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길 벼랑에 매달린 ‘3대 바위꽃’, 분홍장구채!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9.18>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Silene capitata Kom.

연천 가는 길은
다른 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세상의 모든 길이
길로 연결되어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나는 여기서 발견했다.
<원구식의 ‘연천 가는 길’에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 그 규모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땅의 가장 흔한 풍경은 좌우로 즐비한 논에서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모습이 아닐까요. 그런 측면에서 시인의 말대로 연천 가는 길은 우리 땅의 모든 다른 길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디 그것이 연천 가는 길뿐일까마는 말이지요. 그러나 차창에 비치는 겉모습만 그러할 뿐, 한 발짝만 속으로 내디디면 세상의 모든 길은 저마다 다른 얼굴로 자기만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연천 가는 길, 연천을 거쳐 포천을 지나 철원까지 오가는 길, 그곳엔 여름에서 가을 사이 각별한 야생화가 피고 집니다. 이글거리던 태양이 식어가며 가을에 전하는 ‘여름의 선물’과도 같은 연분홍 꽃이 한탄강과 그 지류들 가장자리에 피어 있습니다. 그것도 천 길 벼랑에 매달려 피어 있습니다. 바위 절벽에 피어 있기에 해마다 풍성하고 빈약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동구 밖 느티나무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수십, 수백 년 된 늙은 느티나무와 달리 해마다 새로 피는 꽃인 탓에 언제나 첫사랑 고향 소녀 같은 해맑은 표정을 잃지 않으니 반갑고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분홍장구채가 그 주인공입니다.

경기도 연천의 유명한 좌상 바위와 한탄강이 굽어보이는 바위 절벽에 자리 잡은 분홍장구채가 화사한 연분홍 꽃송이를 한 아름 늘어뜨리고 있다. Ⓒ김인철
Ⓒ김인철

붉은 바위 끝에
잡고 있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견우노옹의 헌화가>

‘삼국유사’에 전해져 오는 ‘헌화가’의 대상이 철쭉이라는 게 정설이지만, 천 길 벼랑에 핀 꽃을 보면 그 모두가 ‘헌화가’에 나오는 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특히 경기 북부 한탄강 가 바위 절벽에 핀 분홍장구채를 고개를 치켜들고 올려다보노라면 ‘쇠고삐 잡은 손 부끄럽다 아니 하면 기꺼이 천 길 낭떠러지에 올라 꽃 꺾어 바치리다’고 한 견우노옹이 자연 떠오릅니다.

길이 30~45cm까지 뻗은 줄기 끝에 꽃송이를 다닥다닥 달고 있는 분홍장구채. 잎은 마주나며, 끝이 뾰족한 달걀 모양이다. 8~10월 피는 꽃은 꽃잎은 5개로 길이 10mm, 너비 2mm이며 깊이 2mm정도로 갈라진다. 수술은 10개로 밖으로 길게 뻗는다. 암술대는 2~4개. Ⓒ김인철
Ⓒ김인철

우리나라 산과 들, 강과 바다에 산재한 바위에 붙어 피는 야생화가 한둘이 아니지만, 봄 영월·정선 등 동강변에 피는 동강할미꽃, 가을 주왕산 등지 바위 절벽에 피는 둥근잎꿩의비름, 그리고 늦여름부터 가을의 초입까지 경기 북부 한탄강변에 피는 분홍장구채, 이들 셋을 ‘3대 절벽 꽃’이라 일컬을 만합니다. 꽃과 식물체의 아름다움이나 희귀성 등 이모저모를 고려할 때 말입니다. 그 모두 처음엔 가깝고 낮은 곳에서도 자라고 있었지만, 갈수록 사람의 손길을 피해 더 높은, 더 가파른 곳으로 피신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니, 아득하고 아슬아슬한 곳에 자리 잡은 것들만이 살아남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바위 절벽에 곡예 하듯 매달려 핀 분홍장구채. 그 덕에 해마다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첫사랑 고향 소녀처럼 해맑게 피어나는 꽃송이를 만날 수 있다. Ⓒ김인철
Ⓒ김인철

꽃받침이 장구통을, 꽃 피기 전의 꽃봉오리와 줄기의 모습은 장구채를 닮았고 꽃 색은 분홍색이어서 분홍장구채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절벽이나 계곡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30cm~45cm까지 자라며, 8월부터 늦게는 10월 초순까지 연분홍 꽃이 우산 형태로 달립니다. 연천과 철원, 포천 이외 영월, 홍천, 화천, 옥천, 대전 등지에서도 자생하는 게 확인되었지만, 전체 개체수가 많지 않아 여전히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북한 함경도와 황해도에서도 자라는 등 세계적으로 거의 한반도에만 분포하지만, 압록강변 중국 지역에도 생육하는 것으로 알려져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분류되지는 않았습니다. 

강원도 철원 한탄강 상류 계곡에서 만난 분홍장구채. 그리고 지금은 출입이 통제된 경기도 포천의 비둘기낭 폭포 주변의 깎아지른 절벽에 핀 분홍장구채. Ⓒ김인철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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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남강의 숨은 진주, 진주바위솔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13>

돌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Orostachys margaritifolia Y.N.Lee

Ⅰ.

진주라 천 리 길을/ 내 어이 왔던고
남강 가에 외로이/ 피리 소리를 들을 적에
아, 모래알을 만지면서/ 옛 노래를 불러본다

<‘진주라 천 리 길’ 중에서>

1980년대 중반, 일이 손에 익지 않은 사회 초년병 시절. 정신없이 일과를 마치면 부서 선배들이 돌아가며 저녁 겸 소주 한잔을 사줬습니다. 간간이 부장도 합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세대쯤 나이 차가 나던 부장은 얼큰하게 술이 오르면 으레 구성진 목소리로 낯선 대사를 읊곤 했습니다. “진주라 천 리 길을 내 어이 왔던고…”

생각해보니 요즘 랩 하듯 읊조림을 시작했지만, 끝까지 노래를 부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41년 발표된 신가요 ‘진주라 천 리 길’. 이가실 작사, 이운정 작곡에 이규남이 부른 ‘진주라 천 리 길’은 서정적이고 단정한 가사와 조화를 이룬 곡조로, 진주를 중심으로 영남 일대에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필명 이가실과 이운정의 실제 인물인 조명암과 이면상이 북으로 가고 가수 이규남마저 납북되면서, 1952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40년이나 금지곡으로 묶였습니다. 한 세대 나이 차이가 났던 필자에게 노랫말이 낯설고, 고향 진주를 그리워하던 부장이 끝까지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진주 남강 물 가둬 만든 진양호를 굽어보는 자리에 진주바위솔 한 송이가 오뚝 서 있다. Ⓒ김인철

Ⅱ.

