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논객닷컴-들꽃여행'에 해당되는 글 58건

  1. 2020.11.18 들꽃여행-36-기생꽃
  2. 2020.11.10 들꽃여행-35-깽깽이풀
  3. 2020.10.31 들꽃여행-37-참나리
  4. 2020.09.12 들꽃여행-38-왕별꽃
  5. 2020.04.02 들꽃여행-34-너도바람꽃
  6. 2020.02.22 들꽃여행-33-복수초
  7. 2020.02.03 들꽃여행-11-모데미풀
  8. 2020.01.29 들꽃여행-32-매화마름
  9. 2019.12.29 들꽃여행-31-남구절초
  10. 2019.11.30 들꽃여행-22-노루귀

승천(昇天)한 용(龍)의 늪에 내려앉은 별들, 기생꽃!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20-06-19>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Trientalis europaea var. arctica (Fisch.) Ledeb.

@김인철

봄꽃은 지고, 열매가 익어가는 6월 중순 가파른 숲길을 오릅니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형형색색으로 피었던 많은 봄꽃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숲은 진초록 일색으로 물들어갑니다. 기온은 섭씨 30도를 웃도니 한여름 뺨치게 덥지만, 일행의 발걸음엔 주저함이 없습니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폼에서 목적지에 한시라도 일찍 도착해, 목표한 바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읽힙니다. 1시간 반여 만에 해발 1,280m 높이에 도달합니다. 그리곤 한발 한발 천천히 내디디며 좌우를 살핍니다. 보석을 찾듯, 온 신경을 집중해 샅샅이 바닥을 훑습니다. “와, 찾았습니다.” “여기도, 저기도 있네요.” “자, 찬찬히 살펴봅시다. 뭐가 다른지.”

흥분한 목소리를 쫓아가니, 사초 더미 속에서 순백의 7각, 또는 6각 별들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크기는 새끼손톱만큼 작지만, 밤하늘의 별처럼 영롱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에 생성된 습지의 사초 더미 곳곳에 하늘의 별이 떼로 내려앉는 듯합니다. 이무기는 용이 되어 승천하고, 긴 몸을 뉘었던 구불구불한 도랑 사이사이에 별이 쏟아진 듯합니다. 2019년 7월 중순 남한 유일의 비로용담 자생지를 찾았던 ‘꽃쟁이’들이 꼭 11개월 만에 다시 또 강원도 인제군 서흥리 대암산 용늪에 올랐습니다. 비로용담과 더불어 남한에서는 오직 용늪에서만 자생하는 기생꽃을 만나기 위해서.

대암산 용늪 사초 더미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기생꽃. 6장, 또는 7장인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 보면 폭이 좁고 길쭉하며, 끝이 날카롭고 긴 특징을 보인다. 2020년 6월 12일 만났다. @김인철

 “6~7개의 꽃잎이 거의 낱장처럼 갈라지고, 각각의 꽃잎 끝이 더 날카롭고 길게 뻗는 특징을 보이네요.” “참기생꽃은 잎끝이 뾰족한 피침형인 데 반해, 기생꽃은 완만한 거꿀달걀꼴이네요.” “자생지 생태가 너무 달라요. 참기생꽃은 주로 산 능선의 응달진 바위틈에서 자라는데, 기생꽃은 습지 사초 더미에 뿌리를 내렸어요. 꽃 등 몸집도 기생꽃이 작아 보여요.”

지리산부터 가야산,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까지 비교적 높은 여러 산에 유사 종인 참기생꽃이 자생하지만, 유독 대암산 용늪의 종만 기생꽃이라 부르며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하는 데 대해 주마간산 격이나마 보고 느낀 생각을 현장에서 나눕니다. 천연기념물이자, 생태경관보전지역, 습지보호지역인 용늪은 안내원의 인솔 아래 짧은 동안 나무 통로 위에서만 관찰과 사진 촬영이 허용됩니다. 다행히 기생꽃은 통로 가까이 곳곳에 제법 풍성하게 피어 있습니다. 그 덕에 습지에 들어가지 않고도 통로에 엎드려 관찰하고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1997년 국내 제1호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용늪은 큰용늪(30,820㎡)과 작은용늪(11,500㎡)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현재 작은용늪은 복원 공사 중으로 아예 출입이 안 되고, 큰용늪만 사전 예약을 받아 최대 하루 250명까지 방문이 가능합니다.

대암산 기생꽃을 만난 지 사흘 뒤인 6월 15일 태백산에서 본 참기생꽃. 기생꽃이 한창 싱싱한 상태였던 데 반해 참기생꽃은 대개 지거나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개화 시기도 차이가 났다. 꽃 형태의 가장 큰 차이는 기생꽃에 비해 낱낱의 꽃잎의 폭이 넓어, 서로 겹치면서 둥근 별 모양을 만든다. @김인철
@김인철

기생꽃은 라틴어로 3분의 1피트, 즉 트리엔탈리스(Trientalis)란 속명에서 알 수 있듯, 전초가 10cm 안팎에 불과한 아주 작은 풀입니다. 봄꽃은 지고 여름꽃은 피기 직전인 6월 저 홀로 피는 꽃은 5~7장의 꽃잎과 1개의 암술, 7개의 수술을 갖췄습니다. 꽃의 크기는 지름 1.5cm 안팎. 달리 말해 중지(中指) 길이의 꽃대 끝에 약지(藥指) 손톱만 한 별 모양의 흰 꽃이 대개는 하나, 간혹 두 개가 하늘을 보고 달립니다. 영어 이름은 ‘아크틱 스타플라워’(arctic starflower), 즉 ‘북극의 별꽃’이니, 꽃 모양대로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이름은 유래가 아리송합니다. 그저 예전 기생처럼 예쁘다는 뜻으로 추정하지만 어디서건 속 시원한 답을 구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기생초(コツマトリソウ, 妓生草)란 일본명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일본 기생을 떠올리면 일리 있는 추론일 수 있습니다.

2016년 6월 15일 백두산에서 만난 참기생꽃. ‘북방계 식물의 보고’답게 백두산 일대에서는 남한에서 개별꽃이나 쇠별꽃을 보듯 참기생꽃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김인철
@김인철

기생꽃이나 유사 종인 참기생꽃은 전 세계적으로 시베리아 동부, 사할린, 중국, 몽골, 일본, 북아메리카 등 북반부 한대지방에 분포하는 전형적인 북방계 식물입니다. 남한에는 빙하기 때 내려왔다가 빙하기가 끝난 후 비교적 기온이 낮은 고산지역에 겨우 살아남은 것으로 식물학자들은 분석합니다. 그러면서 여름철 최고 기온이 섭씨 15도 이하로 유지되어야 생존이 가능한데 기후변화에 따라 현 자생지들의 기온이 계속 오르면 현존하는 집단이 유지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2013년 6월 6일 설악산에서 만난 참기생꽃 군락. 비교적 사람의 손길이 덜 닿았기 때문인지 군락 상태가 양호하다.@김인철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호숫가 숲에서 2015년 7월 15일 만난 기생꽃. 꽃은 지고 열매를 맺고 있다.@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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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춘몽(一場春夢)의 꽃, 깽깽이풀!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20-04-16>

화창한 봄 날씨만큼 화사하게 피는 깽깽이풀. 하늘을 향해 활짝 펼친 꽃잎 가운데 수술의 꽃밥 색이 노란색(사진 위)과 자주색(아래)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김인철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Jeffersonia dubia (Maxim.) Benth. & Hook.f. ex Baker & S.Moore

벚꽃이 집니다. 유례없이 빨리 피었다더니 어느새 천지에 낙화가 분분합니다. 4월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날리는 벚꽃 잎에 실려 봄조차 떠나갈 성싶습니다. 과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대명사답습니다. 한데 벚꽃보다 더 덧없는 봄꽃이 있습니다. ‘한바탕의 봄 꿈’인 양 찰나의 순간 스러지는 봄 야생화가 있습니다. 물오른 꽃봉오리는 햇볕 좋은 날 순식간에 벌어지는데, 얼마나 가냘픈지 바람만 조금 강해도, 휘~ 봄비라도 스치면 보고 있는 순간에도 우수수 꽃잎을 땅에 떨굽니다. 이를 두고 한 동호인은 ‘깽무사흘’이란 우스갯말을 합니다. “깽깽이풀 꽃은 사흘을 가지 못한다.”

