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논객닷컴-들꽃여행'에 해당되는 글 58건

  1. 2018.01.20 들꽃여행-8-동백꽃
  2. 2017.12.13 들꽃여행-7-겨우살이
  3. 2017.11.15 들꽃여행-6-좀바위솔
  4. 2017.11.09 들꽃여행-5-구절초
  5. 2017.09.17 들꽃여행-4-금강초롱꽃
  6. 2017.09.01 들꽃여행-3-야생화의 천국,가야산
  7. 2017.07.18 들꽃여행-2-백두산의 우리 꽃
  8. 2017.06.30 들꽃여행-1-순채

목 놓아 울던 청춘의 피꽃, 동백꽃

툭 떨어져 ‘대중의 꽃’으로 다시 피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1.12>


차(茶)나무과의 상록 활엽 소교목으로 학명은 Camellia japonica L.

[논객닷컴=김인철] 한파 경보까지 발령되는 등 맹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립니다. 땅도 얼고 강도 얼고 호수도 얼어붙으니, 산도 얼고 나무도 얼어 모든 생명의 맥박이 멈출 듯싶은 한겨울입니다. 이런 와중에 늘 푸른 이파리를 풍성하게 간직한 채 사이사이 진홍색의 꽃망울을 터뜨리니, 가히 ‘겨울왕국의 프리마돈나’라 일컬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한겨울에도 잣나무나 측백(側柏)나무처럼 잎이 푸르다고 해서 ‘동백(冬柏)’, 또는 ‘동백(棟柏)’이란 한자어가 이름의 앞머리에 붙는 동백나무가 장본인입니다.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茶山草堂) 옆 작은 못에 핀 동백꽃. “나그네 근심 덜 일 하나 있으니/ 산다(山茶·동백나무)가 설 전에 벌써 꽃을 피웠네.(다산의 ‘객중서회(客中書懷)’에서)” 유배 온 다산이 바라보며 타향살이의 근심 하나를 덜었다는 동백꽃이 바로 저 꽃이었을까 궁금하다. ©김인철

학명의 종명에 일본을 뜻하는 ‘자포니카(japonica)’가 쓰일 만큼 일본 전역이 주요 원산지인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와 중국, 타이완에서도 폭넓게 자생하는, 동아시아의 대표 식물이라는 게 식물학자들의 설명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제주도를 비롯해 오동도와 거문도 등 남해 섬과, 동해의 울릉도, 서해의 대청도와 백령도에 이르기까지 섬 지역에 널리 자생합니다.

©김인철

뭍에서는 고창 선운사와 강진 백련사, 충남 서천의 마량 동백나무숲 등이 동백나무 군락지로 유명합니다. 이름난 군락지는 아니어도 충청 이남의 웬만한 산사(山寺) 주변에 동백나무가 무리 지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로부터 방화림(防火林)에 적합한 상록활엽수로서 활용됐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11월 하순 꽃망울을 터뜨린 부산 해운대 동백섬의 동백나무.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으로 시작하는 불후의 명곡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가사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김인철

흰 눈이 쌓인 푸른 이파리 사이로 붉게 핀 ‘겨울 꽃’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동백꽃이 피기 시작하는 건 늦가을부터입니다. 지난해 11월 하순 만개한 둥근바위솔을 만나러 부산 해운대 동백섬에 갔다가 혹시나 하고 고개를 들곤 여기저기서 꽃망울을 터뜨린 동백꽃을 제법 여럿 보았습니다. 덕분에 1972년에 발표돼 지금까지 국민가요의 하나로 꼽히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첫 대목인 ‘꽃 피는 동백섬’을 눈으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 올레길에서 만난 동백꽃.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국민가요’란 말이 결코 과하지 않은 ‘동백 아가씨’의 노랫말대로 금지곡 지정으로 가수 이미자는 물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울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야만의 세월’이었을 뿐이다. ©김인철

참 일찍이 청마 유치환이 시 ‘동백꽃’에서 노래했듯 ‘목 놓아 울던 청춘의 피꽃’으로 피었다가 절정의 순간 통째로 미련 없이 툭 지는 처연한 특성 때문일까, 동백꽃은 고답적인 문학작품뿐 아니라 대중문화에서도 크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1964년 발표돼 무려 35주 동안이나 가요 순위 1위를 차지했던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그런데 이 노래가 왜색풍(倭色風)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간이나 금지곡으로 지정됐었는데, 일본만이 동백나무의 자생지라고 오해한 무지가 빚은 폭정의 과거사를 보는 듯해 헛웃음이 나옵니다. 동백꽃은 이후 송창식의 ‘선운사 동백꽃’이 되어, 정태춘의 ‘선운사 동백꽃이 하 좋다기에’가 되어 다시 또 대중의 사랑을 받습니다.