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시집살이 삼 년 만에
시어머님 하시는 말씀, 얘야 아가 며늘아가
진주 낭군 오실 터이니 진주 남강 빨래 가라

너는 죽어 꽃이 되고 나는 죽어 나비가 되어
푸른 청산 찾아가서는 천년만년 살고 지고.
어화둥둥 내 사랑아. 어화둥둥 내 사랑아.

<‘진주난봉가’ 중에서>

1970년대 후반 지겹던 교복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대학생이 되었지만 때는 정치적 암흑기인 유신 말기. 당시 골수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많은 대학생이 ‘타박네야’니 ‘진주난봉가’니 하는, 이른바 ‘민중가요’를 함께 부르곤 했습니다. 기성의 대중가요를 아무런 생각 없이 따라 부르다간 삶마저도 체제 순응의 늪에 빠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을 겁니다. 가난한 집에서 시집살이하던 여인이 기생첩과 희롱하는 남편을 보고 목매 죽자 남편이 뒤늦게 후회한다는 내용의 진주난봉가. 왜장을 유인해 남강에서 순국한 의기 논개 이후 다시 만난 진주는 이렇듯 서럽고도 애달픈 삶을 사는 아낙네의 고장이었습니다.

꽃 못지않게 예쁜 잎이 촘촘히 빙 둘러 난 진주바위솔의 전형적인 모습. 그리고 꽃대가 달리기 전 동아(冬芽) 상태의 진주바위솔. Ⓒ김인철
Ⓒ김인철

Ⅲ.

2019년 11월 7일. 서울에서 ‘천 리 길’ 떨어진 진주에, 그 유명한 진주 남강 물 가둬 만든 진양호 바위 절벽에 특별한 바위솔이 자생한다는 말에 길을 나섰습니다. ‘진주라 천 리 길’과 ‘진주난봉가’ 두 노랫말에 모두 등장하는 남강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내비게이션에 나타난 실제 거리도 360여㎞를 찍으니 ‘천 리 길’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경남 진주 인근 및 산청 등 지리산 자락에 자생하는 진주바위솔. 서울 및 경기·강원 지역의 바위솔이나 좀바위솔, 포천바위솔, 정선바위솔 등은 이미 꽃이 폈다 진 지 오래건만, 10월 하순 펴서 11월 중순 이후에도 꽃송이를 유지한다니, 천 리 길이 진주바위솔의 개화 시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가 싶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 물이 넘실대는 바위 벼랑 여기저기에 진주바위솔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김인철
Ⓒ김인철

진주바위솔은 꽃 못지않게 예쁘고 독특한 잎으로 눈길을 끕니다. 바위에 납작 붙은 잎이 꽃차례가 모두 성숙한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 모양이 로제트형, 즉 장미꽃 조각처럼 둥근 방사상 배열을 갖추고 있습니다. 잎 하나하나는 길이 1~3.5cm, 너비 0.5~1.5cm의 주걱 모양인데, 가운데 끝이 뾰족하게 튀어나왔습니다. 색은 녹색 바탕에 자장 자리와 끝은 자주색입니다.

가지를 치지 않아 하나의 개체에 하나의 꽃차례가 달리는데, 그 길이가 5㎝ 정도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10㎝ 이상 긴 것도 상당수 눈에 띕니다. 하나의 꽃차례에 100여 개의 자잘한 꽃이 다닥다닥 달리는데, 1㎝ 미만인 개개의 꽃마다 5장의 꽃잎과 5개의 암술, 그리고 자주색 꽃밥이 달리는 10개의 수술이 있습니다. 꽃차례나 개개 꽃의 형태는 다른 바위솔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진주낭군’이 붓글씨 배울 적 썼음직한 백모필(白毛筆)을 똑 닮은 진주바위솔. 바위 중앙에 납작 붙어서 자라고 있다. Ⓒ김인철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절벽 위 안전지대에서 풍성하게 꽃을 피운 진주바위솔. Ⓒ김인철

모든 바위솔이 바위나 그에 버금가는 곳에서 자라기에 접근이 쉽지 않지만, 진양호반에 피는 진주바위솔의 위험성은 손에 꼽을 만합니다. 아예 접근이 불가능한 포천바위솔을 빼고, 가장 험한 곳에 자생한다고 할 만합니다. 바위라고는 하나, 조금만 힘을 가하면 부스러지는 석회암인 데다 그 아래는 깊이를 알 수 호수여서, 아차 하는 순간 바위 벼랑에서 물속으로 직행할 위험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며 물러섰습니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나뭇잎은 붉게 물드는 가을 진양호 둘레 절벽 위에 진주바위솔이 멋지게 피어 있다.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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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산의 가을 선물, 가는잎향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21>

사무치는 그리움 짙은 향(香)으로 피어나

꿀풀과의 한해살이풀. 학명은 Elsholtzia angustifolia (Loes.) Kitag.

새벽바람이 소슬합니다. 돌연 무더웠던 여름은 어제이고, 계절이 가을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음을 몸이 먼저 알아차립니다. 도시의 시멘트 숲에도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습니다. 이런저런 조경수들의 이파리도 울긋불긋 그 색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깡마른 이파리가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앙상해진 나뭇가지가 찬바람에 윙윙 울기 전, 한 송이 꽃이라도 더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길을 나섭니다.

해마다 이즈음이면 건너뛰지 못하고 찾아가는 곳, 문경새재를 허리춤에 차고 있는 산.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에 걸쳐 있는 조령산을 찾아갑니다. 해발 1,017m로 아주 높지는 않지만, 좌우로 깃대봉과 신선암봉, 마패봉과 신선봉, 할미봉, 연어봉 등 900m 안팎의 바위산이 연잇습니다. 그리고 기암·괴봉 사이사이 잘생긴 노송(老松)들이 좌우로 가지를 뻗고 서 있어, 동서남북 그 어느 쪽을 바라보든 수묵 담채화 같은 풍경을 그려냅니다. 특히 크고 작은 봉우리를 오를 때마다 커다란 암벽이 길을 가로막는데, 그 깎아지른 바위 절벽마다 ‘가을 바위산의 보물’ 가는잎향유가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한 해의 꽃시계가 저물어가는 걸 아쉬워하는 ‘꽃쟁이’들을 불러 모으는 이유입니다.

조령산 바위 절벽에 핀 가는잎향유가 소나무와 산봉우리 등과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김인철
Ⓒ김인철

9월부터 10월까지 바위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달라붙어 벼 이삭 같은 꽃차례를 곧추세우는 가는잎향유. 간혹 맨땅에서 살기도 하지만, 대개는 커다란 바위 위에, 혹여 너럭바위들 틈에 흙이 쌓이면 그곳에, 아니면 긴 세월 비바람에 바위가 움푹 파여 흙더미가 모이면 그곳 또한 감지덕지라며 하나둘 모여 꽃을 피웁니다. 한두 송이 피기도 하지만 수십 송이에서 많게는 수백 송이까지 뭉쳐서 피는데, 진홍의 가는잎향유가 높은 산 너른 바위 위에 무더기로 핀 모습은 그 어떤 꽃다발보다 화려하고 화사합니다. 천 길 낭떠러지 끝에 똬리를 틀고 앉아 세상을 굽어보는 가는잎향유. 툭하면 생태계를 해치려 드는 인간의 범접을 꺼리는 듯, 수직 절벽에 달라붙어 굽이치는 산 너울을 내려다보는 가는잎향유 군락은 한 번 보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습니다.