@김인철

그러나 야리야리한 그 꽃이 얼마나 예쁜지 한 번 본 이는 해마다 봄이면 자생지를 찾아 이 산 저 산을 헤맵니다. 꽃은 4~5월 잎이 나기 전, 높이 20~30㎝의 꽃줄기 끝에 지름 2cm 정도의 원을 그리며 하나씩 핍니다. 그런데 활짝 핀 꽃을 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날이 조금만 흐리거나 기온이 차면 한낮까지 기다려도 꽃잎을 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향해 활짝 벌어지는 6~8개의 꽃잎은 연보랏빛을 띠는데, 봄날의 아련한 정취와 더없이 잘 어울립니다. 꽃 중앙에 자주색 또는 노란색의 꽃밥을 가진 수술 8개와 암술 1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강렬한 봄 햇살을 스포트라이트처럼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깽깽이풀. 어둠 속에 빛나는 보석 같다. @김인철

누구를 만나려고

보랏빛 맑게 단장하고

봄바람에 살랑살랑

춤추며 기다리나.

 

내려보고 올려보고 비껴보며

내 가슴은 울렁울렁

보랏빛 물드는데

너는 무심하게 피어올라

하늘만 쳐다보네. ( 오종훈의 시 ‘깽깽이풀’에서)

@김인철

깽깽이풀은 주로 산 중턱 아래 낮은 숲에서 자랍니다. 즉 민가와 가까운 곳에 자생합니다. 그러다 보니 뿌리를 캐 약재로 팔겠다거나 관상 가치가 높은 꽃을 자기만 보겠다며 남획하고 자생지를 훼손하는 나쁜 손이 많아 한때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었습니다. 다행히 다량 번식 등 인위적인 증식이 가능해지면서 전국 각지의 웬만한 식물원·수목원 등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고,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쁘고 귀한 깽깽이풀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정겹기 그지없지만 연원(淵源)이 모호한 우리말 이름이 원인입니다. 깽깽이풀은 한두 송이가 외따로 자라기도 하지만, 대개는 수십 송이가 뭉쳐서 여기에 한 무더기 저기에 한 무더기 핍니다. 먼저 이런 생육 특성에 한글 이름의 유래와 번식의 비밀이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듬성듬성 자라는 모습에서 한 발로 껑충껑충 뛰는 깽깽이걸음을 떠올리고 깽깽이풀이란 이름을 붙이게 됐다는 설이지요.

꽃만큼 예쁜 잎. 가장자리가 물결이 치고 반질반질한 게 연잎을 똑 닮았다 해서 황련(黃蓮)이니 선황련(鮮黃蓮)이니 하는 한자어 생약명을 얻었다. @김인철
@김인철

또한 깽깽이풀이 띄엄띄엄 자라는 것은 당분이 함유된 씨앗을 개미들이 좋아해 개미집으로 운반해 가는 도중에 여기에 하나 저기에 하나 떨어뜨리면서 자연스럽게 분산 발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창 농사일이 바쁜 4월 농부들이 만개한 이 꽃을 보면 ‘깽깽이’(해금이나 바이올린을 낮춰 부르는 말) 켜며 땡땡이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긴 잎자루 끝에 하나씩 달리는 잎 또한 꽃 못지않게 눈길을 끕니다. 잎은 꽃보다 다소 늦게 나는데, 그 수가 많아 꽃보다 풍성합니다. 길이와 폭이 각 9cm 정도로 제법 널찍한 심장형 잎은 물결 모양의 가장자리와 반질반질한 표피 등이 연잎과 많이 닮았습니다. 바로 이 잎 모양에서 <동의보감> 등 옛 문헌에 나오는 황련(黃蓮), 모황련(毛黃蓮), 선황련(鮮黃蓮) 등의 한자 이름이 연유합니다. 뿌리는 노랗고, 연잎을 닮은 풀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저술된 <조선산야생약용식물>(1936)에는 ‘ᄭᅢᆼᄭᅢᆼ이닙(깽깽이입)’, <조선식물향명집>(정태현 외 3인)에선 ‘깽깽이풀’이란 한글 이름이 처음 등장해 지금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살펴본즉, 약재 이름을 한글화하면서 입에서 ‘깽깽’대는 신음이 나올 정도로 맛이 쓴 뿌리를 약재로 쓰는 풀이라는 의미에서 깽깽이풀이란 이름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지요.

개미가 먹잇감으로 운반하다 듬성듬성 떨어뜨려 군데군데 핀다는 깽깽이풀. 아름답기로 봄꽃 중 으뜸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김인철
@김인철

아직 결론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이름의 연원을 놓고서는 설이 구구하지만, 아래 견해에는 선뜻 동의합니다.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깽깽이풀을 한 번 본 이는 누구나 그 매력에 푹 빠져든다. 토종 야생화 중 아름답기로 으뜸이다.”

제주도와 남해 섬을 빼고 전국에 분포합니다. 야생화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유명 자생지는 경북 의성의 고운사와 대구 달성군 본리리, 강원 홍천군 방내리 주변 야산 등입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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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나리의 계절’ 외치는, 참나리!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20-07-29>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Lilium lancifolium Thunb.

어느덧 7월 말, 오락가락하는 장맛비 속에 계절은 여름의 한복판을 지납니다. 무더위와 코로나 19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겸 바닷가를 걷습니다. 모래밭과 갯바위에서 각각 작은 함성이 들립니다. “여름은 젊음의 계절, 여름은 사랑의 계절…” 흰 모래밭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원색 수영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뿜어내는 노랫소리가 그 하나입니다. 이에 질세라 갯바위 여기저기에 무더기로 핀 붉은 꽃송이들도 무언의 함성을 내지릅니다. “여름은 나리의 계절, 여름은 나리꽃의 계절…”