©김인철

동백꽃의 통속적 이미지는 서양인들에게도 비슷하게 느껴졌던 듯싶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1848년 ‘동백 아가씨(La Dame aux Camelias)’란 제목의 연애소설을 발표해 큰 인기를 얻고, 이를 토대로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가 1855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를 작곡해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요즘도 국내서 종종 일본식 한자 표기인 ‘춘희(椿姬)’란 이름으로 무대에 오르는 바로 그 오페라입니다.

제주도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앞마당에 피어 있는 흰 동백꽃. 한라산에 자생하는 동백나무의 씨를 받아다 키웠다고 한다. ©김인철

한겨울 눈물처럼 지는 동백꽃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은 아마 제주도일 것입니다. 몇 해 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끈 올레길이 한겨울 동백꽃을 완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코스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의 숲과 골짜기, 마을과 골목길을 찬찬히 걷다 보면 키 10m 넘는 자생 동백나무는 물론, 수십 수백 그루가 숲을 이룬 군락, 나지막한 현무암 담장 위에 올라앉은 분재형 동백나무 등 다양한 형태의 동백나무와 붉은 꽃송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앞마당에선 한라산에 자생하는 동백나무의 씨를 받아다 키웠다는, 단아하고 기품 있는 흰 동백꽃도 볼 수 있습니다.

눈물처럼 후드득 통째로 떨어진 둥백꽃. 절정의 순간 툭 떨어져 바닥에 가득 쌓이는 때문일까, 흔히 동백은 나무에서 한 번, 땅에서 다시 한 번 꽃을 피운다고 한다. ©김인철

동백나무는 대표적인 조매화(鳥媒花)입니다. 벌·나비가 거의 없는 늦가을부터 이른 봄 사이 꽃이 피기에, 곤충보다는 새들에 의지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것이지요. 특히 새는 사람의 눈처럼 붉은색을 붉게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새들도 붉은색을 자극적으로 받아들이는데, 동백꽃은 이런 새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해 붉게 더 붉게 타오른다고 합니다. 동박새는 동백나무의 농밀한 꿀을 빨면서 꽃가루받이를 돕는 새들의 하나인데, 그 이름도 동백나무에서 따왔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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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야청청(獨也靑靑) 겨우살이!

한겨울 황금빛 열매를 잉태하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12.07>

겨우살이과의 상록 활엽 관목. 학명은 Viscum album var. coloratum (Kom.) Ohwi.

삶이 고단한 그대여 하루하루
겨우 산다고 말하지 마라
나목 앙상한
참나무가지 끝에 매달려
혹독한 겨울밤 의연히
지새는 겨우살이를 보라 (원영래의 시 ‘겨우살이’에서)

12월로 접어들자 순식간에 바람의 결이 달라졌습니다. 어느 순간 바람에 날이 서고, 그 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가 옷깃 속으로 파고듭니다. 아,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걸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더니, 울긋불긋 물들었던 단풍이 낙엽이 되어 땅 위에 나뒹구는 시절이 되니 과연 늘 푸른 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소나무, 잣나무, 측백나무, 동백나무, 사철나무 등등. 그리고 소나무나 잣나무와 같은 침엽수인 일본잎갈나무가 왜 낙엽송(落葉松)이라 불리는지도, 뾰족한 잎이 갈색으로 변했다가 땅으로 떨어지고 나니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바로 이런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 등 상록수에 못지않게 그 존재감이 드러나는 또 다른 식물이 있습니다. 겨우살이입니다.

화려했던 단풍이 지고 난 뒤 앙상한 가지 사이에 보석처럼 빛나는 노란색 열매를 치렁치렁 달고 나타난 꼬리겨우살이. 상록수인 다른 겨우살이와 달리 낙엽 활엽 관목의 희귀종이다. ©김인철
©김인철

‘껍데기는 가라’던 시인 신동엽의 외침에 호응하듯 무성하던 이파리가 우수수 지고 난 뒤 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튼 겨우살이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냅니다. 물론 이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니라 늘 푸른 잎과 줄기, 그리고 연노랗거나 붉은 열매입니다. 칼바람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치열한 꿈을 간직한 겨우살이가 미래를 위해 잉태한 황금빛 찬란한 열매입니다. 봄이 한창인 4월경 가지 끝에 노랗게 피는 겨우살이의 꽃은 작을뿐더러, 숙주인 큰 나무의 이파리에 가려 거의 눈길을 끌지 못합니다.