지난 10월 17일 만난 가는잎향유의 흰색 꽃. ‘백마 탄 초인’에 대한 갈망 때문인가, 꽃 색이 흰 야생화가 늘 각별한 관심을 끈다. Ⓒ김인철
Ⓒ김인철

가는잎향유의 화사한 꽃 색, 고고한 자생지 못지않은 특장은 바로 그 어떤 허브 식물보다 강렬한 자연의 향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뜨거운 여름 햇살에 달궈지고 농축된 향이 가을바람에 실오라기 풀어지듯 솔솔 풀려나 온몸을 감싸면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시월의 어느 가을날 천연의 가는잎향유 향이 폐부에 파고들면, 사진을 담는 내내 온몸이 황홀경에 빠져듭니다. 숲에 나뒹구는 낙엽이 늘수록 가는잎향유의 젓가락처럼 가는 잎은 연두색에서 홍갈색으로 변하며 손을 대기만 해도 부서질 듯 말라가지만, 꽃과 잎 등 높이 50cm 정도의 전초에선 박하 향보다 진한 향이 우러나와 가슴 속까지 파고듭니다. 그 깊고 강한 향에 취하고 즐기는 건 사람만이 아닙니다. 가는잎향유 자생지에는 늘 숱한 벌과 나비들이 몰려들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며 황홀한 만추의 성찬을 즐깁니다.

울긋불긋 물드는 단풍과 가는잎향유의 붉은 꽃이 가을의 정취를 한껏 돋우고 있다. Ⓒ김인철
Ⓒ김인철

꽃은 물론 깻잎 같은 잎과 줄기가 기름을 머금은 듯 반질반질 윤기가 돌 뿐 아니라 전초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고 해서 향유(香薷)라 부르는 꿀풀과 향유속 식물의 하나입니다. 마주나는 이파리가 젓가락처럼 길고 가늘다고 해서 가는잎향유라는 별도의 이름을 얻었습니다. 조령산뿐 아니라 월악산과 속리산 등 충북 괴산과 보은, 제천, 경북 문경을 지나는 산악지대에 두루 자생합니다. 한해살이풀이어서 해마다 꽃 피는 장소와 개체 수 등은 달라집니다. 아직은 멸종 위기 식물이 아니지만, 서식지가 일부 지역에 한정돼 있어 각별히 신경 써서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우리의 토종 식물 자산입니다.

너럭바위 위에 핀 가는잎향유의 짙은 향에 이끌려 벌 한 마리가 달려들고 있다. Ⓒ김인철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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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과 식물 꽃의 왕, 왕과!

암수딴그루…암꽃은 아주 귀해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8.20>

박과의 덩굴성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Thladiantha dubia Bunge

견우와 직녀가 1년에 단 한 번 만난다는 음력 칠월칠석 하루 뒤인 지난 8월 8일 충북 보은군의 한 농촌 마을. 길가 한편에 고추가 자라는 작은 텃밭이 있고, 그 텃밭 돌담을 녹색의 덩굴이 가득 뒤덮은 가운데 노란색 꽃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달려 있습니다. 담장 옆 전신주를 타고 오른 덩굴은 빈 하늘로 몇 가닥 손을 뻗었고, 줄줄이 꽃을 단 채 허공에 늘어져 있습니다. 가만 꽃을 살펴보니 연노랑 색에 호박꽃보다는 작고 오이꽃보다는 다소 커 보입니다. 꽃 구조는 노란색 꽃 바로 뒤에 짙은 녹색의 동그란 씨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게, 전형적인 박과(科) 식물의 꽃 형태를 보입니다. 박과의 원형 또는 타원형 씨방은 시일이 지나면서 점점 커져 훗날 착한 흥부를 벼락부자로 만들어 주는 금은보화가 가득 담긴 박이 되기도 하고, 수박·참외·오이·호박이 되기도 합니다.

경북 군위의 한 농촌 마을에 노란 왕과꽃이 가득 피어 한여름 시원한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김인철
Ⓒ김인철

수박과 참외. 여름철 과일의 대명사라 이를 만합니다. 여기에 오이와 호박까지 더하면 여름은 가히 박과 식물 세상입니다. ‘봄에는 나물을 먹고, 여름에는 박과 식물을 먹고, 가을에는 과일을 먹고, 겨울에는 뿌리를 먹는다.’ 중국의 민간 속담에 나오는 말이라 하는데, 우리의 생활양식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진한 녹색의 왕과 열매. 타원형의 열매는 물론 줄기, 잎에도 흰털이 무수히 나 있다. Ⓒ김인철
Ⓒ김인철

박과 식물은 한자어 이름으로 모두 오이 '과(瓜)' 자가 들어갑니다. 오이는 황과(黃瓜), 참외는 첨과(甛瓜), 수박은 서과(西瓜), 호박은 남과(南瓜), 수세미외는 사과(絲瓜), 박은 포과(匏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오이 과(瓜) 자를 쓰는 박과 식물 중에 임금 ‘왕’ 자를 쓰는 '왕과(王瓜)'가 따로 있습니다. 글머리에서 호박꽃 같기도 하고 오이꽃 같기도 한 연노랑 꽃을 피운다고 장황하게 소개했던 덩굴 식물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세 갈래로 갈라진 암술머리, 그리고 암꽃 아래 불룩한 씨방들. Ⓒ김인철
Ⓒ김인철

꽃은 한여름 끝이 5갈래로 갈라져 뒤로 젖혀지는 통꽃으로 무수하게 달립니다. 호박꽃처럼 볼품없이 펑퍼짐하지 않되 오이·참외꽃처럼 너무 자잘하지도 않은, 나름대로 단아하고 균형이 잡힌 게 박과 식물의 꽃 중에선 가장 볼 만하니 왕과란 이름이 무색하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꽃이 다소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왕’ 자가 쓰였을지는 의문으로, 이름의 연유는 물론 쓰임새 등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식물입니다. 특히 왕과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자웅이주(雌雄異株) 식물인데, 암꽃과 수꽃이 가까운 거리에서 자라는 게 확인된 바 없다니 어떻게 결실을 보고 번식하는지도 연구 대상입니다. 물론 수꽃의 경우 결실을 보지 못하는 게 분명하니, 알뿌리로 증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다섯 개의 수술과 씨방이 없는 수꽃. Ⓒ김인철
Ⓒ김인철