전남 영광의 해안 절벽에 핀 노랑 참나리. 4년 전 송두리째 뽑혀 사라졌다가 2개체가 다시 나타났다. @김인철

4년 전 사라진 노랑 참나리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에 지난 7월 16일 전남 영광의 한 바닷가로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손꼽히는 해안 드라이브 코스인 16.8km의 백수해안도로 중간쯤에서 나무 통로를 따라 바닷가로 내려섭니다. 과연 깎아지른 해안 절벽에 노란색 꽃잎의 참나리 2개체가 수십 송이의 적황색 참나리 사이에서 군계일학처럼 솟아 야생화 애호가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전남 영광과 전북 부안 등 서쪽 일부 바닷가에만 자생할 정도로 희귀한 노랑 참나리가 2016년 여름 하룻밤 새 통째로 사라졌다고 방송 뉴스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됐었는데, 4년 만에 자연의 위대한 복원력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노랑 참나리가 뿌리째 뽑혔지만, 다행히 당시 현장에 떨어진 짙은 갈색의 주아(珠芽) 10여 개로부터 싹이 나 4년 만에 다시 꽃을 피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북 부안의 바닷가에서 만난 노랑 참나리. 노란색 꽃이 피는 참나리는 서쪽 일부 바닷가에만 자생하는 희귀종이다. @김인철

서두에 밝혔듯 여름은 ‘나리꽃의 계절’입니다. 툭하면 한여름처럼 무덥기 일쑤인 6월 중순 피기 시작하는 털중나리로부터 하늘나리, 말나리, 누른말나리, 섬말나리, 하늘말나리, 큰하늘나리, 날개하늘나리, 솔나리, 땅나리, 중나리, 참나리, 그리고 8월 가장 늦게 피는 뻐꾹나리에 이르기까지 여름 내내 10여 종의 다양한 나리꽃들이 피고 지고를 반복합니다. 최고의 나물은 참나물이요 최고의 나무는 참나무이듯, 참나리는 누구나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최고의 나리꽃이자 여름 야생화의 대표라 할 수 있습니다. 참나리는 마을 어귀는 물론 뒷동산, 논과 밭 등 들판의 빈터, 바닷가 등 우리나라 전역 어디에나 뿌리를 내리고 풍성하고 화려한 꽃을 선사합니다. 심지어 도심 아파트 화단에 일부러 심은 조경용 참나리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한두 송이 띄엄띄엄 피기도 하지만, 많게는 수십 송이씩 군락을 이루기도 합니다. 키는 보통은 1m 안팎이지만 큰 것은 2m까지 자라는데, 농촌 들녘 한복판이나 바닷가 마을 어귀에 선 참나리는 마을의 수호신인 양 늠름하고 의젓합니다.

유명한 풍경 사진 포인트인 서해 솔섬을 배경으로 흐드러지게 핀 참나리.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여름은 나리꽃의 계절’이라고 외치는 듯하다. @김인철
@김인철

나리꽃은 영어로 릴리(Lily) 즉 백합인데, 산과 들에 피는 여러 종류의 나리꽃은 재배·원예종이 아닌 야생 백합을 뜻합니다. 또한 꽃 색이 희다는 뜻에서 백합(白合)이 아니라, 땅속 비늘줄기(인경·鱗莖)가 백 개에 이를 만큼 많다는 의미의 백합(百合)입니다. 참나리의 뿌리도 양파 모양의 구근인데, 예로부터 찌거나 구워 먹었다고 합니다. 참나리는 어른 주먹만 한 적황색 꽃이 한 개체마다 적게는 4개에서 많게는 20개까지 풍성하게 달립니다. 꽃이 큰 데다 타이거 릴리(Tiger Lily)라는 영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6장의 꽃잎에 검은빛이 도는 짙은 자주색 반점이 촘촘히 박혀 있어 마치 호랑이 무늬를 연상케 합니다. 그래서 ‘호랑나리’라는 별칭도 있습니다.

벼랑 위에 핀 참나리를 올려다 보면 하늘에서 빨간색 낙하산이 무더기로 내려오는 것같다. @김인철
@김인철

참나리는 꽃도 크고 벌·나비 등 찾는 곤충도 많지만, 결실은 잘 이뤄지지 않습니다. 다행히 열매를 통해 번식하기보다는 잎겨드랑이에 나는 구슬 모양의 주아를 통해 어미와 똑같은 형태의 2세를 양산합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참나리가 수십 송이씩 무더기로 피는 것이 바로 잎겨드랑이마다 만들어지는 많은 주아를 통한 무성생식의 결과로 추정됩니다.

참나리가 한여름 강가나 들판 한가운데 우뚝 선 모습이 마치 마을의 수호신 같다. @김인철
@김인철

<논객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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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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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일산을 하나로 잇는, 왕별꽃!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20-09-09>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하던가요. 해마다 여름이면 백두산으로 ‘우리 꽃’을 찾아 나섰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각종 식물도감에 등장하는 어엿한 우리나라 야생화지만, 못 만난 지 어언 70년을 훌쩍 넘었으니 자칫 잊히지 십상이지요. 그러기에 갈 수 없는 북녘 땅을 대신해 백두산에라도 가서 남한에서는 자라지 않는 우리의 북방계 식물들을 만나 그 이름을 불러주고 머릿속에 기억해두자고 늘 다짐했습니다. 

고양시 일산에서 2020년 8월 만난 왕별꽃. 백두산 일대 습지에 피는 왕별꽃이 남한 일산에서 자란다는 사실은 남과 북이 하나의 자연생태계를 공유하는 공동체임을 새삼 일러줍니다.@김인철

그 백두산 가는 길이 올해는 코로나 19 때문에 막혔습니다.  5월 말에야 눈이 녹고 9월이면 새로 눈이 내리기에 6월에서 8월까지 단 3개월 동안 수백 종의 북방계 고산식물이 한꺼번에 피는 백두산. 그곳 야생화 탐방이 무산돼 낙담하던 차에 가뭄에 단비 같은 낭보가 전해졌습니다. 백두산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북방계 야생화가 서울에서 가까운 일산에 자생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크기도 크고 형태도 시원시원한 왕별꽃. 별꽃 · 쇠별꽃 · 실별꽃 등 다른 11종의 별꽃 속 식물을 제치고 왜 ‘왕(王)’ 자가 붙었는지를 말해준다. @김인철

단번에 전국의 야생화 동호인들이 몰려 일산이 시쳇말로 올여름 ‘핫 플레이스(Hot Place)’가 되었습니다.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보고인 백두산(白頭山)과 경기도 고양 일산(一山)을 하나로 이어준 야생화는 바로 왕별꽃입니다. 국가 공인 식물도감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서 “분포 : 백두산 지역 등 북부의 산지에서 자란다.”라고 설명하고 있듯 전형적인 북방계 식물로서, 이번에 확인된 일산 이외 남한 지역 어디에서도 발견되었다고 알려진 바 없습니다.

2018년 8월 백두산 일대 습지에서 만난 왕별꽃. 2020년 일산에서 만개한 왕별꽃과 똑 닮았다. 백두산에서 자라는 다른 고산 식물들이 6월에서 8월 사이 한꺼번에 꽃을 피우듯 왕별꽃도 같은 시기 내내 개화했다. @김인철

큰산별꽃이란 별칭으로도 불리는데, 이름대로 별꽃 가운데 키는 물론 전초나 꽃도 가장 크고 시원시원합니다. 먼저 줄기는 밑 부분에서는 비스듬히 자라다가 위로 갈수록 곧추서 50㎝에서 어른 허리 높이인 80㎝까지 크는데, 주변에서 흔히 보는 별꽃이나 쇠별꽃에 비해 거구라 할 수 있습니다. 꽃은 7월부터 시작해 9월까지 흰색으로 핍니다. 먼저 꽃대 끝에 한 개가 피고 다시 그 주위의 가지 끝에 꽃이 피고, 다시 가지가 갈라져 그 끝에 꽃이 또 핍니다. 이른바 취산꽃차례인데 하나의 꽃줄기에 제법 여러 개의 꽃이 달립니다. 낱낱의 꽃 또한 형태나 크기가 유별납니다. 먼저 꽃잎은 모두 5장이데, 낱장은 다시 끝이 5~12개로 갈라져 마치 수십 개의 톱니바퀴가 둥글게 돌아가는 듯합니다. 꽃잎의 길이는 8~10㎜로 별꽃이나 쇠별꽃에 비해 2배 이상 깁니다. 수술은 10개이고, 암술머리는 별꽃과 마찬가지로 3갈래로 갈라집니다. 