방사상으로 뻗은 숱한 가지와 무성한 잎, 그리고 풍성하게 달린 연노랑 열매. 멀리서 보면 까치집을 닮은 겨우살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김인철

모든 풀·나무가 동면(冬眠)하는 겨울에도 푸르고 싱싱하게 살아 있다고 해서 겨울+살이>겨우살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다른 나무에 기생해 겨우겨우 살아간다는 뜻도 담겼다고 합니다. 스스로 광합성을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해 다른 나무에 뿌리를 박고 흡기(吸器)라는 기관을 통해 물이나 영양분을 공급받는 반기생식물. 땅까지 뿌리를 내려 보지 못한 채 평생 공중에 떠서 사는 가련한 식물입니다. 하지만 한겨울 저 홀로 푸르른 특성으로 인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등의 능력을 갖춘 영초(靈草)라 불리며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 돼 왔습니다.

숙주인 참나무의 무성한 푸른 이파리에 둘러싸여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겨우살이. 한여름인 8월 중순 경기도 국립수목원에서 담았다. ©김인철

겨우살이의 번식은 새를 통해 이뤄집니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 높은 나뭇가지에 가득 달린 겨우살이 열매는 새들에겐 최상의 먹잇감입니다. 그런데 그 열매엔 끈적끈적한 점액이 가득 담겨있어 새들이 열매를 먹을 때 한사코 부리에 달라붙습니다. 결국, 새들은 점액을 다른 나무에 비벼서 닦게 되는데, 이때 끈끈한 점액에 묻어 있던 씨앗이 나무껍질에 달라붙어 새로운 싹을 틔우는 것이지요.

눈 내리고 강풍이 불어 나뭇가지에 눈이 쌓이고 얼음이 어는 와중에도 겨우살이는 겨우 산다고 투덜대지 않고 연노랑 열매를 가슴에 품고 있다. ©김인철

국내에 자생하는 겨우살이는 모두 5종.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겨우살이는 한겨울 참나무나 밤나무, 팽나무, 물오리나무 등의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까치집 모양으로 등장합니다. 열매는 연노란색입니다. 반면 붉은겨우살이는 이름 그대로 붉은색 열매가 돋보이는데, 눈 덮인 한라산과 내장산, 덕유산 등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진홍색, 또는 황적색 열매가 한눈에도 겨우살이나 꼬리겨우살이 열매와 차이가 드러나 보이는 붉은겨우살이. 진홍색 열매는 한라산 중턱에서 담았는데, 내륙의 같은 붉은겨우살이 황적색 열매와도 비교가 된다. ©김인철
©김인철

상록수인 겨우살이와 달리 꼬리겨우살이는 낙엽 활엽 관목으로, 겨울이면 잎이 지고 샛노란 열매만 주렁주렁 달립니다. 태백산과 구룡령, 소백산 등지에서만 자라는 희귀종입니다. 가는 줄기가 모여 작은 선인장 모양을 한 동백겨우살이는 숙주인 동백나무가 자생하는 남쪽 바닷가와 섬, 제주도에서 볼 수 있고, 참나무겨우살이는 동백나무나 후박나무 등 제주도 서귀포 일대 상록수에 주로 기생합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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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산홍엽 속 오뚝 선 작은 거인, 좀바위솔

장엄하게 물드는 가을 풍경화에 화룡점정(畵龍點睛) 하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11.08>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Orostachys minutus (Komar.) A. Berger.

[논객닷컴=김인철] 온 산을 가득 채운 풀·나무들이 아낌없이 마지막 선물을 내놓습니다. 눈 녹고 얼음이 풀리자 새싹과 새순을 돋아내며 봄에서 여름을 거쳐 가을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감싸 안았던 풀·나무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이파리를 떨구기 전 울긋불긋 물들며 황홀한 만추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이지요.

달력의 절기로 9월부터 11월까지를 가을이라 일컫습니다. 그러니 11월 중순으로 접어드는 지금부터는 만추(晩秋)를 절감하며 빠르게 가는 세월 앞에 연신 한숨만 내쉬어야 할 터이지만, 불과 수일 전 만산홍엽의 숲에서 있었던 좀바위솔과의 환상적인 만남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으니 올가을은 아주 오랫동안 곁에 머물러 있을 성싶습니다.

속살까지 울긋불긋 물든 가을 숲에서 집채만 한 바위 겉에 엄지손가락만 한 꽃대를 곧추세운 채 연분홍 또는 순백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좀바위솔 군락. ©김인철

가을, 그중에서도 초입인 9월부터 10월 말까지 경기·강원·충북·경북 등 꽤 넓은 지역에서 꽤 많은 개체가 꽃을 피우는 좀바위솔. 산이나 계곡의 바위 겉에 붙어서 자라며, 잎이 가늘고 끝이 뾰족한 게 막 싹이 튼 어린 소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통칭 바위솔이라 불리는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의 한 종(種)입니다.

꽃잎 5장과 수술 10개의 꽃이 이삭 형태로 다닥다닥 붙은, 좀바위솔의 앙증맞은 이삭꽃차례. ©김인철
©김인철

바위솔은 오래된 기와지붕 위에서도 자란다고 하여 와송(瓦松)이란 그럴싸한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대표 종인 바위솔을 비롯해 정선바위솔·연화바위솔·포천바위솔·진주바위솔·둥근바위솔·가지바위솔·울릉연화바위솔·난쟁이바위솔 등 모두 10여 종이 국내에 자생합니다.

