울 한낮의 한가로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순간 긴 담장의 누런 흙이 '새악시 볼에 떠오른 붓그럼 가치' 붉게 물들었습니다.
<선죽교>
<수표교>
얼마 전 늘 바라만 보던 남산, 차를 타고 지나치던 남산을 모처럼 걸어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져 지인들과 함께 장충동을 출발하자마자 곧 옛 수표교를 처음 대하는 '발견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 덕분에 19년 전인 2004년 개성공단 착공식에 참석했다가 운 좋게 만났던 개성 선죽교가 떠올랐습니다. 고려와 조선의 역사 속 돌다리의 현재 모습을 비교해봅니다.
선죽교
<개성에 있는 길이 8.35m, 너비 3.36m의, 화강석으로 축조된 돌다리.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 등에 철퇴를 맞고 죽은 곳으로 유명하다. 다리 위 돌에 있는 붉은 반점이 정몽주의 피 얼룩이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수표교
< 조선 세종 때에, 서울의 청계천에 놓은 길이 27.5 m, 너비 7.5m, 높이 4m의 돌다리. 1441년 처음에는 나무다리로 만들었는데, 후대에 보수하면서 돌다리로 축조했다. 1959년 청계천 복개 공사 때 현재의 장충단 공원 입구로 옮겨졌다. >
"내가 1786년 9월 28일 저녁, 독일 시간으로 5시에 브렌타 강에서 갯벌로 진입하면서 처음으로 베네치아의 마을을 바라보고, 계속하여 이 놀라운 섬의 도시, 비버 공화국에 발을 들여놓고 구경하게 된 것은 내 운명의 책 한 쪽에 쓰여 있던 바다. 그리하여 다행스럽게도 베네치아라는 도시는 이제 나에게 결코 하나의 단어, 공허한 이름이 아니게 되었다.
집들은 점점 더 빽빽하게 들어섰고, 모래땅과 늪은 암석으로 굳어졌다. 가옥들은 밀집한 수목과도 같이 점점 더 높이 솟아올랐다. 옆으로 퍼질 수가 없기 때문에 위로만 커졌던 것이다. 한 줌의 땅을 다투면서 처음부터 협소한 공간에다 억지로 집어넣었기 때문에, 도로의 폭은 겨우 양편의 집들을 구분하고 시민에게 꼭 필요한 통로를 확보하는 것 이상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수로가 가로(街路), 광장, 산책 길 등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뱀처럼 구부러진 큰 운하는 세계의 어떠한 가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세계의 어떠한 광장도 성 마르코 광장 앞에 펼쳐진 공간에 비견될 수 없다.
얼마 후 피곤해진 나는 좁은 골목을 떠나서 곤돌라를 탔다. 이번에는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바다 쪽에서 경치를 바라보려고 대운하의 북쪽 부분을 빠져나와서 산타클라라 섬을 돌아 갯벌 안으로 배를 볼아 주데카 운하로 가서 성 마르코 광장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러자 모든 베네치아 사람들의 곤돌라를 탔을 때 느끼는 것처럼 나도 아드리아 해(Mare Adratico)를 지배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갑자기 들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을 읽다가 10년 전 만났던 베네치아의 곤돌라가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그 어느 해 11월 초순이던가,
저녁 시간 고도 경주 시내를 걷는데 때마침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릅니다.
아하, '신라의 달밤'이 이런 것일 수 있겠구나 싶어 핸드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곤 잊었다가 엊그제 메모리 카드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습니다.
백사실 계곡.
종로구 부암동과 세검정 사이에 있는 북악산의 한 골짜기.
계곡 중턱에 주춧돌이 남아 있는 빈터가 <백사(白沙) 이항복의 별장터였다는 설>을 토대로
그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집니다.
버들치, 가재, 도롱뇽 등 높은 산 깊은 계곡에서나 볼 수 있는 청정지역 지표 생물체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말에 오래전부터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실제 가보니 서울 한 복판에서 산간마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니 신기합니다.
오가는 길에 만난 배풍등 붉은 열매는 덤입니다.
천리포 해수욕장에서부터 영목항까지.
꽃 찾아 안면도를 꽤 여러 차례 오고 갔으나
천리포 해수욕장의 '천연 풀장',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갈음이 해수욕장,
썰물 때만 찾아갈 수 있는 안면암 부상탑,
낚시꾼들의 성지 영목항, 신진항 등이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태안의 속살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본 2022년 여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