마치 개망초가 무성하게 자라듯 군락을 이뤄 꽃을 피운 일산의 왕별꽃. 백두산 일대 자생지보다도 더 왕성한 생육 상태를 보여준다. @김인철

왕별꽃이 자라는 곳은 고양시 일산의 한류천 산책로 길섶. 당초 발원지가 있는 하천이 아니라, 밀물과 썰물에 따라 한강 물이 들고 나는 물골이었다가 자유로가 생기고 일산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배수로가 됐고 수문을 통해 한강과 다시 만나게 된 하천변 단 한 곳에서만 자생지가 발견되었습니다. 동호인들에 따르면 왕별꽃이 처음 발견된 것은 지난해부터이니, 이곳에서 오래전부터 자랐다기보다 최근 수년 사이 새로 뿌리를 내렸다고 보는 게 타당해 보입니다. 여러 종류의 조류가 철 따라 찾아오는 한강 변이다 보니 북쪽에서 날아온 새들이 날개나 몸 등에 묻혀 왔거나, 먹이로 삼킨 씨를 이곳에서 배설해 싹이 난 게 아닐까 추정됩니다. 한강 하류이다 보니 임진강을 따라 북한에서 떠내려 온 씨앗이 한류천으로 역류해 들어왔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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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피는, 너도바람꽃!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20-03-20>

@김인철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Eranthis stellata.

대동강이 풀리고 개구리가 뛰쳐나온다는 우수(雨水)·경칩(驚蟄)은 물론이고,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20일)까지 지났으나 몸과 마음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은 2020년 3월 하순입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여파로 너나없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느라 고단한 데다, 겨우내 따듯했던 날씨마저 뒤늦게 툭하면 영하로 곤두박질치는 탓이겠지요.

그러다 보니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다.’는 옛말을 새삼 실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익히 알려졌듯 중국 전한 시대 황제의 후궁이었으나 화친 정책에 따라 흉노의 우두머리에게 시집가야 했던 왕소군(王昭君)의 불운을 먼 후대의 시인이 대신 탄식한 ‘소군원(昭君怨)’이란 시의 한 대목입니다. 즉 700년도 훌쩍 지난 당나라 때의 시인 동방규(東方虯)는 수도 장안을 떠나 낯선 북방으로 가야 했던 중국 4대 미인의 하나인 왕소군의 비통한 심경을 “오랑캐 땅에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이 아니구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라는 말로 위로했습니다.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너도바람꽃. 얼음장을 뚫고 눈구덩이에 선 모습이 장하기 그지없다.@김인철

꽃도 풀도 없어 봄 같지 않다고 한 때가 현대의 역법으로 정확히 언제였는지 알 수 없으나, 많은 이들이 봄이 시작되는 3월에 불사춘(不似春)의 고사를 들먹이곤 합니다. 겨울과 봄의 경계에 있는 3월, 봄인 듯싶지만, 겨울이 채 물러나지 않고 까탈을 부리는 간절기.

동방규는 그때 오랑캐 땅에 꽃도 풀도 없다고 했지만, 동토의 북방이든 열사의 사막이든 눈에 쉽게 띄지 않을 뿐 그 어디에나 생명은 살아 숨 쉬고 풀은 돋아나고 꽃은 피어납니다. 우리 땅 삼천리 강토는 더욱 더 비옥해 복수초, 변산바람꽃, 현호색, 노루귀, 앉은부채, 개불알풀, 산자고, 할미꽃, 꽃다지, 냉이, 제비꽃, 중의무릇 등 금방 열 손가락을 넘는 수의 풀꽃들이 언 땅을 헤집고 기지개를 켭니다. 산수유, 매화, 생강나무, 개나리, 진달래 등 나무에도 가지마다 꽃눈이 트기 시작합니다.

3월 말에서 4월 초 때늦은 서설이 내려 사방에 눈 세상으로 바뀌면 너도바람꽃은 환상적인 ‘설중화(雪中花)’의 주인공이 된다.@김인철
@김인철

그런데 하 많은 봄꽃 가운데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피는 최고의 꽃을 꼽으라면, 단연 너도바람꽃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월 초 얼음투성이 산 계곡에 봄바람이 불면 순식간에 얼음장 같은 땅을 헤집고 나와 순백의 꽃을 피우는 너도바람꽃.

여전히 겨울 외투로 온몸을 감싸고 산골짝에 들어선 사람들은 키 15cm 안팎의 가냘픈 몸매에 지름 2cm 정도의 흰색 꽃을 달고 선 너도바람꽃을 보며 자연의 신비를, 생명에 대한 외경을 체감합니다. 그리고 며칠 뒤 강렬한 봄 햇살을 받은 수십, 수백 송이의 너도바람꽃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활짝 핀 광경을 보며 찬란한 봄날의 환희에 빠져들곤 합니다. 그러다 4월 초 때늦은 춘설이 내려 온 천지가 눈에 뒤덮인 계곡에서 역시 눈을 뒤집어쓴 너도바람꽃이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오뚝 선 멋진 ‘설중화(雪中花)’를 보며 온갖 곤경을 이겨낸 작은 거인을 본 듯한 감동을 하곤 합니다.

언 땅을 비집고 막 올라온 너도바람꽃. 한두 송이에 불과하지만, 생명의 외경을 느끼게 한다.@김인철
@김인철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그 어느 순간이든 자연의 주인공이 되는 너도바람꽃. 복수초와 변산바람꽃과 함께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피는 ‘봄의 전령’으로 꼽히는데, 너도바람꽃의 학명 앞머리인 에란티스(Eranthis)가 본래 라틴어 봄(er)과 꽃(anthos)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콩나물 줄기처럼 생긴 꽃대 끝에 흰색 꽃이 한 송이씩 달리는데, 키는 다 자라야 10~20cm에 불과합니다. 꽃 구조는 통상적인 꽃과는 다소 다릅니다. 즉 일견 꽃잎처럼 보이는 5~9장의 흰색 둥근 잎이 실제로는 꽃받침입니다. 꽃받침 바로 안에 원을 그리듯 빙 둘러 난 막대기 같은 것이 꽃잎입니다. 길쭉한 꽃잎은 10개 안팎으로 비교적 여럿인데 2개로 갈라진 끝에 주황색의 꿀샘이 있습니다. 꽃잎 안에 다시 다수의 우윳빛 수술과, 연한 자주색 꽃밥을 단 암술 2~3개가 촘촘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개 하나의 꽃대에 하나의 꽃이 달리는데, 두 개의 꽃이 동시에 달리 ‘쌍둥이’ 너도바람꽃도 심심치 않게 발견됩니다.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에 분포하는데, 주로 습기가 많은 산 계곡에서 자생합니다.