옥색의 강물과 짙푸른 가을 하늘, 형형색색의 단풍과 어우러져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그려냈던 한탄강 변의 좀바위솔 군락. 암에 효과가 있다는 말이 번지면서 무분별한 채취로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 됐다. ©김인철

바위솔은 보통 30cm까지 자라지만 좀바위솔은 잎과 줄기, 꽃까지 다 합해도 전초가 15cm 이하로 작아서 ‘좀’이란 접두어가 붙었습니다. ‘좀스럽다’거나 ‘좀팽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인간사에선 ‘좀’ 자가 그냥 작은 것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얕잡아 보고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단 한 송이만으로도 세상을 호령할 듯 당당한 모습의 좀바위솔. 작은 거인의 힘이 느껴진다. ©김인철

그러나 자연계에선 ‘좀’ 자는 말 그대로 그저 작거나 왜소할 뿐 결코 모자라거나 못 미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걸 좀바위솔이 온몸으로 증명합니다. 만산홍엽의 대자연을 뒷배 삼아 오뚝 서서 천하를 호령하는 일이 결코 버겁지도, 감당 못 할 게 아니라는 걸 좀바위솔이 멋지게 보여줍니다.

오색의 단풍이 그리는 가을 풍경화에 화룡점정 하는 좀바위솔. ©김인철
©김인철

비늘 모양의 녹색 잎 수십 개가 빙 둘러 난 정중앙에 길어야 어른 손가락만 한 이삭꽃차례를 곧추세우는 좀바위솔. 여러해살이풀이어서 뿌리를 해치지 않으면 해마다 연분홍색 또는 순백의 꽃을, 벼나 보리 등 곡식의 이삭처럼 다닥다닥 피우게 됩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각종 바위솔이 암 치료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암암리에 뿌리째 남벌 되는 수난을 겪는 게 우려스러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실제 깎아지른 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옥색의 강물, 불이라도 붙을 듯 붉게 물든 단풍 등 3박자와 어우러져 최고로 꼽히던 한탄강 변의 일부 좀바위솔 자생지가 몇 해 전 괴멸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불가사의한 ‘자가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듯, 하나둘씩 좀바위솔이 다시 피어나고 있어, 또다시 못된 손을 타지 않으면 수년 내 집채만 한 바위를 가득 덮었던 장관이 재현될 것이란 기대를 낳고 있어 천만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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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면 가을 오고, 지면 가을 간다는 구절초

 저 너머 한탄강 북녘에도 포천구절초 폈을 텐데…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10.13>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Dendranthema zawadskii var. latilobum (Maxim.) Kitam.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었습니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김용택의 ‘구절초꽃’에서)

역시 시인은 천재입니다. 보통사람에겐 없는 통찰력과 직관,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진 위대한 천재입니다. 나아가 범인들의 정신과 의식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자이기도 합니다. 구절초 꽃 피면 가을 오고 구절초 꽃 지면 가을 간다고 시인이 말하는 순간, 보통 사람들의 머리에선 구절초와 가을은 어느새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운명체가 되고 맙니다.

구절초와 가을, 그저 낱낱의 낱말이었던 2개의 단어가 숙명처럼 만나 인과관계를 형성합니다. 10월 중순, 통상 9월부터 일컫는 가을이 끝나지 않았으니 구절초가 아직 피어있으리란 시인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전부터 피기 시작했을 구절초가 미처 가을을 떠나보내기 싫은 듯 채 지지 않고 하얀 꽃 무더기를 달고 선 걸 보았습니다.

북에서 60km, 다시 남에서 80km를 흐르는 한탄강. 강원도 철원 한탄강 직탕폭포 주변에 지난 10월 2일 한반도 특산식물인 포천구절초가 만개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구절초에 비해 가는 잎이 특징인 포천구절초가 물길 따라 북녘에도 피었겠지만, 인적은 끊겨 안타깝기만 하다. ©김인철

지금은 거의 상식이 되었지만, 흔히 말하는 들국화란 이름의 식물은 없습니다. 들국화란 특정 식물을 일컫는 게 아니라 구절초를 비롯해 쑥부쟁이, 개미취, 산국, 감국 등 가을철 산과 들에 피는 국화과 식물을 두루 망라해서 부르는 추상명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중 전국의 산과 들, 강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구절초가 대표적인 들국화의 하나로 꼽힙니다. 그 이름의 유래와 관련해 예로부터 음력 9월 9일 꽃과 줄기를 잘라 귀한 부인병 약재로 썼다고 해서 구절초(九折草)라 불렸다고도 하고, 5월 단오 즈음 다섯 마디이던 줄기가 9월 9일이면 아홉 마디로 자라면서 약효가 가장 좋다고 해서 구절초(九節草)라 불렸다고도 합니다.