우리나라 각처에서 자란다고 도감은 설명하지만, 실제로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암꽃을 보기는 더욱더 어렵습니다. 필자가 2013년과 처음 수꽃을 만난 뒤 무려 6년여를 애태우다 올여름 암꽃을 봤으니, 일 년에 한 번 이뤄진다는 견우와 직녀의 상봉보다 더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텃밭의 주인은 “흔하디흔한 호박꽃을 닮은 게 무에 그리 좋다고 멀리까지 찾아오냐.”면서 “엄지손가락만 한 열매는 아무런 소용도 없고, 넝쿨만 수북이 돌담을 휘감아 베어버리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쥐참외 또는 애기참외라고 부르는, 길이 4~5cm, 폭 3cm 정도의 작은 열매가 아직은 별 소용이 없으니 그저 유해 식물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종 다양성 보존’이란 당위성에 더해 ‘적박(赤雹)’이라고도 불리는 붉은 열매의 미래 가치 등에 대한 연구조사가 필요하다는 걸 말해줍니다. 붉게 익은 열매 안에는 길이 5mm, 폭 3mm 정도의 종자가 10개 안팎 들어 있다고 합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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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용늪에서만 피는, 비로용담!

‘북방계 습지식물의 피난처’ 용늪의 마스코트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7.22>

용담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Gentiana jamesii Hemsl.

[논객칼럼=김인철] 태풍 다나스의 한반도 상륙 하루 전인 지난 7월 19일 강원도 인제군 서흥리 대암산 용늪 자연생태학교 주차장. 낮 기온이 34도까지 오르고, 다가오는 태풍의 영향으로 오후부터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오전 8시 반까지 만나자’는 약속대로 어김없이 다섯 명의 ‘꽃쟁이’들이 모였습니다. 한 달여 전 예약을 하고, 다른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귀하디귀한 야생화 만나기를 손꼽아 기다렸으니 치솟는 수은주니 태풍 전야의 악천후쯤은 아랑곳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곳에서 주민 안내원을 만나 탐방안내소까지 다시 차량으로 이동한 뒤,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 시각은 오전 9시.

산길에 접어든 지 2~3분쯤 지났을까. “구실바위취 꽃이 아직 풍성하고 싱싱합니다.” 몇 걸음 앞선 이가 길섶의 꽃소식을 전합니다. 한 야생화 동호인 사이트 회원들로 저마다 매주 한두 차례 이상씩 전국으로 꽃 탐사에 나서는 이들과의 동행이기에 참으로 많은 야생화를 만날 것이란 기대감이 부풀어 오릅니다. 아니나 다를까. 여름 꽃의 대명사인 하늘말나리와 말나리를 비롯해 왕엉겅퀴, 숙은노루오줌, 노루오줌, 토현삼, 참나래박쥐나물, 산짚신나물, 터리풀, 단풍터리풀, 동자꽃, 눈빛승마, 큰산꼬리풀, 두메고들빼기, 물양지꽃, 단풍취, 참좁쌀풀, 꽃창포, 술패랭이, 그리고 꿩의다리아재비의 덜 익은 풀빛 열매와 딱총나무의 붉은 열매 등이 ‘매의 눈’에 포착됩니다. 심지어 이런저런 이파리에 가려진 나뭇가지를 타고 오른 덩굴줄기에 달린, 아직은 피지 않은 숱한 만삼 꽃봉오리 중에서 겨우 입을 벌린 단 한 송이를 찾아냅니다.

지난 7월 19일 강원도 대암산 용늪에서 만난 북방계 고산식물인 비로용담. 비로용담의 남한 내 유일한 자생지인 용늪이 북방계 희귀식물의 피난처임을 실감케 한다. Ⓒ김인철
Ⓒ김인철

산행 시작 2시간 만인 오전 11시. 드디어 천연기념물이자, 생태경관보전지역, 습지보호지역으로 1997년 국내 제1호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용늪에 도착합니다. 대암산(해발 1,304m) 정상 바로 밑 해발 1,280m에 위치한 용늪은 큰용늪(30,820㎡)과 작은용늪(11,500㎡)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연중 5개월 이상이 영하의 기온이고, 170일 이상 안개가 끼는 춥고 습한 날씨가 만들어낸 고층습원(高層濕原). 특유의 자연적 환경으로 남한 내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희귀 식물이 자생하는 보고. 현재 작은용늪은 복원 공사로 인해 아예 출입이 안 되고, 큰용늪만 사전 예약을 받아 최대 하루 250명까지 방문이 가능합니다.

2017년 7월 9일 백두산 수목한계선 위 고산 평원에서 만난 비로용담. 용늪에서는 습지 무성한 사초 더미 속에서 피는 데 반해, 좀참꽃과 들쭉나무 등 키 작은 고산식물 사이에서 핀다. 백두산과 대암산에 핀 비로용담은 남과 북이 하나의 식물공동체임을 말해준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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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에 동행한 주민 안내원의 바통을 이어 안내를 맡은 현지 해설사와 함께 조심스레 나무 통로를 따라 큰용늪에 들어서자, 축구장 3개 크기의 넓은 초지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꽃은 뭉게구름처럼 하얗게 핀 꿩의다리. 물론 국내 다른 산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기는 하지만, 탁 트인 고산 초원에 풍성하게 핀 꿩의다리는 백두산 해발 1,400m 지점인 왕지(王池) 초원에 핀 모습과 아주 흡사합니다. 천천히 습지 안으로 들어서자 20~30m쯤 떨어진, 제법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 안에 자잘한 꽃이 여럿 보입니다. 망원렌즈로 당겨보니 큰방울새란입니다. 그 곁에 흰색 꽃줄기가 여럿 곧추서 있습니다. 흰제비란입니다.

7월 19일 큰용늪 습지에 핀 흰제비란과 큰방울새란.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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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드디어 찾았습니다.” 갑자기, 그러나 조만간 터져 나오리라 예상했던 환호성이 들려옵니다. 그러자 “꽃에 절대 손대지 마세요. 꽃봉오리가 그냥 닫힐 수 있습니다.”라는 또 다른 이의 경고가 이어집니다.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삼복더위, 폭풍전야의 날씨를 무릅쓴 이 산행의 목표인 비로용담을 만난 것입니다. 대암사초와 산사초, 삿갓사초 등 여러 종의 사초과 식물들이 잔디처럼 촘촘히 자라는 사이사이에 숨은 보랏빛 비로용담이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7월 19일 강원도 인제군 대암산에는 노란색 참좁쌀풀과 폭죽이 터지는 듯한 모습의 꿩의다리가 만개했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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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는 용늪이 유일한 자생지인 비로용담. 높이 5~12cm에 불과한 여러해살이풀로, 7~8월 짙은 벽자색(碧紫色) 꽃을 피웁니다. 꽃 크기는 2~3cm로 식물체에 비해 비교적 큰 편입니다. 금강산 비로봉에서 처음 발견되어 그 이름을 얻었는데, 백두산 수목한계선 위 풀밭에서도 자라는 전형적인 북방계 고산식물로 꼽힙니다. 비로용담은 곧 용늪이 북방계 고산 습지식물의 피난처이자 남방한계선이라는 걸 입증합니다. 다행히 그 귀한 비로용담이 나무 통로 양편 바로 밑에 대여섯 송이나 피어 있습니다. 그 덕에 습지에 단 한 발짝도 내딛지 않고, 나무 통로에 엎드려 사진을 담습니다.