@김인철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만개한 너도바람꽃, 화사한 봄날의 환희를 노래하는 듯하다.@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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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에 핀 황금색 ‘봄의 전령’, 복수초!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20-02-12>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Adonis amurensis Regel & Radde.

유례없이 따듯한 겨울이라더니, 결국 일이 났습니다. 유례없는 별일이 일어났습니다. 뭔 일이기에 호들갑을 떠느냐고요? 모처럼 상큼하고 기분 좋은 일입니다. 바로 봄이 지척에 왔음을 알리는 전령(傳令)이 도착했습니다. 춘삼월까지 아직 보름 이상 남았는데, 이미 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화신(花信)이 왔습니다. 황금색 ‘봄의 전령’ 복수초가 예년에 비해 20일 이상 일찍 피어나 샛노란 꽃술을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입춘 하루 전인 지난 2월 3일 서울 인근에 복수초가 폈다는 꽃 동무의 말에 강화도 고려산을 찾았습니다. 산골짝은 꽁꽁 얼었고, 겨울철 으레 그렇듯 깡마른 갈잎만 무성합니다. 갑자기 역주행하듯 영하로 곤두박질한 날씨로 사위는 더 을씨년스럽습니다. 게다가 “뭘 찾느냐?”라고 묻는 주민에게 “혹 꽃 봤냐?”라고 되묻자, “40년 가까이 지켜봤는데 일러야 2월 말에나 핀다.”는 답만 되돌아옵니다.

헛걸음인가 하는 순간, 켜켜이 쌓인 낙엽 사이 곳곳에 동그랗게 벌어진 노란색 꽃송이가 제법 여럿 보이기 시작합니다. 서너 시간 쪼인 아침 햇볕 덕에 막 달아오른 듯한 모습입니다. 허 참, 서울 인근 산에도 2월 초에 자생 복수초가 피다니….

짙은 갈색의 낙엽 사이에서 노란 꽃송이를 동그랗게 벌린 개복수초. 입춘 하루 전인 2월 3일 인천시 강화도 고려산에서 만났다. 유례없이 따듯한 날씨 탓에 예년에 비해 20일 이상 일찍 폈다는 게 인근 주민의 말이다. Ⓒ김인철
 Ⓒ김인철

복수초가 중부 지역에서 입춘 전에 피는 건 이례적이지만, 당초 원단화(元旦花)니 원일초(元日草)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걸 생각하면 별스러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원단·원일은 곧 새해 첫날이니, 복수초의 별칭 안에 이미 ‘새해 첫날 피는 꽃’이란 뜻이 담겼다고 봐야지요. 일본에서는 새해 인사 때 복수초를 선물하며 복(福)과 장수(壽)를 기원한다고 하니, 정초에 피는 꽃이라는 인식은 오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강원도 동해시 냉천공원 산비탈에서 제주도보다도 이른 1월 초부터 복수초가 피는 것으로 유명한데, 석회암 동굴 지대의 따듯한 지형이 그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제주도와 완도수목원 등 따듯한 바닷바람이 부는 남녘에서도 1월 중순이면 복수초가 황금색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전남 여수 금오산 기슭에 핀 개복수초(사진)와, 경기도 안산시 서해에 떠 있는 작은 섬 풍도의 개복수초(아래 사진). 둘 다 2월 초부터 피기 시작하며, 꽃과 함께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개복수초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김인철
 Ⓒ김인철

이렇듯 ‘가장 일찍 피어나 기나긴 숨결로 봄을 여는’ 복수초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핍니다. 다만 꽃 모양과 잎, 가지 등의 작은 차이로 인해 서너 종으로 나뉘는데, 제주도 숲속에서 자생하는 종은 잎이 가늘게 갈라진다고 해서 세(細)복수초로 부릅니다. 남부와 서해 도서 지역에서 피는 복수초는 경기·강원 등지에서 만나는 복수초에 비해 꽃의 크기가 갑절 이상 크고 화려합니다. 게다가 꽃이 피는 것과 동시에 잎도 무성하게 자라납니다. 종전에는 이를 가지복수초로 분류해왔는데, 최근 개복수초가 더 적확한 이름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북부 지역에서 2월 말 이후에서나 피기 시작하는 것을 복수초, 그중 꽃의 크기가 아주 작은 것을 애기복수초로 따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둘 다 잎이 나기 전 꽃이 먼저 핍니다.

경기도 연천 지장산에 핀 복수초. 3월 초순 이후에나 개화하는데, 개복수초에 비해 꽃 크기가 작고 단정한 데다, 잎이 꽃보다 한 참 뒤에 나오는 중·북부 지방 자생 복수초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김인철

 Ⓒ김인철

이른 곳에선 1월 초에 개복수초가 피기 시작해 경기·강원 깊은 산에선 5월 초까지도 복수초가 피니, 서너 종의 복수초가 무려 5개월 가까이 피고 지는 셈입니다. 그야말로 복수초를 한반도 봄 야생화의 대명사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얼음과 눈 속에서 핀다고 해서 얼음새꽃이니 눈색이꽃이란 예쁜 우리말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눈 속에 피는 연꽃 같다고 설련(雪蓮)이란 한자 이름도 있습니다. 활짝 핀 복수초는 형광물질을 내뿜듯 그 기세가 강렬한데, 실제 활짝 핀 꽃 속의 온도가 50cm 떨어진 주변보다 7도 이상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에서 만난 설중(雪中) 복수초. 얼음새꽃, 눈색이꽃이란 순수 우리말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 Ⓒ김인철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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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처럼 빛나는 특산식물, 모데미풀!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4.12>


봄 눈 녹은 물이 콸콸 흐르는 높은 산 깊은 계곡에 핀 모데미풀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화를 선사하고 있다. ©김인철
©김인철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Megaleranthis saniculifolia Ohwi.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논객닷컴=김인철] 25년 전인 1993년 문화유산 답사 열풍을 일으켰던 미술사학자 유홍준 씨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펴내면서 서문에 소개해 널리 알려진 글귀입니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 유한준(俞漢雋)이 남겼다는 이 명문을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데, 바로 이 땅의 풀과 나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꽃샘추위가 간간이 기승을 부렸다 한들 화창한 봄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요. 산마다 골마다 개나리, 진달래가 활짝 피고 매화, 산수유, 벚꽃이 동리마다 하얗고 노란 꽃 대궐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자라는 작은 풀 포기 하나, 나무 하나 사랑하고 아끼는 이는 개나리와 진달래, 매화, 벚꽃 등 키 큰 나무 꽃들이 피기 오래전부터 이미 많은 봄꽃이 새봄의 환희를 노래해 왔음을 알고, 함께 즐겼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사랑해서 더 많이 알게 된 만큼 더 많은 기쁨을 누렸다고 할까요.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에서 이르면 정초부터 피기 시작한 복수초와 변산바람꽃을 시작으로, 엄동설한 중 높고 깊은 산골짝 얼음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노루귀와 너도바람꽃, 얼레지, 들바람꽃, 꿩의바람꽃, 현호색 등등. 키 10cm 안팎에 콩나물 모양의 연약하기 그지없는 꽃대를 꽁꽁 언 땅 위로 밀어 올려 꽃을 피우는 이들 풀꽃은 진정 이른 봄 인적 드문 산과 계곡의 부지런한 주인들입니다.