경남 합천군 오도산에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0월 9일 순백의 구절초가 한 무더기 피어 산 정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김인철

그런데 이 구절초가 피는 시기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꽃을 피우는 쑥부쟁이가 있어 또 다른 시인의 천재성 일갈이 터져 나옵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안도현의 ‘무식한 놈’ 전문)

북한산 정상에 만개한 구절초. 1천만 서울시민의 허파 같은 산인 북한산에도 가을이면 곳곳에 구절초가 피어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한껏 만끽할 수 있다. ©김인철

얼마나 닮았기에 시인의 입에까지 올랐을까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그런데 실제 ‘외형적인 유사성’을 화제로 삼자면 끝도 한도 없습니다. 구절초만 해도 꽃이나 이파리 등의 모양, 색 등 작은 차이로 인해 산구절초, 바위구절초, 포천구절초, 서흥구절초, 울릉구절초, 낙동구절초, 제주구절초로 나뉘고, 쑥부쟁이는 가는쑥부쟁이, 가새쑥부쟁이, 개쑥부쟁이, 갯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민쑥부쟁이로 갈라집니다. 쑥부쟁이는 다시 벌개미취, 좀개미취 같은 개미취류와 비슷해 이 모두를 구별하기란 전문가도 쉽지 않습니다.

경남 산청 황매산 정상에 쏟아질 듯 가득 핀 구절초. 가을이면 흰 눈이 내린 듯 펼쳐졌던 구절초 꽃밭이 최근 크게 줄어, 야생화가 애써 지키지 않으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김인철

해서 이 대목에서 시인의 일갈에 슬며시 어깃장을 놓아봅니다. “그깟 꽃이 무엇이관대 절교 운운하느냐”고요. 그런데 가만 시를 들여다보면 멋진 반전이 숨어있습니다. 마지막 연의 ‘나여,’에서 힐난의 대상인 ‘너’가 오늘 이전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구별하지 못했던 바로 ‘나’였음이 읽히니까요. 역시 시인은 위대한 천재입니다.

강원도 양구 도솔산 정상을 가득 메운 구절초와 쑥부쟁이. 분홍색 꽃이 구절초이고, 보라색 꽃(오른쪽 중앙)이 쑥부쟁이이다. ©김인철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우선 꽃 색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구절초는 대부분 순백의 꽃을 피웁니다. 간간이 옅은 붉은색이 감도는 흰색이나 분홍색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쑥부쟁이는 연한 보라색 꽃을 피웁니다. 얼핏 흰색으로 보이지만 순백은 아니고 옅더라도 보랏빛이 확연합니다. 구절초는 하나의 줄기에 많아야 서너 개의 꽃대, 그리고 꽃대마다 역시 서너 개의 꽃이 달리는 데 반해 쑥부쟁이는 하나의 줄기에 10여 개의 꽃대가 나오고 꽃대마다 역시 10여 송이의 꽃이 풍성하게 달립니다. 이파리도 구절초는 가늘고 잘게 갈라진 고사리손처럼 생긴 데 반해, 쑥부쟁이는 가늘고 긴 타원형 모양입니다. 얼핏 도회적 멋쟁이를 느낀다면 구절초, 반면 친근한 동네 친구 같다면 쑥부쟁이라고 생각하면 열에 아홉은 맞을 겁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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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전령’ 금강초롱꽃/

꽃이름에 숨어있는 식민 지배의 역사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09.06>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금강초롱꽃이 청사초롱 불 밝히듯 가을의 길목을 환히 밝히고 있다. ©김인철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Hanabusaya asiatica Nakai

[논객닷컴=김인철] 눈 깜박하는 사이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폭염과 가뭄으로 전국의 저수지가 말라간다고, 연이은 폭우로 물난리가 났다고 야단야단하던 여름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아침저녁 찬바람이 부는 게 가을이 시작되었음을 실감케 합니다. 높은 산 깊은 계곡에선 ‘가을의 전령’ 금강초롱꽃이 청사초롱 불 밝히듯 환하게 피어,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계절 가을이 시작되었음을 만천하에 선언합니다. 아니, 설악산 대청봉 등 백두대간의 등줄기 곳곳에선 여름의 절정기인 8월 중순부터 하나둘 피어나, 제아무리 폭염이 석 달 열흘 갈 듯이 기승을 부려도 이미 가을이 코앞에 다가와 있음을 일러주었습니다.