용늪 습지 안과 주변 산지에는 비로용담 외에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5개의 희귀 식물이 자생합니다. 기생꽃과 제비동자꽃, 조름나물, 닻꽃, 날개하늘나리가 그들인데 개화 시기가 맞지 않아 이번에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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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적색 꽃잎을 자랑하는, 산작약!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6.17>

학명은 Paeonia obovata Maxim. 작약과의 여러해살이풀.

[논객칼럼=김인철] 산에 들에 피는 ‘우리 꽃’을 만나러 다닌 지 십수 년. 작년에 보고 재작년에도 본 그 꽃이 무에 그리 좋다고 또다시 찾아 나서느냐는 타박을 듣기도 합니다. 스스로도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을 잊은 채 무덤덤하게 그저 기계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게 아닌가 하고 자성하기도 합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던 그런 일상 속에서 ‘헉!’ 하고 정신이 번쩍 나는 야생화를 만났습니다. 생김새가 오묘한 것도 아니고 처음 보는 희귀종도 아니건만, 뷰파인더를 통해 찬찬히 들여다보는 순간 온몸에 전기가 흐르듯 짜릿한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숨이 멎을 듯 신비롭고 환상적인 색감을 보았습니다. 산작약의 꽃잎에서 세상 어떤 명인도 대적하지 못할 듯한 적색의 색칠 솜씨를 보았습니다. 자연의 신이 선녀의 비단 치마에 붉은색 물감을 곱게 들인 듯한 환상적인 색채를 보았습니다.

적색의 황홀경을 선사하는 산작약. 줄기 끝에 원형의 꽃이 한 송이씩 달린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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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보호받는 산작약. 영월 등 강원도 몇몇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앞에서 말했듯 눈의 휘둥그레질 만큼 꽃이 예쁜 데다 귀한 약재 대접을 받고 있어 마구잡이 채취와 자생지 파괴 위기를 맞고 있는 귀한 식물입니다. 남한에서는 보기가 어려워 백두산 및 주변 지역 야생화 탐사 시 주요 관찰 대상의 하나였는데, 최근 그곳에서도 약초꾼 등의 남채로 갈수록 개체 수가 줄고 있다고 합니다.

높은 산 깊은 숲속에서 순백의 꽃을 한 송이씩 피우는 백작약. 학명은 Paeonia japonica (Makino) Miyabe & Takeda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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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의 나무 밑 그늘진 곳에서 높이 40~50cm로 자라며, 5월 하순에서 6월 초순 사이 원줄기 끝에 지름 4~5cm인 원형의 꽃이 딱 한 송이 달립니다. 5~7장의 붉은 색 꽃잎은 오전 11시 전후로 살짝 벌어집니다. 외설적이며 헤퍼 보일 수 있음을 의식한 탓인지, 중앙의 홍색 암술머리와 황금색 수술을 들여다볼 수 정도만 벌어집니다.

북방계 식물로 강원 이북에서 주로 자라는 산작약과 달리, 백작약은 전국의 높은 산에 폭넓게 자생합니다. 꽃 색이 희고 꽃자루가 짧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산작약과 대체로 비슷한데, 역시 단아하고 고상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과 약재로 귀하게 쓰이는 뿌리의 효능 때문에 약초꾼 등의 무분별한 채취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꽃은 산작약보다 한 달 정도 빠른 4~5월에 핍니다.

50여 년 만에 다시 그 존재를 알린 참작약. 학명 Paeonia lactiflora var. trichocarpa (Bunge) Stern Ⓒ김인철
Ⓒ김인철

우리나라의 산에서 자생하는 ‘작약’은 산작약과 백작약 외에 참작약이 있어 모두 3종입니다. 참작약이 지금은 삼척과 울진, 포항은 물론 강화 등지에서도 발견되고 있지만, 2006년까지만 해도 아예 존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1909년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에 의해 함북 무산령에서 처음 채집된 뒤 중부 이북에서 드물게 발견되다가, 1954년 광릉에서 1개체가 채집된 이후 생육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다 2006년 경북 포항에서 한 주민의 제보로 1000여 개체가 자생하는 1㏊의 생육지가 확인돼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산작약만큼 희귀하고 백작약만큼 단아한 백색의 꽃을 자랑하는 참작약 역시 그 뿌리가 귀한 약재로 쓰입니다.

화단 등지에서 흔히 만나는 원예종 작약.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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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산작약보다 다소 늦은 5~6월에 피는데, 원줄기 끝에 한 송이씩 피는 산작약이나 백작약과 달리 한 송이에서부터 많게는 5~6송이까지 여러 송이가 풍성하게 달립니다. 꽃잎도 10장 내외로 많은 데다 크기도 크고 탐스럽습니다. 특히 씨방과 열매에 털이 많은 것이 특징이며, 약재로 쓰이는 뿌리가 적색이어서 적작약(赤芍藥)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반면에 산작약과 백작약은 뿌리가 흰색이어서 약재로는 둘 다 백작약(白芍藥)으로 불립니다.

화단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약은 관상용 원예종으로, 희거나 붉거나 연분홍의 꽃이 대개 겹꽃으로 핍니다. 비슷한 형태의 꽃이 달리는 식물로 나무인 모란이 따로 있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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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남획, 산불 이겨내고 꽃 피운, 복주머니란!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5.17>

학명은 Cypripedium macranthos Swartz.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논객칼럼=김인철] 토요일이던 지난 5월 11일 이른 아침, 부푼 기대감 속에 산을 올랐습니다. ‘작년 이맘때는 만개했었는데, 오늘은 어떨까? 식구가 얼마나 늘었을까?’ 정상 부근에 군 훈련장이 있어 평일에는 입산이 금지되고 주말에만 등산이 허용되는 산. 그런 통제 덕택에 귀한 야생화가 나름대로 잘 보존되고 있는 명성산. 1년을 기다렸다 부리나케 달려와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지만, 곧 만날 꽃을 생각하며 힘차게 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런데 산등성이에 오른 순간, 아뿔싸!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오르는 내내 만나기를 고대했던 야생화의 자생지를 포함한 정상 한쪽이 시커멓게 타버린 것입니다. 얼마 전 산불이 강원도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다더니….