순차적으로 피어 각각 열흘 안팎 화려한 개화기를 보내고 흔적도 없이 스러진 이들 풀꽃의 뒤를 이어 3월 말부터 전국의 크고 작은 산에서는 아주 특별한 봄꽃이 새하얀 얼굴을 내밉니다. 한국 특산식물인 모데미풀입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하얗게 피어난 모데미풀. 하얀 꽃도, 연두색 열매도 별을 닮았다. ©김인철
©김인철

1935년 지리산 자락인 운봉의 ‘모뎀골’ 또는 ‘모데미마을’이란 곳에서 처음 발견돼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영어 이름도 모데미풀(Modemipul)입니다. 학명에 오이(Ohwi)란 일본성이 들어간 것은 당시 발견자가 일본인 학자 오이 지사부로(大井次三郞)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뎀골이나 모데미마을이 어디인지 확인되지 않아 꽃이 피어 있던 ‘무덤’을 일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모데미’란 엉뚱한 이름이 붙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학명 중 종명 메갈에란티스(Megaleranthis)는 ‘크다’는 뜻의 그리스어 메가스(megas)와 너도바람꽃(Eranthis)의 합성어입니다. 실제로 10cm 안팎의 줄기 끝에 꽃잎처럼 보이는 꽃받침 잎 5장과 노란 수술을 가진 꽃송이가 하나씩 달리는데, 꽃은 순백의 너도바람꽃을 닮았지만 크기는 2배쯤 됩니다.

하늘이 외로운 날엔 풀도 눈을 뜬다
외로움에 몸서리치고 있는 하늘의 손을 잡고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만 보아도
하늘은 눈물을 그치며 웃음 짓는다

문효치의 시 ‘모데미풀’에서

춘삼월(春三月)도 지난 4월 느닷없이 쏟아진 눈에 갇힌 모데미풀. 흰 눈을 뒤집어썼어도, 흰 눈에 덮였어도 초롱초롱한 얼굴은 빛이 난다. ©김인철
©김인철

시인의 말처럼 티 없이 맑은 어린 아기가 함박웃음을 짓듯 창공을 향해 활짝 꽃잎을 펼친 모데미풀을 보면 하늘도 눈물을 그치고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국 특산식물이란 전 세계에서 우리 땅에서만 피고 자라는 고유종이라는 뜻인데, 이는 거꾸로 한반도에서 사라지면 지구상에서 아예 없어지는 것이므로 영구 보존할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아직은 만나기 힘들 정도로 매우 희귀하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멀리 제주도 한라산에서부터 지리산과 오대산, 광덕산, 청태산, 태백산, 설악산을 거쳐 북방한계선으로 알려진 강원도 점봉산에 이르기까지 전국 주요 산의 해발 800m가 넘는 습지나 능선 부근에서 꽃을 피웁니다.

특히 소백산 정상 부근은 한국 최대(한국에만 있으니 세계 최대라는 말도 된다) 규모의 자생지가 펼쳐지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에 따라 모데미풀은 소백산의 생태계를 대표하는 깃대종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고산·아고산대가 자생지인 특성으로 인해 늦은 봄인 4~5월 개화하지만, 사진작가들에게 종종 그림 같은 설중화(雪中花)를 선사하기도 합니다. 산자락 아래에서는 분명 비가 내리지만, 같은 날 같은 산이라도 정상 부근 고지대에서는 눈발이 흩날리기 때문입니다.

투명한 봄 햇살을 맞아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모데미풀. ©김인철
©김인철

그리고 모든 유물은 제자리에 있을 때에만 온전히 제 빛을 발할 수 있다.

끝으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문에 나오는 문장 하나를 사족처럼 덧붙입니다. “모든 유물뿐 아니라 모든 동식물도 제자리에 있을 때에만 온전히 제빛을 발할 수 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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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매화마름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20-01-16>


한겨울 물속에 핀 ‘수중매(水中梅)’, 매화마름!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학명은 Ranunculus kazusensis Makino

2020년 1월 8일 경자년(庚子年) 새해 들어 처음으로 꽃을 보러 먼 길을 나섰습니다. 12월부터 2월까지를 겨울이라 하니, 그야말로 겨울의 한복판이었습니다.

한겨울에 꽃구경이라니, ‘따듯한 남쪽 나라’ 제주도를 떠올리셨나요? 아닙니다. 제주까지는 먼 길이되 하늘길이니, 진짜배기 길이라 할 수 없지요. 걷든 차를 몰든, 제힘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다 동으로 방향을 트니 바닷가에 닿습니다. 검푸른 겨울 바다와 동천(冬天)이라 칭하는 파란 하늘을 보며 잠시 숨을 고른 뒤 이번엔 물길을 찾아 나섭니다. 해안도로 변의 바둑판처럼 구획 정리된 농지 사이에 난 폭 1m 남짓의 긴 농수로(農水路)가 그날의 목적지였습니다.

깊은 곳은 무릎 정도, 낮은 곳은 발목이 찰 정도의 깊이로 흐르는 물이 얼지는 않았지만, 한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차갑습니다. 콸콸 흘러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간단없이 이어지는 물길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그런데 아뿔싸, 흐르는 물속에 하얀 꽃이 피어 있습니다. 매화꽃을 닮은 흰 꽃이 물에 잠겨 있습니다.

2020년 1월 8일 경북 경주의 한 바닷가 수로에서 만난 매화마름. 한겨울의 추위에도 풍성한 가는 잎과 줄기가 청초한 연둣빛을 잃지 않고, 듬성듬성 피는 꽃은 아예 물속에 잠겨 있다. Ⓒ김인철
Ⓒ김인철

“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 자락 덮여도 / 매화 한 송이 그 속에서 핀다.”(도종환의 ‘홍매화’)라고 했듯, 이상 난동이라고는 하나, 한겨울 얼음장처럼 찬 물길 속에서 매화를 똑 닮은 흰 꽃들이 송이송이 피어나는 현장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매화 중에서 한겨울인 납월(臘月), 즉 음력 12월에 피는 매화를 납월매라 하고 눈 속에 피는 매화를 설중매(雪中梅)라 일컬으니, 겨울 물속에서 피는 흰 꽃은 ‘납월수중매(臘月水中梅)’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5장의 흰색 꽃잎이 동그랗게 펼쳐지는 꽃은 물매화를, 머리카락처럼 가는 잎은 붕어마름을 닮았다고 해서 매화마름이란 이름을 얻은 여러해살이 수초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한동안 한란과 나도풍란, 광릉요강꽃, 섬개야광나무, 암매 등과 함께 ‘6대 멸종위기 야생식물 1급’으로 지정돼 최고 수위의 보호를 받다가 2012년 2급으로 내려앉았지만, 여전히 국가적으로 중요한 식물자원으로 보호받고 있는 매화마름. 예전엔 모내기 전 물이 고인 논이나 습지, 연못 등에서 흔히 보던 꽃이었으나 산업화 시기 개체 수가 크게 줄면서 한때 절멸 위기에까지 내몰렸던 것이지요. 논이 밭이나 과수원 등으로 개발되고, 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농약과 제초제 사용이 늘고 저수지와 수리시설이 발달해 천수답(물을 계속 가둬둬야 하는 논)이 줄면서 덩달아 매화마름도 눈에 띄게 사라졌습니다.