‘가을의 전령’ 금강초롱꽃이 어느덧 푸르러진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활짝 피어있다. ©김인철

식물학자는 물론 애써 야생화를 찾아다니는 동호인이 아니더라도, 한국인이면 누구나 그 이름을 알 만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야생화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금강초롱꽃이라고 답한다 해도 이의를 다는 이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토록 친숙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금강초롱꽃은 우리에게 산나물로도 친숙한 더덕과 도라지는 물론 만삼과 소경불알, 모시대, 잔대 등과 마찬가지로 종 모양의 꽃을 피우는 초롱꽃과의 한 식물입니다.

낙석 사고로 현재는 출입이 통제된 남설악 흘림골 계곡의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 금강초롱꽃이 풍성하게 피어 있다. ©김인철

그런데 우리에게는 ‘민족의 성산’이라고 일컫는 백두산에 비견할 만큼 각별하게 여기는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금강’이란 접두어가 붙었습니다. 종 모양의 꽃이 다른 초롱꽃에 비해 크고 잘생겼을 뿐 아니라 꽃 색도 진한 청자색으로 가장 곱습니다. 게다가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확인돼 한국의 특산식물로 인정받고 있으니 ‘국가대표 야생화’라는 말이 과언이 아닌 셈이지요. 금강초롱꽃은 다시 금강초롱꽃과 흰금강초롱꽃, 검산초롱꽃 등 3개 종으로 나뉘는데, 셋 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습니다.

꽃 색이 흰색에 가까운 금강초롱꽃. 금강초롱꽃에는 꽃 색이 청자색과 흰색인 것, 그리고 꽃받침이 넓은 검산초롱꽃 등 3개 종이 있다. ©김인철

그러나 ‘우리 꽃’ 금강초롱꽃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일본 제국주의 식민 지배의 아픈 역사’가 뚜렷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금강초롱꽃의 학명에 일본인 이름이 두 개나 들어가 있는 것이지요. 그 하나가 경술국치와 명성황후 시해의 주역이자 일본의 초대 조선 주재 공사를 지낸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이고, 또 하나가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입니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 식물 연구를 선점했던 나카이가 1911년 세계적인 특산종 금강초롱꽃을 발견하고선, 자신을 적극 후원한 하나부사의 공을 기린다며 학명의 속명에 하나부사(Hanabusaya)를 가져다 붙이고 맨 뒤엔 자신의 이름 나카이(Nakai)를 쓴 것이지요.

화악산 등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 · 강원도 일대 여러 산에도 비교적 많은 개체 수의 금강초롱꽃이 자생하고 있다. ©김인철

빛을 받으면 붉은, 또는 보라색 빛을 발하는 금강초롱꽃은 처음 발견된 금강산은 물론 설악산과 태백산, 오대산, 대암산, 도솔산, 용문산, 광덕산, 명지산, 복주산 등 경기도와 강원도의 유명한 산에 두루 자생합니다. 특히 경기도 가평 화악산은 서울에서 가까우면서도 진한 청자색 금강초롱꽃을 풍성하게 만날 수 있는 자생지로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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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향, 솔나리, 한라송이풀, 네귀쓴풀… 가야산은 여름 야생화의 보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08.08>

입추(7일)가 지났건만, 무더위는 지칠 줄 모릅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니 바다로, 강으로 발길을 돌릴 만하건만 ‘꽃쟁이들’은 아랑곳 않고 산을 오릅니다. 뒷산으로 가볍게 산책을 떠나는 게 아니라, 해발 1400m가 넘는 가야산을 향해 새벽길을 나섭니다. ‘폭염경보, 야외활동 자제’를 당부하는 행정안전부의 안전 안내 문자에도 불구하고 고행하듯 높은 산을 오르는 이유는 단 하나, 흘린 땀방울만큼 보상해주는 곱고 귀한 야생화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리향과 솔나리, 한라송이풀, 네귀쓴풀, 원추리, 가야잔대, 산오이풀 등등.

운해(雲海) 위로 해가 솟는 가운데 칠불봉 바위 겉에 핀 백리향이 아침 햇살에 붉게 반짝이고 있다. 꿀풀과의 낙엽 활엽 반관목, 학명은 Thymus quinquecostatus Celak. ©김인철

역시 폭염 경보가 내려졌던 지난 8월 2일 경북 성주군의 백운동 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해 서성재를 거쳐 3시간 만에 가야산 최고봉인 해발 1433m 칠불봉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산 굽이굽이 가득 찬 구름바다 사이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칠불봉 둘레에 만개한 백리향(百里香)이 연분홍 꽃물결을 이루는 장관을 보았습니다. “아,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이 바로 여기로구나.” 꽃은 물론 줄기 잎 등 전초에서 진한 향기가 나며, 그 향이 사방 백 리를 간다 하여 그 이름을 얻었습니다. 일종의 토종 허브(herb)인데 한여름 가야산은 물론 설악산이나 지리산, 한라산 등 내로라하는 높은 산 정상 부근까지 올라야 만날 수 있습니다.