며칠 뒤 낙담한 필자를 위로하려는 ‘꽃동무’의 배려로 강원도의 한 산을 찾았습니다. ‘몇 해 전 온종일 찾아 헤맨 끝에 겨우 알게 된 자생지인데,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않았기에 아마도 잘 보존되어 있을 것’이라는 게 꽃동무의 장담. 하지만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안색이 어두워집니다. 산길 곳곳에 간벌(間伐)을 한 때문인지, 나무들이 쓰러져 있습니다. 좀 더 오르자 중간에 차가 다니는 임도가 나 있고 중간 중간 베어진 나무가 수십 개씩 쌓여 있습니다. 새로이 조림을 하려는 것이든 뭐든, 그곳에도 ‘개발의 손길’이 스며든 것입니다. 처음에는 혹여 나물꾼들이 먼저 보고 파 가지 않았을까 우려했는데, 점점 간벌 또는 조림 작업 중 자생지가 아예 훼손되지 않았을까 걱정이 커집니다.

“와! 이것 봐요, 작년에 4개가 피었었는데, 식구가 여섯으로 늘었어요. 그리고 올해 꽃을 피우지 않은 새싹도 2개나 됩니다.”

꽃동무가 환호성을 지릅니다. 그렇게 만난 복주머니란입니다.

2019년 5월 중순 강원도 한 산에서 만난 복주머니란 군락. 깊어가는 연초록 봄 화창한 햇살 아래 연한 홍자색 복주머니란 6송이가 꽃대마다 금은보화가 가득 담긴 붉은색 ‘복주머니’ 하나씩을 달고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김인철

Ⓒ김인철

깟 꽃이 무에 그리 대단하다고 요란을 떠느냐는 이도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또는 “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본다”고 한 시인들의 절창과 함께 삶이 농익는 날 꽃 한 송이에 담긴 함의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갈수록 자연환경이 훼손되는 데다 사람의 눈길을 끌 만하면 손을 타기 십상이어서, 거의 모든 야생화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는 요즈음입니다. 이에 환경부는 특히 멸종 위기를 맞고 있는 식물을 골라 11종을 1급으로, 77종을 2급으로 지정, 특별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복주머니란도 바로 2급 77종의 하나로 개발과 남획, 그리고 예기치 않은 산불 등의 위협을 받고 있는 희귀 야생화입니다.

2018년 5월 경기도 포천의 명성산에서 만난 복주머니란. 2019년에는 자생지가 불에 타는 바람에 싹도 틔우지 못했다. Ⓒ김인철

Ⓒ김인철

다른 야생화에 비해 꽃의 크기도 큰 데다 아주 먼 데서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연한 홍자색 색상이 화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학명 중 속명 시프리페디움(Cypripedium)은 미의 여신인 ‘비너스’를 의미하는 시프리스(cypris)와 ‘슬리퍼’라는 뜻의 페딜론(pedilon)의 합성어인데, 항아리 또는 주머니 모양의 꽃잎이 마치 미의 여신 비너스가 신는 신발처럼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영어 이름은 라틴어 학명과 같은 의미의 ‘숙녀의 슬리퍼’(Lady's slipper)입니다.

2017년 5월 경북 보현산에서 만난 복주머니란. 단 한 송이에 불과하지만 온 숲을 밝힐 듯 환하게 피어 있다. 2018년 극심했던 가뭄 때문인지 싹은 나왔지만, 꽃을 피우지는 못했다. Ⓒ김인철

Ⓒ김인철

우리말 이름으로는 복주머니꽃·복주머니·요강꽃·까치오줌통·오종개꽃·작란화 등 그 가짓수가 제법 많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최근까지 가장 흔하게 불렀던 이름은 개불알꽃, 또는 개불알란이었습니다. 타원형으로 길게 늘어진 아래쪽 순판이 굳이 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아하 맞다’ 하고 고개를 끄떡일 만합니다.

높이 30cm 안팎까지 곧추선 줄기 끝에, 5cm 안팎의 꽃을 피우는 복주머니란. 커다란 주머니처럼 생긴 입술꽃잎의 모양에서 그 이름이 지어졌다. Ⓒ김인철

Ⓒ김인철

각종 도감에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 야생에서 자생하는 복주머니란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색이나 모양이 너무도 화려하고 예쁜 탓에 보이는 대로 남획 당해 자생지가 파괴되고 있다는 뜻인데, 결국 2012년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됐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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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봄 숲속의 여왕, 얼레지

‘피겨 여왕’ 김연아 뺨치는 S라인의 발레리나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4.17>

학명은 Erythronium japonicum (Balrer) Decne.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논객칼럼=김인철] 어느덧 4월 중순. 봄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꽃보다 예쁜 새순이 돋으며 숲은 연두색으로 물들어갑니다. 꽃도 좋지만, 싱그러운 새순과 새 이파리가 만드는 아련한 봄의 정취가 더 좋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즈음, 지난 가을 떨어진 갈잎이 켜켜이 쌓이고 그 위에 겨우내 눈이 덮여 있어 비옥하기 이를 데 없는 산기슭에선 홍색의 봄꽃이 너도나도 늘씬한 미모를 뽐냅니다. 누구는 S라인의 팔등신 미녀 같다고 하고, 누구는 날렵한 셔틀콕이 연상된다고 합니다. 한두 송이가 아니라 수백에서 수천, 많으면 수만 송이의 붉은 꽃이 발아래 가득 피어나니, 산중은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라 이를 만합니다.

신록의 봄 전국의 산기슭을 ‘천상의 화원’으로 만드는 얼레지 군락의 개화 모습. 3월부터 5월까지 전국에서 핀다. Ⓒ김인철
Ⓒ김인철

보통 꽃 한 송이에 두 장의 이파리가 달리는데, 짙은 녹색의 이파리에 얼룩덜룩한 자갈색 무늬가 있어 얼레지란 이름을 얻었다는 백합과의 꽃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25cm 안팎의 꽃대 끝에 아이 주먹만 한 꽃이 한 송이씩 달립니다. 그런데 길이 5~6㎝, 폭 5~10mm의 꽃잎 6장이 마치 올림머리를 하듯 뒤로 둘둘 말려 있습니다. 그 꽃 모양이 ‘피겨 여왕’ 김연아의 비엘만 스핀처럼 날렵하고 우아합니다. ‘춤추는 숲속의 발레리나’를 보는 듯도 합니다. 붉은색 무용복을 차려입은 수백, 수천 발레리나들의 군무라니, 그 얼마나 환상적일까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하지만 6장의 꽃잎이 뒤로 완전히 젖혀지는 모습을 보려면 햇살이 충분히 드는 정오 무렵이 되어야 합니다. 밤사이 오므라들었던 꽃잎이 다시 열리려면 충분히 볕을 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백마 탄 왕자’인 양 위풍당당한 흰얼레지. 꽃 색만 다를 뿐이지만 별도의 학명(Erythronium japonicum for. album T.B.Lee.)을 가진 별도의 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김인철
Ⓒ김인철