신록의 계절 5월 경기 강화도의 모내기 직전 논에서 흰 눈이 흩날리듯 풍성하게 꽃 핀 매화마름. 건강한 논을 상징하듯 백로가 매화마름이 자생하는 논 위를 날며 먹이를 찾고 있다. Ⓒ김인철
Ⓒ김인철

급기야 2000년대 초 한 자연보호단체가 경기 강화도에 남아 있는 매화마름 보전을 위한 범시민운동을 펼쳤고, 기증과 매입을 통해 3,014㎡의 논을 사들여 ‘시민자연유산 1호’로 지정했습니다. 초지리의 이 매화마름 군락지는 2008년 논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람사르 협약에 의한 국제보호습지로 등록됐습니다. 현재 이곳을 포함해 김포 화성 태안 고창 영광 등 서해안 일대에서 25곳이 넘는 매화마름 군락지가 확인되고 있는데, 2000년 이후 제초제 사용이 줄면서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모내기가 시작되는 5월부터 추수가 끝나는 10월까지 벼가 논의 주인이라면, 매화마름은 11월부터 이듬해 모내기 전까지 습지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한 논의 또 다른 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벼 베기가 끝난 건강한 무논(물을 댄 논)에서 11월 발아합니다. 그리고 겨우내 얼음 아래서 성장해 이듬해 4~5월에 흰 꽃을 피워 씨앗을 뿌린 뒤 물의 온도가 20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여름이 되면 녹아 사라집니다. 원줄기는 50㎝ 정도까지 옆으로 뻗고, 흰 수염뿌리는 땅속으로 파고듭니다. 물속 잎은 가는 실처럼 방사상으로 퍼지고, 물 위로 올라오는 잎은 통통합니다. 4월 말쯤 꽃자루가 물 위로 올라와 매화처럼 5장의 꽃잎을 가진 흰색의 작은 꽃을 가득 피웁니다.

 흰색 꽃잎이 5장으로 싱그럽고 단아한 매화를 똑 닮은 매화마름. 물속에서 방사상으로 줄기를 뻗고 손톱만 한 흰 꽃을 가득 달고 있다. Ⓒ김인철
Ⓒ김인철

그런데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강화도를 비롯해 서해안 일대 일부 논이나 수렁 등에 흰 눈이 내린 듯 풍성하게 피는 매화마름이 동쪽 해안가 물길에서 한겨울에 꽃잎을 활짝 열어젖히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유명한 문구처럼, 참으로 세상은 넓고 꽃은 다양하고, 그 생태는 신비롭습니다.

.매화마름이 자생하는 동쪽 바닷가 수로. 3월 봄이 되자 이곳의 매화마름에도 꽃송이가 다닥다닥 달리기 시작했다. Ⓒ김인철
Ⓒ김인철

강화도 등 서해안에서 자생하는 매화마름과 달리, 꽃턱과 수과(瘦果), 턱잎에 처음부터 털이 없는 민매화마름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아직 학계의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매화마름이든 민매화마름이든 개화 시기는 4~5월로 같기 때문에, 겨울에 꽃이 피는 까닭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2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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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흰 눈 내리듯 피는, 남구절초!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2.16>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Dendranthema zawadskii var. yezoense (Maek.) Y.M.Lee & H.J.Choi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문정희의 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 중에서

겨울이 깊어가면서 북풍한설에 으스스 몸을 떨면서도, 한바탕 눈이 쏟아졌으면 하는 객기 어린 바람을 가져봅니다. 올겨울 두어 차례 눈이 내렸다는 뉴스를 접하긴 했지만, 서울 인근에선 체감할 만한 양의 눈이 내린 걸 못 보았기 때문이겠지요. ‘눈 없는 겨울’이란 ‘앙꼬 없는 찐빵’처럼 왠지 허전하고 2% 부족하다는 건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리라 믿습니다. 뜻밖의 폭설을 만나 누군가와 함께 고립되고 싶다는 치기 어린 감상이 한껏 부풀어 오르던 지난 가을 어느 날, 저 멀리 남녘의 바닷가에서 그야말로 한겨울 눈처럼 하얗게 쌓인 꽃을 보았습니다. 수년 전 한창 번성했을 때에는 섬 전체를 하얗게 뒤덮기도 했다는 들꽃을 만났습니다. 이름하여 남구절초입니다.

저 먼 남녘 섬 거제도의 관광명소인 ‘바람의 언덕’에서 만난 남구절초. 11월 초순까지도 제법 무성하게 남아 있는 남구절초 꽃밭이 한겨울 하얗게 쌓인 눈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김인철
Ⓒ김인철

즉 우리나라 남쪽 지역, 그중에서도 남해의 섬과 바닷가에서 자생한다고 해서 별도로 분류된 남구절초입니다. 남구절초는 특히 제주도 인근의 추자도는 물론, 남해 거제도의 관광 명소인 ‘바람의 언덕’, 그리고 빼어난 해안 풍광을 자랑하는 소매물도 등 한려해상국립공원 내 크고 작은 섬들의 가을 야생화를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남구절초가 만개하는 시기는 겨울이 본격화된 12월 이후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서울·경기·강원 등 중부 지역에서 자라는 구절초나, 한탄강과 영월·정선에서 자라는 포천구절초, 그리고 지리산 등 고산의 산구절초 등처럼 8~9월 일찌감치 피고 지는 것도 아닙니다. 9월부터 피지만 다른 구절초들이 이미 다 지고 난 뒤인 11월까지도 싱싱하고 풍성하게 꽃송이를 유지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꽃도 클뿐더러, 둥근 잎은 넓은잎구절초를 닮았으되 두껍고 표면에 윤택이 있는 등의 차이를 보입니다.

짙푸른 다도해를 바라보며 핀 남구절초. 남녘 바다와 등대, 그리고 섬들이 구절초 앞에 ‘남(南)’ 자가 붙은 이유를 말해주는 듯하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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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 탓인지 다른 구절초에 비해 비교적 작은 편인, 높이 20~50cm 정도로 자랍니다. 가을이면 원줄기 끝과 가지 친 줄기 끝에 1개씩, 하나의 포기마다 5~6개 정도의 머리모양꽃차례가 하늘을 보고 달립니다. 꽃차례마다 중앙에 노란색 대롱꽃이 자리 잡고, 그 주위에 길이 2cm, 폭 5mm 정도의 혀꽃이 빙 둘러 납니다.

흙보다는 갯바위가 더 많고, 억새나 사초 등이 무성하게 자라는 척박한 바닷가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뽐내며 피어나는 남구절초. 억척스러울 뿐 아니라 왕성하기도 한 생명력 덕분인지, 한두 송이 겨우 피는 게 아니라 수십, 수백 송이가 떼로 뭉쳐납니다. 흰색의 꽃송이들이 거칠 것 없는 가을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 반짝반짝 빛날 때면 한겨울 하얗게 쌓인 눈밭을 보는 듯합니다.