주봉인 상왕봉 바로 아래 풀밭에 핀 솔나리가 아침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고 있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Lilium cernuum Kom. ©김인철

삼복더위에도 생기를 잃지 않고 가야산 정상을 야생화 천국으로 만드는 건 백리향뿐이 아닙니다. 단아한 자태와 투명한 연분홍 꽃색 등으로 참나리와 하늘나리, 중나리, 말나리, 땅나리 등 여타 나리꽃 중 단연 최고라 일컫는 솔나리가 그 뒤를 잇습니다. 역시 설악산과 남덕유산과 운무산 이만봉 등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야 만날 수 있는 솔나리는 가야산의 여러 봉우리 중에서도 주봉인 해발 1430m 상왕봉 주변에서 우아한 꽃송이를 뽐냅니다.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인 한라송이풀이 홍자색 꽃을 막 터뜨리고 있다.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Pedicularis hallaisanensis Hurus. ©김인철

한라산과 설악산 정상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한라송이풀도 한여름 가야산을 대표하는 고산식물입니다.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을 만큼 희귀종인데, 백두산 고산평원에서 피는 구름송이풀과 유사하면서도 줄기에 털이 많아서 별도의 종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하얀 꽃잎에 점점이 박힌 파란색 무늬로 인해 ‘청화백자’라는 별칭을 얻은 네귀쓴풀. 용담과의 한해살이풀. 학명은 Swertia tetrapetala (Pall.) Grossh. ©김인철

구슬땀을 흘리고 오른 가야산 정상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여름 야생화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인의 말처럼 가만 들여다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네귀쓴풀입니다. 네 장의 꽃잎을 모두 합해야 1cm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크기가 매우 작지만, 흰색 바탕에 청색 점이 알알이 박힌 모습은 마치 청화백자를 연상케 할 만큼 우아하고 기품이 넘칩니다.

백리향과 산봉우리,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다. ©김인철

해발 1000m가 넘는 가야산 정상에는 야산에선 만날 수 없는 희귀종이거나, 같은 종이라도 꽃 색이 더욱 곱고 진하며 잡티가 없는 야생화가 자라고 있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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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양귀비·하늘매발톱·털복주머니란… 여름 백두평원은 천상의 화원!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07.17>

백두산에 자생하는 대표적인 고산식물의 하나인 두메양귀비가 천지 바로 아래 해발 2600m 둔덕에 한가득 피어 있다. 양귀비과의 두해살이풀, 학명은 Papaver radicatum var. pseudoradicatum (Kitag.) Kitag. ©김인철

여행은 설렘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보지 못하는 새로운 것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산으로 들로 꽃을 만나러 가는 여행도 설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떠날 때마다 앞선 길에서는 만나지 못한 새로운 들꽃 산꽃을 봅니다. 산에 들에 피는 꽃들이 숲을, 들판을 독차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로 꽃이 쉬 짐을 아쉬워하지만,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열흘이면 새로운 꽃들에 아낌없이 자리를 내주는 자연의 순리를 배우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한에서 멸종위기야생식물 1급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털복주머니란이 백두산 고산평원에 호젓하게 피어 있다.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Cypripedium guttatum var. koreanum Nakai. ©김인철

멀리 백두산으로 꽃 찾아가는 여행은 더없이 설레고 더없이 각별합니다. ‘우리 꽃’이되 우리 땅에서 볼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새로운 꽃을 만나러 가는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식물학자와 야생화 동호인 등이 연길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선봉령 습지에서 작은황새풀과 제비붓꽃, 세잎솜대 등 고산 습지식물을 탐사하고 있다. ©김인철

분단으로 남과 북의 길이 막힌 지 어언 70여 년. 그리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등으로 다소 트일 듯싶던 숨통이 다시 막힌 지 10년. 대립과 대치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각종 식물도감에 ‘북부 지역에서 자란다’거나 ‘백두산 등 북부 고산지대에 자란다’고 기재된 수많은 우리 꽃들이 실물을 확인할 수 없는, 박제된 그림으로만 전해질 뿐입니다.

낭림산 이북에서 자생한다는 하늘매발톱이 백두평원에서 진한 잉크색 꽃을 가득 달고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Aquilegia japonica Nakai & H.Hara ©김인철

그런 ‘북녘 우리 꽃’에 대한 갈증을 다소나마 풀 수 있는 곳이 바로 백두산입니다. 북위 42도에 위치한 높이 2750m의 백두산. 7월 5일부터 일주일간 만나본 백두산은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花園)이었습니다. 특히 수목한계선(樹木限界線) 위 해발 1000m 이상에서 나타나는 툰드라지대는 남녘에서는 아예 만날 수 없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북방계 식물의 보고(寶庫)였습니다. 