그런데 남녀노소 서슴없이 좋아하고 가까이 다가서는 꽃이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식물의 생식기관입니다. 그 안에 수술과 암술이 있고, 벌·나비 등을 불러들여 가루받이를 하고 생명의 씨를 잉태해 종족 보존의 숭고한 의무를 수행합니다. 얼레지 꽃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뒤로 젖혀진 꽃 가운데 6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밤새 꽃잎을 오므린 채 수줍은 표정을 짓다가 어느 순간 모든 걸 다 내주겠다는 듯 속살을 활짝 열어 보이니, 그 반전이 순박한 산골 소녀에서 도시 처녀로의 변신인 양 신기하기조차 합니다. 게다가 꽃 가운데 W자 모양으로 아로새겨진 보라색 무늬가 멀리서도 선명합니다, 가루받이를 도울 벌·나비를 유인하기 위해 일종의 ‘길라잡이용 문신’을 한 셈인데, 그 적극적인 구애의 속내를 생각하면 빙그레 웃음이 나옵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질투’ 또는 ‘바람난 여인’이라는 얼레지의 꽃말이 참으로 그럴싸합니다. 얼레지의 영어 이름이 ‘도그투스 바이올렛(Dogtooth Violet)’인데 W자 형태의 무늬에서 연유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서양인들에겐 이 무늬가 송곳니처럼 보였나 봅니다.

W자 모양의 무늬와 길이가 다른 6개의 수술, 3갈래로 갈라진 암술머리가 고스란히 드러난 얼레지 꽃. 2019년 4월 15일 경기도 용문산에서 만났다. 잦은 봄눈과 꽃샘추위 때문인지 고지대는 여전히 얼어 있고, 저지대 숲에서만 겨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래 사진은 경북 포항의 바닷가 야산에서 2017년 3월 17일 담았다. 곳에 따라 기후에 따라 꽃 피는 시기가 한 달 가까이 차이가 나는 걸 알 수 있다. Ⓒ김인철
Ⓒ김인철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 얼레지 또한 쉽게 피지 않습니다. 모든 걸 다 내주듯 꽃잎을 활짝 열고 갖은 수단을 동원해 곤충을 유혹하여 맺은 씨가 땅에 떨어져 싹이 튼다고 해도, 무려 5~6년이 지나야만 꽃대를 올리고 개화할 수 있습니다. 대여섯 번의 겨울과 여름을 겪어야만, 그만큼의 천둥과 번개, 태풍 등 인고의 세월을 감내해야만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쏟아진 봄눈에 갇힌 얼레지. 일정 온도 이상 올라가야 꽃잎이 벌어지는 특성상 눈이 녹은 곳의 얼레지만 겨우 개화했다. Ⓒ김인철
Ⓒ김인철

이르면 3월부터 늦게는 5월까지 전국 곳곳의 명산이 얼레지 꽃으로 붉게 물들 만큼 자생지도 넓고 개체 수가 풍성합니다. 수도권에서도 화야산을 필두로 광덕산, 천마산, 화악산, 운길산, 용문산, 유명산 등 여러 산이 서울서 가까운 얼레지 꽃동산으로 꼽힙니다. 전국에 분포한다고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단 한 포기도 자라지 않습니다. 그곳의 야생화 애호가들은 얼레지를 보려면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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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봄’을 알리는 변산바람꽃!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2.14>

여기저기서 화신(花信)이 들려옵니다. 제주에선 이미 1월에 매화가 피고, 수선화가 피고, 백서향이 순백의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남녘의 유명 사찰과 섬진강변에서도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봄꽃의 대명사인 복수초가 이 골짝 저 골짝에서 황금색 꽃잎을 열어젖히고 있다고 합니다. 입춘(立春)이 지난 지 어느덧 열흘 가까이 지났으니 어쩌면 당연한 절차겠지만, 서울 등 중부지방은 여전히 한파 속에 있으니 피부에 와 닿지 않습니다. 전해오는 화신에 안달이 난다면 “여기는 아직 멀었는데…”라며 한탄할 게 아니라 ‘김인철의 들꽃여행’을 따라 길을 나서면 됩니다. 다만 무턱대고 나선다고 봄꽃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어디서 어떤 꽃이 피는지를 알고 떠나야 허탕 치지 않습니다. 2019년 2월 찾아 나서는 첫 봄꽃은 바로 변산바람꽃입니다.

‘여수 밤바다’의 끄트머리 금오산 자락에 핀 변산바람꽃. 아직 겨울이 한창인 2월 초순부터 앞다퉈 꽃망울을 터뜨리는 자생지로 유명하다. 꽃은 꽃잎처럼 보이는 흰색의 둥근 꽃받침 잎, 깔때기 모양의 녹황색 꽃잎, 반짝이는 청보라색 수술과 연두색 암술로 이뤄졌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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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덩이처럼 둥근 변산바람꽃이 분명 2월 초순부터 피긴 피는데, 그곳이 경기·강원 등 중부지역은 아닙니다. 눈과 얼음투성이인 산과 계곡에서 꽃이 필 리 없다는 통념을 뛰어넘을 순 없고, 멀리 남쪽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울산입니다. 동쪽 바다에서 2km 남짓 떨어진 북구 어물동의 야트막한 산기슭이 국내에서 ‘상냥하고 복스러운 울산 큰애기’를 닮은 변산바람꽃이 가장 먼저 피는 자생지의 하나입니다. 올해도 이미 2월 8일 어물동 황토전부락 야산에서 ‘봄의 전령사’ 변산바람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여러 뉴스미디어에 보도된 바 있습니다.

또 다른 초기 개화지인 울산 북구 어물동 야산에 핀 변산바람꽃. 역시 2월에 꽃이 피는데 올해도 2월 8일 꽃 핀 사진이 여러 뉴스미디어에 보도됐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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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금오산 역시 변산바람꽃이 일찍 개화하기로 널리 알려진 자생지입니다. 국내 4대 해수 관음도량의 하나인 향일암이 있는 금오산, 남해를 품에 안을 듯 굽어보는 돌산 기슭이 해마다 2~3월 변산바람꽃이 바닥을 덮을 듯 하얗게 군락을 지어 피는 명소로서 야생화 애호가들의 발길이 줄을 잇습니다.

