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 호랑이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
그저 길 가다 차를 멈춰 세우면 바로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지는 곳,
남한강 강변 따라 양평으로 가는 길입니다.
혹여 새벽이면
물안개 피어오르는 아침이면 더 좋겠지요.
도솔암(兜率庵).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 꼭대기에 있다는,
미래 인간세계에 내려와 성불하게 될 미륵보살이 머문다는,
천상의 불국 세계라는 도솔천(兜率天).
그 도솔천에 닿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수행처이자 기도처가 바로 도솔암이 아닐까.
그렇기에 전국 높고 깊은 산 속에 깃든 여러 암자에 도솔암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 인터넷 지도 찾기에 도솔암을 입력하자 A에서 Y까지 25곳의 도솔암이 검색됩니다.
이렇듯 곳곳에 도솔암이 있는데,
가장 풍광이 좋기로 손꼽을 만한 곳 중 하나가 바로 달마산 도솔암이 아닐까?
제주도 탄생 설화의 주인공 설문대 할망.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한 발은 성산 일출봉에, 또 한 발은 제주시 앞바다 관탈섬에 걸쳐졌다는 거인 여신.
제주도를 만들기 위해 치마폭에 흙을 나르다 치마의 터진 구멍으로 조금씩 새서 360개 오름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가운데 부은 것이 한라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서귀포 사람들은 서귀포 쪽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정상부가 '설문대 할망이 머리를 풀고 누워있는 모습'을 똑 닮았다고 하는데, 천천히 살펴보면 오른편에서 왼쪽으로 이마, 눈, 코, 잎, 턱의 형태가 그럴싸하게 그려집니다.
눈 덮인 겨울철엔 흰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섬진강
늦은 아침의 강과 하늘 숲은
마치 사춘기의 시절같이 싱그럽고 좀 어설펐다.
이쪽은 산이 가파르고 산기슭이 강물에 바싹 다가서 있었다.
저쪽은 하얀 모래밭과 둑길과 마을이 있었다.
그쪽 물가는 흰빛을 띠고 있었으며 이쪽 물가의 물은 청록빛이었다.
흐르지 않는 청록빛의 강물, 세월의 이끼와 자연의 엄숙함,
냉담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저쪽은 따사로운 햇빛이 부서지고 있었으며
엉성하고 잡다한 사람들의 입김이 서려 있었다.
섬진강은 푸르게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강 건너 산으로 시선을 보낸다. 산은 청정하고 싱그러웠다.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강물은 아랑곳없이 흐르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박경리의 '토지'>
1년 365일 매일같이,
해서 일 년에 365차례나 해가 뜨고 지지만
사람들은 하루에 한 번씩 매일 뜨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볼 때마다 처음 보는 양 감탄하고 탄복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그 광경은 언제 봐도 장엄하기 때문입니다.
열흘 전쯤 남도 여행에 나섰다가
운 좋게도 완도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숙소에 머물며
겨울 해가 뜨는 장엄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 첫해도 이렇게 올라왔겠지요.
섬진강
나룻배가 내려왔다.
홍이 자맥질을 하며 강물 속으로 몸을 숨겼다.
다시 떠올라 목을 내밀었을 때 나룻배는 지나가고 있었다.
“시원하겄소.”
나룻배의 사공 목소리가 맑은 햇빛을 뚫고 울려왔다.
그리고 배는 하류를 향해 내려갔다.
맞은편은 전라도 땅. 강물에 기슭을 적신 가파로운 산에는 소목이 울창했다.
백로가 환상같이 흰 깃을 펴고 날아간다.
산기슭에 잠긴 물빛은 산그늘 때문인가 푸르고도 녹색이다.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구나.’
박경리의 '토지'
음력 8월에 눈이 내리기 시작해 여름이 되어서야 비로소 녹기 시작한다 해서
눈 설(雪)자 큰 산 악(嶽)자 이름을 얻은 설악산.
함으로 지금쯤엔 주봉인 대청봉은 물론 크고 작은 봉우리에 이미 얼음이 얼고 눈이 쌓였을 설악산.
여름의 시작되던 6월 초 설악산 중에서도 경관이 뛰어나기로 손꼽히는 공룡능선,
그 능선 길 곳곳에 피었던 산솜다리를 회상합니다.
곳곳에 유적과 유물이 즐비한, 해서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는 말이 있듯
꽃 보러 가는 길 일부러 찾지 않아도
심심찮게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오래된 문화재들을 만납니다.
충남 당진에서 만난 안국사지 역시 그중의 하나입니다.
고려 시대 절터로 현재는 절집 건물이 없이 그저 빈터만 있겠거니 했는데,
늠름한 3개의 석불,
이름하여 석조여래삼존입상과 석탑이 남아 한 시대를 풍미했을 안국사의 사라진 위용을 말해줍니다.
창후항
과거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관문이었던 창후항.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여객선은 아예 사라지고, 소소한 고깃배들만 들고나는 작은 포구.
해 질 무렵 풍경이 한가롭다 못해 쓸쓸하기 그지없습니다.