‘산천은 의구(依舊)하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백두산 천지(天池)의 변함없는 모습. 천지 넘어 개마고원 등 북녘으로 우리 꽃을 만나러 갈 수 있기를 빌었다. ©김인철

여기저기 노란색 꽃을 한가득 피우고 있는 두메양귀비와 하늘매발톱, 구름송이풀 등 고산식물과 노랑만병초와 담자리꽃나무, 담자리참꽃, 들쭉나무, 월귤, 홍월귤, 가솔송 등 키 작은 관목들. 특히 남한에서는 함백산 내 2곳에 철책을 두른 채 보호 중인 멸종위기야생식물 털복주머니란이 고산평원 여기저기에 무더기로 피어있는 모습은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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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암꽃, 다음날은 수꽃으로 사는 순채!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06.20>

어항마름과의 여러해살이 수생식물. 학명은 Brasenia schreberi J.F.Gmelin

“네가 나로 살아 봤으면 해/내가 너로 살아 봤으면 해/
단 하루라도 느껴 봤으면 해/너의 마음/나의 마음” (2NE1 - ‘살아봤으면 해’에서)

그렇습니다. 하루는 ‘너’로 살고 하루는 ‘나’로 사는 식물이 있습니다. 인간사에선 너로도 살아보고 나로도 살아보는 게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하지만, 식물계에선 허황된 몽상만은 아닌가 봅니다. 첫날은 암꽃으로 살고 그 다음날은 수꽃으로 사는 순채(蓴菜)가, 만화 같은 소망이 엄연한 현실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잔잔한 연못에 순채의 연두색 타원형 이파리와 홍색의 꽃이 그림처럼 떠 있어 보는 이의 마음마저 평화롭게 한다. ©김인철

지금은 일부 야생화 동호인 외에 많은 이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순채는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연꽃이나 수련, 마름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수생식물이었습니다. 나물 채(菜) 자가 이름에 들어있듯 잎과 줄기 등을 쌈과 국 등으로 식용하거나, 약재로 활용했을 만큼 전국적으로 폭넓고 풍성하게 자라던 우리 꽃이었습니다. 하지만 근대화와 산업화의 여파로 순채가 자라던 크고 작은 물웅덩이, 연못, 저수지 등이 사라지면서 덩달아 자취를 감춰 지금은 이름조차 생소해지면서 멸종위기 야생식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연분홍 암술이 중앙에 자리 잡은 암꽃. 꽃자루에 투명하고 끈끈한 점액질이 가득 덮여 있다. ©김인철

제주도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기까지 몇몇 오래된 연못에서 어렵사리 명맥을 이어가는 순채는 고달픈 생존 투쟁의 와중에도 해마다 어김없이 5월 하순부터 7월 중순까지 단아하면서도 품격 있는 보랏빛 꽃송이를 우리에게 선물처럼 내어줍니다. 꽃자루마다 하나씩 달리는 꽃은 단 이틀 동안만 피는데, 첫날 오전 암술이 성숙한 꽃으로 피었다가 오후가 되면 물속에 잠깁니다. 그리고 다음 날 처음보다 두 배 이상 높이 솟은 꽃자루에 수술이 풍성한 꽃으로 다시 피어납니다.

둘째 날 올라온 수꽃. 진홍의 키 큰 수술이 풍성하게 돌아 나서 중앙의 암술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김인철

첫날 10개 안팎의 연분홍 암술이 성숙한 암꽃으로 피었다가 둘째 날 암술을 둘러싼 진홍색 수술 20~30개가 높이 자라난 수꽃이 되어 물 위로 솟구치는 것은, 자가 수정에 따른 열성 유전을 피하려는 고도의 종족보존 본능의 결과라고 식물학자들은 설명합니다.

순채의 암꽃 한 송이와 수꽃 세 송이. 키 작은 암꽃과 불쑥 솟은 수꽃의 모습에서 자가 수정을 피하려는 전략이 엿보인다. ©김인철

꽃은 지름 2cm 안팎의 크기로, 각각 3장인 꽃잎과 꽃받침 잎이 모두 꽃잎처럼 보이지만 꽃잎이 꽃받침 잎보다 다소 길어 구분됩니다. 특히 1m까지 자라는 물속줄기와 꽃줄기, 그리고 어린잎은 점액질 또는 우무질이라 불리는 투명하고 끈끈한 액체에 싸여 있는데, 그들이 예로부터 약재이자 나물로 쓰여 왔다고 합니다.

작은 연못을 가득 채운 순채 이파리와 꽃. 멸종위기 야생식물로서 전국적으로 자생지가 많지는 않지만, 자생지 내 개체 수는 풍성한 모습이다. ©김인철

다 자란 잎은 길이 8~12cm, 너비 4~6cm의 방패 모양인데, 수면을 가득 채울 듯 떠 있는 모습은 싱그럽기 그지없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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