겨울이 채 물러나기 전 피기에, 종종 눈을 뒤집어쓴 ‘설중(雪中) 변산바람꽃’이 카메라에 담기기도 한다. 위는 경기도 안양에서, 아래는 경북 경주에서 지난해 3월 각각 담았다. ⓒ김인철
ⓒ김인철

1993년 전북대 선병윤 교수가 변산반도 내변산에서 채집된 표본을 근거로 한국 특산종으로 발표하면서 학계에 알려진 변산바람꽃. 학명에 첫 발견지인 변산(byunsanensis)이 속명으로 들어갔고, 선 교수도 발견자로 그 이름(B.Y.Sun)이 표기됐습니다. 그런데 최초 발견지가 변산일 뿐, 이후 바다 건너 제주는 물론 전남 여수와 고흥, 경남 고성, 울산에서부터 북으로 경기 연천과 강원 설악산까지 자생지가 전국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라는 초기의 발표와 달리 일본에도 같은 종이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작고 가냘프지만, 당당한 모습의 변산바람꽃. 앞에서 보면 흰색의 꽃이지만, 뒤에서 보면 연한 홍색이 도는 게 여간 깜찍하지 않다. ⓒ김인철
ⓒ김인철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을 포함한 전체 길이는 10~30cm 정도. 줄기의 굵기도 콩나물의 절반 정도에 불과할 만큼 가냘픕니다. 꽃대마다 달덩이처럼 희고 둥그런 꽃이 한 송이씩 달립니다. 지역에 따라 이르면 2월부터 늦게는 4월까지 북풍한설이 주춤하는 사이 잠깐 피었다가 이름대로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흰색의 꽃잎처럼 보이는 5~7장의 둥근 잎이 사실은 꽃받침 잎입니다. 깔때기 모양의 자잘한 녹황색 꽃잎(4~11개)을 대신해 수분을 도와줄 벌·나비를 불러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3월 경기도 연천 지장산에서 만난 변산바람꽃. 남으로 바다 건너 제주에서부터, 북으로 접경지역까지 폭넓게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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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2월이면 여수와 울산, 그리고 부안군 상서면 청림마을 등 처음 표본이 채집됐다는 내변산 일대에서 피기 시작하는 변산바람꽃은 3월 봄이 무르익어 가면서 충남 보령의 배재산과 가야산, 경기도 안양의 수리산 등지로 북상합니다. 특히 가평 명지산과 연천의 지장산 등 봄이 더디 오는 경기·강원 북부 산과 계곡에서는 남녘보다 한 달 이상 늦게까지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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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눈이 빚는 신비의 꽃, ‘설중화(雪中花)’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1.15>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던가요. ‘꿈은 이루어진다’고도 합니다. 삶의 지혜, 내지는 교훈을 담은 이런 경구가 야생화 세계에도 그대로 통용된다고 할까. 눈 속에서 피는 꽃 ‘설중화(雪中花)’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너무도 간절한 때문인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가끔 기적처럼 일어나곤 합니다. 흰 눈이 가득 쌓인 계곡에서 복수초가 노란색 꽃잎을 활짝 여는가 하면, 너도바람꽃이 꽝꽝 언 빙판 사이로 가냘픈 꽃대를 밀어 올려 하얀 꽃을 피웁니다. 일정한 온도 이상으로 기온이 올라야만 꽃을 피우는 식물의 특성상 얼음이 얼고 눈이 쌓여 기온이 낮으면 꽃잎이 벌어지는 일이 있을 수 없지만, 현실에선 간간이 그런 일이 일어나고 일부 애호가들은 그런 진기한 광경을 사진에 담는 행운에 환호작약합니다.

낙엽 활엽 반기생 관목인 꼬리겨우살이의 샛노란 열매와 휘날리는 눈발이 꽃보다 멋진 한 폭의 수묵담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학명은 Loranthus tanakae Franch. & Sav.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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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의 초입이었던 2018년 12월 초순 파란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노랗게 익어가는 꼬리겨우살이의 영롱한 열매를 보기 위해 강원도 영월의 한 산을 찾았습니다. 상록수인 다른 겨우살이와 달리 낙엽 활엽 관목인 꼬리겨우살이는 겨울이면 잎이 지고 샛노란 열매만 주렁주렁 달리는데, 태백산과 소백산 등 일부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희귀종입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포장 임도에 밤새 내린 눈이 언 채 쌓여 있습니다. 어쩔까 주저하는데, 동행한 꽃 동무가 서슴지 않고 앞장섭니다. 이왕 나선 길, 차 운행을 포기하고 걸어가자는 거지요. 한 시간여쯤 오르니 이번엔 눈이 내립니다. 날은 차고 사위는 막막한데, 그런 겨울의 악천후가 꽃보다 더 예쁜 ‘설중화’를 선사합니다. 눈발은 거칠게 휘날리고 꼬리겨우살이의 열매는 파스텔 톤의 노란색 수를 놓는, 멋진 수묵담채화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흰 눈을 뒤집어쓴 채 환상적인 ‘설중화(雪中花)’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처녀치마. 학명은 Heloniopsis koreana Fuse, N.S.Lee & M.N.Tamura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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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초. 봄의 시작인 3월도 지나 봄기운이 완연하니 가뜩이나 이상고온으로 천방지축 두서없이 피어나던 봄꽃들이 저마다 꽃잎을 활짝 열고 화사한 봄날의 환희를 노래합니다. 그런 시기에 때늦은 폭설이 내리자 강원도 횡성의 청태산에 많은 야생화 애호가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만개한 모데미풀과 처녀치마가 흰 눈에 갇혀서 그려내는 설중화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눈 폭탄에 온몸에 멍이 들었을 봄꽃들의 아픔을 안타까워하기는커녕 난데없는 횡재에 마냥 즐거워했던 철부지 행동이, 이제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워집니다.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기온 탓에 ‘얼음꽃’이 되어 버린 한계령풀. 학명은 Leontice microrhyncha S.Moore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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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며칠 전에는 강원도 태백산에서 설중화 수준을 지나, 아예 ‘얼음꽃(빙화·氷花)’이 된 한계령풀을 보았습니다. 한계령풀의 꽃과 잎을 감쌌던 새벽이슬은 물론 주변 나뭇가지에 내린 서리가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기온 탓에 차갑게 얼어붙으면서, 숲 전체가 동토의 왕국처럼 하얗게 변해버린 진기한 광경을 경험했습니다.

겨울에서 봄까지 긴 기간 피면서 설중화의 대표적인 모델이 되는 복수초. 학명은 Adonis amurensis Regel & Radde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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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중화를 쫓다보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짚신장사와 우산장사를 둔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창과 방패의 모순도 생각나지요. 늘 눈 속에 꽃이 활짝 핀 환상적인 장면을 찾지만, 현장에 도착하면 언제나 비슷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눈이 쏟아졌으니 꽃들은 당연히 눈 속에 파묻혀 흔적조차 찾기 쉽지 않습니다. 어찌어찌해서 찾는다 해도 눈이 내릴 만큼 기온이 차니 꽃잎을 제대로 연 꽃을 만나기가 어렵지요. 다행히 해가 나고 꽃봉오리가 눈 위로 올라와 벌어지려고 하면, 이번엔 눈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결국 그럴듯한 설중화는, 꽃잎은 열렸으되 눈은 채 녹지 않은 찰나의 순간에 포착되는, 그런 자연의 선물입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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