남쪽 섬과 해안에서 자라는 남구절초. 줄기 잎은 주걱 모양인 데 반해, 뿌리 잎은 넓은 계란형에 두껍고 표면에 윤택이 있으며 잎의 끝부분이 얕게 갈라진다고 도감은 설명한다. Ⓒ김인철

쑥부쟁이, 개미취, 산국 등과 함께 들국화란 통칭으로 불리던 구절초. 그런데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무식한 놈’을 질타하는 시가 나오자, 이 둘의 판별을 넘어 30여 종의 구절초를 분별해보겠다는 이들까지 하나둘 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서흥구절초니 낙동구절초, 넓은잎구절초 등이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사라졌습니다. 남구절초에는 ‘비합법명’이란 낙인이 붙었습니다. 구절초 외에 이화구절초, 바위구절초, 울릉국화, 포천구절초, 한라구절초, 신창구절초, 산구절초 등 7개만 살아남았습니다. 토양의 산도나 햇볕의 양 등 환경에 따라 잎과 꽃, 키 등 형태의 변이가 많은 데다, 쉽게 자연교잡이 이뤄지는 구절초류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전문가들도 식별하기 어려운 차이를 이유로 세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으로 이해됩니다.

거제도 바람의 언덕의 명물인 풍차, 그리고 바다 산책로를 배경으로 핀 남구절초. 흰색과 분홍색 꽃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색감을 선사한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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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은 말합니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여기에 하나를 더해봅니다. 파란 하늘과 짙푸른 바다, 그리고 눈처럼 흰 남구절초를 보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한겨울 한계령 눈밭에 갇히듯, 겨울의 문턱에서 못 잊을 사람하고 저 멀리 다도해 남구절초 하얀 꽃밭에 갇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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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에 찬란하게 빛나는, 노루귀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3.15>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Hepatica asiatica Nakai

[논객닷컴=김인철] 미세먼지가 우리의 일상을 공격하기 이전에는 저 하늘의 공기가 그처럼 맑고 투명한지 몰랐습니다. 아무런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런 걱정도 않고 늘 상쾌한 공기를 향유하리라 방심했다가 한마디로 큰코다쳤습니다. 단 하나 얻은 게 있다면 자연 상태의 공기가 얼마나 깨끗한지 알게 됐고,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모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평소 실감하지 못했던 공기의 깨끗함을 미세먼지가 알게 하듯, 봄 햇살의 빛나는 광채를, 번득이는 찬란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꽃이 있습니다. 꽃줄기 끝에 지름 1.5cm 정도의 동그란 꽃까지 달고 선 식물체 전체의 키가 10cm 정도에 불과하지만, 갈잎 사이에 불쑥불쑥 솟아나 부서질 듯 반짝이는 모습은 황홀하기까지 합니다. 특히 꽃줄기와 꽃을 감싸고 있는 3장의 총포(꽃대 끝에서 꽃 밑동을 싸고 있는 비늘 모양의 조각)에 수북하게 난 하얀 솜털에 봄 햇살이 가득 쏟아지기라도 하면 매일같이 눈으로 보고도 채 알아보지 못했던 태양광의 신비를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올 3월 7일 전북 변산반도에서 만난 노루귀. 변산바람꽃과 너도바람꽃 등 제주에서 접경 지대까지 전역에서 ‘봄 산의 주인은 우리’라고 외치는 듯 연이어 피고 지는 10여 종의 ‘바람꽃’류에 맞서 일당백(一當百)의 기개로 피는 노루귀의 흰색과 분홍색 꽃이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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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 눈을 헤치고 피어난다고 해서 파설초(破雪草)니 설할초(雪割草)니 하는 거창한 한자 이름으로도 불리지만, 꽃이 먼저 피고 난 뒤 바닥에 바짝 붙은 채 둘둘 말려 나오는 삼각형 모양의 잎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 해서 노루귀란 우리말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서양인들의 눈에는 그 잎 모양이 우리 몸속의 간(肝)과 닮아 보였나 봅니다. 해서 학명 중 속명으로 간을 뜻하는 헤파티카(Hepatica)를 얻었고, 영어 이름도 아시안 리버리프(Asian Liverleaf)로 지어졌습니다.

봄 햇살이 얼마나 찬란한지 한눈에 보여주는 노루귀의 빛나는 솜털. 백 마디 말보다 단 한 송이의 노루귀를 만나는 것으로 충분하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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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초(全草)라고 해봐야 앞서 말했듯 키 10cm, 잎 5cm, 꽃 지름 1.5cm 정도에 불과해 유심히 살펴봐야 겨우 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주 가냘픈 풀꽃입니다. 그러나 다양한 꽃 색과 깜찍하고 앙증맞은 생김새는 ‘봄 야생화의 대표 주자’로 꼽힐 만큼 환상적이고 매혹적입니다. 꽃 색은 흰색에서부터 홍색, 청보라 색에 이르기까지 그 변이의 폭이 매우 넓습니다. 홍색도 연분홍에서부터 진홍색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고, 청보라 색 역시 하늘색에 가까운 옅은 색에서부터 코발트블루까지 다양합니다. 단순한 흰색도 있지만, 미색에 가까운 흰색도 있습니다.

자연이 빚어내는 색감의 극치를 느끼게 하는 노루귀의 청색 꽃. 빈센트 반 고흐의 저 유명한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의 하늘색을 능가하는 듯싶다. Ⓒ김인철
Ⓒ김인철

물론 꽃잎처럼 보이는, 6개에서 많게는 10개가 넘는 색색의 조각이 실제로는 꽃받침잎입니다. 꽃잎은 아예 없고, 대신 수술과 암술의 수가 각각 수십 개에 이를 만큼 많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꽃 색 못지않게 보는 이를 황홀하게 만드는 건 꽃줄기와 총포 등에 난 무수한 잔털입니다. 오래전 영랑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을 노래했지만, 볕 좋은 날 노루귀의 하얀 솜털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봄 햇살을 본 이라면 그 황홀한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노루귀란 한글 이름을 낳은 노루귀의 삼각형 모양의 잎. 꽃이 먼저 핀 뒤 땅에 바싹 붙어 둘둘 말려 나온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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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의 또 다른 장점은 그 어떤 야생화보다도 개체 수가 풍부하고, 또 개화 기간이 길다는 것입니다. 자생지 또한 멀리 제주도에서부터 강원·경기 접경지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분포하고 있습니다. 해서 누구든 관심과 열정만 갖고 있다면 멀리 이름난 자생지를 애써 찾아가지 않더라도, 부지런히 동네 뒷산에 올라 등산로 주위를 살피면 만날 수 있습니다. 이르면 1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해 4월에도 꽃이 필 만큼 개화 기간도 깁니다. 한두 송이가 피기도 하지만, 많게는 수십 송이가 한데 뭉쳐서 피는데, 산비탈 여기저기에 만개한 노루귀는 붉은색 루비나 파란색 사파이어가 박힌 듯 화려합니다. 올봄의 경우 멀리 대전 이남 지역에서는 이미 지난 2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했지만, 서울·경기 인근 중부 지역은 이제부터 피기 시작해서 4월 초·중순까지 이어집니다.

연홍색 노루귀가 피고 지는 가운데 저 멀리 아스라이 아지랑이가 일며 연분홍 봄날이 오고 간다. Ⓒ김인철

유사 종으로 울릉도에만 자생하는 섬노루귀(H. maxima Naka), 그리고 꽃과 잎이 함께 나오며 노루귀나 섬노루귀에 비해 크기가 작은 제주도 자생 새끼노루귀(H. insularis Nakai)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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